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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공책 Oct 12. 2024

11. 사람 모양 집


 나는 지금 금문교에 서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그 새빨갛고 거대한 다리, 영어로는 골든 게이트 브릿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생에 처음으로, 백인 남자아이가 내 눈앞에서 눈을 찢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분명 리암과 나는 자전거를 대여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초반엔 길을 잘 찾는 리암이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비루한 두 다리로는 체력 좋은 리암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내가 앞으로 가는 걸로 위치를 바꿨다. 리암은 천천히 뒤에서 따라갈 테니 걱정 말라고 했고.


 리암과의 거리가 꽤 멀어졌을 때, 내 옆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다가왔다. 열려있는 조수석 창문에는 열두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는 양손으로 눈을 찢었다. 그리고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차는 쌩, 지나가 버렸다. 


 나는 눈을 꽉 감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자전거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꽉 줬다. 머지않아 리암이 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래? 괜찮아?”


 리암은 온 몸을 숙여 내 표정을 살폈다. 그 아이가 가진 온전한 적의가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그들은 나에 대해 그 무엇도 알지 못하면서도 나를 증오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증오를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다. 리암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내내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리암은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하며 나를 껴안았다. 리암은 내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각한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리암. 밥 먹으러 가자. 진짜 개맛있는, 칼로리 폭탄에 혈당 폭발하는 그런 걸로.”


 나는 베이컨 맥앤치즈에 사이드로 시킨 감자튀김을 아무 말 없이 먹어 치웠다. 디저트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브라우니를 시킬 때쯤엔 정말 괜찮아졌다.


“있지 리암, 여기 샌프란시스코잖아. 여기는 정말이지 동양인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고. 그런 곳에서 이렇게 눈을 찢으면서까지 동양인을 싫어하면서 산다? 그거 진짜 걔 손해야. 지만 피곤하지. 그 가족들, 하루 종일 누군갈 미워하면서 산다니 인생이 참 고달플 거야. 됐어. 이제 디저트까지 먹으면 완벽히 신경 끌 수 있어. 좆까라 그래. 우우.”


 리암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웃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슬픈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리암, 그만 슬퍼해. 우리 이제 금문교 가야 돼. 내 버킷리스트 지우러 가는 데 이렇게 울상이면 그냥 안 데리고 갈 거야. 웃어!”

“미안해… 지원은 정말 강해. 진짜 멋져.”


 우리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번엔 리암이 내 앞에 있었다. 리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강한 게 아니라 약한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진짜 강한 사람이었으면, 어디에서든 살 수 있었겠지. 이렇게 떠돌며 지내지 않았겠지. 


 멀리 안개 사이로 새빨간 금문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금문교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언젠가 내 인생이 여기서 달라지기 시작했구나 깨닫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꿈에 그리던 장면이었다. 리암의 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정말이지, 네가 아니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까…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면. 약한 나도, 그런대로 괜찮을 지도 몰라.



*



 우리는 금문교 중간에 멈춰 서서 넓게 펼쳐진 안개를 바라봤다. 끊임없이 다리를 가로지르는 차들 때문에 귀가 윙윙거렸다.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워도,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두 발밑에 펼쳐진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의 햇빛도 들지 않는 안개 사이로 이 다리가 우뚝 서 있다. 우리가 서 있다.


 나는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다. 안개가 움직이는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리암은 그런 나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었어서 미안해. 네게는 아름다운 것만 쥐여주고 싶은데… 잘 안되네.”


 나는 바람을 뚫고 느껴지는 리암의 숨결에 집중했다. 해야 할 말이 많았다. 


“리암. 전에도 느꼈어. 나는 집을 찾아 계속해서 도망 다녔지만, 도망친다고 달라지는 건 정말 없다는 거. 한국에 유명한 표현이 있거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근데 있지, 지옥에도 종류는 있어. 나는 낙원을 찾는 게 아니야. 다른 지옥을 찾는 거야. 거기 나만의 집을 지을 거야.

