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사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첫 번째 이야기

by summer


샌프란시스코는 이번 미대륙 여행에서 쿠바 다음으로 좋았던 도시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소금사막도 다녀왔지만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결국 도시 냄새를 물씬 풍기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우리가 머문 호스텔은 알라마 스퀘어에서 5분 거리인 casa roma hostel이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공용 욕실인 대신 트윈 배드에 냉장고가 딸린 괜찮은 크기의 방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1층에 있는 커피머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하루에 커피를 두 잔씩 마셨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도착하니 5시가 다 되었다. J는 지쳐 잠들고, 나는 택시 타고 오는 길에 본 샌프란시스코의 기다란 주택들을 구경하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꼭 동화에 나올 것 같은 형태의 주택들이 언덕진 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생겨난 분홍빛 하늘을 보니 이게 꿈인가 싶었다.


나는 좀 더 본격적으로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호스텔 커피머신에서 라테 한잔을 뽑아 알라모 스퀘어를 보러 갔다. 경사진 언덕을 타고 올라가야 해서 힘들었지만 구글맵 말대로 5-10분 정도 걸었더니 공원이 나왔다. 어느새 하늘은 분홍색에서 보라색이 되었다. 동네는 하늘을 따라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때 알라모 스퀘어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J에게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 주거민들이 좀 불쌍했다

공원엔 관광객과 현지인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포토존으로 유명한 집들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고, 현지인들은 운동복을 입고 뛰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빈 벤치에 앉아 노래를 틀었다. 외국 공원에 혼자 앉아서 노래를 들으면 굉장히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집 앞 공원에 앉아있는 기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어스름하게 지는 하늘은 서울과 달라 찍은 사진을 예쁘게 보정까지 마친 뒤 한국에 있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내 사진을 받은 우리 가족은 지금 심심하냐고 답장을 보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조금 앉아있기를 30분, 일어난 J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쯤 들어올 거냐는 물음이었다. 지금 가는 길이라고 답하자 저녁 먹으러 나가자는 말이 돌아왔다. 우리는 'Super duper burger'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다운타운까지는 걸어서 40여분이 걸렸다. 다운타운 가는 길, Gogh st엔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가득했다. 너무나 이국적이고 연말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식당들이었다. 통유리 건너편으로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크리스마스에 외식하면서 기분을 내자고 약속했다. Super duper burger는 블루보틀 근처에 있었다. 유니언 스퀘어와 가까운, 그야말로 시내 한복판에 있는 버거집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버거 냄새가 아닌 뭔가 알싸한 향이 풍겼는데 알고 보니 마늘냄새였다. 버거와 함께 주문한 갈릭 프라이즈에서 같은 알싸한 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super duper

Super duper burger는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맛집인지 늦은 시간임에도 꽤 북적였다. 자리 잡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치즈버거와 갈릭 프라이즈를 주문하고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맛이 진할 것 같았는데, 한입 베어 무니 육즙이 뚝뚝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맛..?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본 햄버거였다. 묵직하고 짭짤하면서 불향 입은 고기 맛이 감돌았다. 사실 Super duper burger의 추천 메뉴는 버거가 아니라 갈릭 프라이즈였다. 마늘을 한국인 못지않게 때려 넣은 듯한 맛은 햄버거의 느끼한 맛을 싹 잡아줬다. 단점이 있다면 담백하게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자극적인 맛으로 느끼함을 누른다는 것? 감자튀김을 먹은 뒤 잠들기 전까지도 입 안에서 마늘향이 돌았다.

그리고 Superduperburger에서 웃긴 일이 있었는데, 음료수를 공짜로 마신 사연이다. J가 음료 주문을 깜빡해서 내가 추가 주문을 위해 내려갔는데 주문을 받는 직원이 굉장히 바빠 보였다. 내 차례가 돌아오고 soda 하나를 주문했다. 그때쯤 직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내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달랑 소다 하나 주문한 것을 듣더니 "소다 하나? 계산 필요 없어 그냥 마셔"라면서 컵을 건네줬다. 나는 그분의 쿨함에 당황했지만 그 덕에 공짜 닥터 페퍼를 먹을 수 있었다.

오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더니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트램이나 타고 갈걸 왜 굳이 걸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되는 첫날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