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네 번째 이야기
진정한 포틀랜드는 뭘까?
포틀랜드에 머무는 내내 내가 입에 달고 다닌 말이다. 포틀랜드는 도시 규모에 비해 내세울 것이 너무나 많은 도시다. 그 유명한 킨포크 잡지도 포틀랜드에서 시작되었고, 나이키나 파타고니아 같은 스포츠 브랜드의 발상지 역시 포틀랜드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포틀랜드'라는 도시에 큰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힙하고 볼거리가 많아 4박 5일도 모자랄 그런 도시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내 머릿속 꿈의 도시는 사실 회색빛에 우중충하고 휑한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여행 중 습관처럼 이 말을 꺼냈다. '이게 진정한 포틀랜든가?'
나는 실제로 포틀랜드에서 꽤 여러 가지 경험을 했는데, 독특한 맛의 아이스크림과 도넛을 먹은 것도 그 경험 중 하나였다. J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닌 여행지마다 아이스크림 맛집을 알아보곤 했다. 'Salt&Straw'는 그런 J가 찾아낸 포틀랜드 스타일의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그곳엔 다양하고 개성 있는 맛의 아이스크림들이 가득했다. 쿠키 도우 맛, 허니 라벤더 맛, 블루치즈가 들어간 배맛. 한국에선 보지 못한 기이한 맛을 볼 수 있었다. salt&straw는 맛보기가 가능해 특이한 것 몇 가지를 먹어볼 수 있었다. 이름과 다르지 않은 정직한 맛들이라 신기하면서도 그 특이한 맛들을 한스쿱이나 먹을 순 없을 것 같아 주문할 때엔 일반적인 맛을 고르게 되었다. 우리는 다양하게 먹어볼 생각으로 4가지 맛을 고를 수 있는 세트를 주문했다. 각자 두 가지씩 고르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론 자기가 고른 맛만 먹게 되어 별 의미가 없었다.
나는 민트 초코와 스트로베리 코코넛, J는 솔티캐러멜과 후추가 들어간 발사믹 딸기(strawberry honey balsamic with black pepper). 우리는 빈 테이블에 앉아 맛 평가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맛이 모두 강렬했다. 솔티캐러멜은 정말 캐러멜에 소금을 뿌린 맛이 났고, 스트로베리 코코넛은 딸기 셔벗 맛이 나다가 끝에 코코넛 향이 돌았다. 민트 초코는 밀도 높은 민트맛이 돌았으며 발사믹 딸기는 매운맛이 났다.
포틀랜드에서 먹은 신기한 음식은 아이스크림뿐만이 아니었다. 포틀랜드의 명물, 바로 베이컨 도넛이다. 아무리 단짠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누가 도넛에 베이컨을 올려먹을 생각을 했을까? 나는 처음 그 괴이한 형태를 보고 이런 걸 창조해냈을 누군가를 욕했다.
포틀랜드에서 유명한 도넛 가게는 두 곳이 있다. 부두 도넛과 블루스타 도넛이다. 부두 도넛에 키치하고 빈티지한 도넛들이 있다면, 블루스타 도넛엔 세련되고 깔끔한 도넛들이 있다. 블루스타 도넛은 부두 도넛보다 두배나 비쌌다. 여행 온 것이 아니었다면 사 먹지 않았을 가격이었다. 실패하기 싫었던 나는 라즈베리 도넛을, 도전해보고 싶었던 J는 베이컨 도넛을 구입했다. J의 용감한 도전이었다. 블루스타 도넛은 단단한 케익같은 식감이었다.
겉에 올려진 분홍색 시럽은 새콤하면서 과하지 않게 달았고 도넛이 얼마나 촉촉했는지 먹는데 물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내가 '이래서 사람들이 블루스타 도넛이 더 맛있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때, J는 베이컨 도넛을 한입 먹더니 도저히 못 먹겠다며 먹다 남은 도넛을 다시 포장했다. 치킨 와플 같은 오묘한 조화를 생각했거늘, 이 것은 그냥 도넛 맛과 베이컨 맛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두 가지 맛이 입안에서 따로 놀았다. 도넛에 은은하게 밴 베이컨의 훈향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난 요즘, 가끔 베이컨 도넛이 가장 포틀랜드스러운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상하고 특이한 것이 일상적인, 개성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포틀랜드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커다란 양조장에서 수제 맥주 샘플러를 마시며 맥주의 맛을 이야기하였고, 스텀프 커피에선 나비넥타이를 맨 직원이 내려주는 고소한 라테를 마셨다. 또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서점인 파웰 북스에서 길을 잃기도 했고, 오레곤주의 면세 찬스로 신나게 쇼핑을 즐겼다.
여행 중엔 이 별것도 없는 도시가 왜 이렇게 인기일까 의문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사소한 모든 것이 포틀랜드였다.
휑한 분위기 속 갑자기 나타나는 브루잉 컴퍼니, 쿠키 도우 맛을 파는 아이스크림가게, 베이컨이 올려진 도넛, 그리고 다리를 건널 때마다 볼 수 있는 커다란 전광판까지!
포틀랜드에는 비공식적인 슬로건이 있다.
이미 그 자체만으로 포틀랜드스러운 도시.
'KEEP PORTLAND WE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