 나는 우리 모두가 견디며 살 수 있는 불행의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해. 너, 이오난사라는 식물 알아? 걔는 가끔 물만 뿌려주면 흙 없이도 살아서, 공중에 매달아서 키운대. 그래서 집에서 키우는 식물로 인기가 엄청 많아. 근데 장미 이런 애들은 집에서 키우려면 뭐 다 해줘도 툭하면 죽어버려서 잘 안 키워. 하지만 그런 장미도 밖에서 키우면 그냥 막 잘 자란다더라. 인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이오난사가 흙 없이 산다고 해서 장미보다 우월한 게 아니고… 장미가 더 화려하다고해서 이오난사보다 대단한 게 아니잖아? 둘은 그냥 다른 거지. 그저, 숨 쉴 수 있는 땅이 다를 뿐인 거야.  

 사람도… 똑같아. 그리고 어떤 사람은, 숨쉬기 힘든 땅에서 태어나기도 하나 봐. 나는 있지, 싸울 수 있는 불행을 찾아다니는 거야. 숨 쉴 수 있는 땅을, 숨 쉴 수 있는 지옥을 찾아다니는 거야. 그러니까, 낙원이 아니라서, 그걸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돼 리암. 그런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나는 몸을 돌려 리암을 마주 봤다. 


“그리고, 너만 있으면… 없어진 줄도 몰랐던 아가미를 되찾은 물고기마냥 숨이 트여.”



*



“우리 자전거 반납하기 전에, ‘팰러스 오브 파인 아트’ 라는 곳, 들렀다가 가자.”

“그래. 근데 뭐 하는 곳인데?”

“그냥… 예쁜 곳이래. 궁전 건물에, 연못이랑 정원 있고.”

“좋아!”


 금문교에서 궁전까지는 자전거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리암은 지도를 몇 번 보더니 자신만만하게 길을 나섰고, 나는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없이 그 뒷모습을 쫓아갔다. 저 등이 어디로 가더라도 나는 저 등을 쫓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벅찬 마음에 나는 노래를 불렀다. 리암이 사랑하던, 존 레논의 그 노래였다. 노래를 못하는 것쯤은 부끄럽지 않았다. 


'상상해 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걸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상상해 봐 나라라는 건 없다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부르겠지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언젠가 그대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야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도착한 궁전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자전거로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결혼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에게 “축하해요!” 소리도 질렀고. 


“지원, 여기 예쁜데, 우리도 잠깐 내려서 사진 찍고 갈까?”

“아니, 그냥 기억할게!”


 질주를 멈추기 싫었던 나는 웃으며 소리쳤다.



*



 자전거를 반납하고 숙소로 향하는 길, 조수석에 앉아 갤러리를 정리하는 나를 보며 리암이 물었다.


“이제, 미국에서 여러 도시들 가봤잖아. 샌프란시스코의 상징도 봤고. 미국에서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어?”

“음…크게 상관없을 것 같아. 어딜 가든 나는 이방인일 테니까.”


 어쩐지 또 슬픈 표정을 짓는 리암을 보자 아차, 싶었던 나는 괜히 웃으며 덧붙였다.


“뭐, 나 한국에서도 그렇게 현지인 같지는 않았어. 운전해 운전.”


 리암이 운전에 집중하자 나는 다시 핸드폰 화면을 봤다. 어느덧 여행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은 족히 천 장이 넘게 쌓여 있었다. 필름 카메라 앞에서는 그렇게 신중하면서, 핸드폰으로 찍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나 보다. 똑같은 구도의 셀카만 해도 몇 장씩 있다. 


 사진 속 내 얼굴에 집중하며 괜찮아 보이는 것들에 하트를 누르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같이 찍은 모든 사진에서 리암은 나를 보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나만을 바라보는 네가 있었다. 


 머리를 묶을 때마다 웃으며 나 어때? 물어보는 너. 돌연변이 네잎클로버 얘기를 듣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꿰뚫어 보던 너. 세상이 멸망하면 내게 와 줄 거지라는 노래를 흥얼거리자, 손을 꼭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던 너. 


 이 미친 우주에 정말 너 하나뿐이면 될지도 모른다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향해 품어본 적 없던 생각을 하게 만드는 너. 사랑만큼은 잘 한다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이 조금은 가짜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안의 모든 걸 새롭게 만드는 너.


“리암.”

“응?”

“어쩌면, 네가 내가 있을 곳일지도 몰라.”


 내가 계속 찾아 헤매던 그놈의 ‘집’은, 어쩌면 나라도 도시도 아니고... 너라는 사람 하나였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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