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세 번째 이야기
오후 7시경,
어느덧 포틀랜드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듬성듬성 있던 가로등만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J는 얼마 전에 지나가다 발견한 카페를 구글맵으로 찾았다며 거기서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이때 덥석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J가 찾은 곳은 우리가 지나가다 본 그 카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페는 자정 넘어서까지 운영하는 미국에서 보기 힘든 심야 카페였다. 나는 펍을 겸하는 카페 정도 되겠거니 의심을 일절 하지 않고 따라갔다.
그 카페는 꼭 미국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주택단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찾으려던 카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슥한 길목엔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고, 카페 옆 세븐일레븐 간판마저 섬뜩해 보였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젖은 나무 냄새가 나는 카페가 나왔다. 카페라기보다는 오래된 산장 같았고, 혹은 할로윈 시즌의 레스토랑 같았다. 심지어 그 안엔 직원도 손님도 없었다. 테이블과 낡은 피아노, 오래된 커튼에 달린 조명과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문 너머로 들어온 순간 내가 귀신에 홀린 건가? 혹시 영화 몬스터 하우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며 바쁘게 생각했다. J는 네가 자꾸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며 나를 나무랐다.
우리는 공포영화 속 한 장면처럼 "Hello~"를 외쳤고, "도대체 왜 외국 공포영화 주인공들은 딱 봐도 음산한 집 문을 열고 Hello를 외치는 거야?"하고 비웃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현관엔 '2층엔 강심장만 올라가세요'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그 묘한 팻말을 지나 탁한 색의 천이 끼워진 테이블에 앉았다. 오분 넘도록 직원이 나오지 않아 도망쳐야 될까 고민하던 중 드디어 직원이 나왔다. 메이드복을 입은 직원은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J는 이 카페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어찌 됐든 그곳은 구글맵에서 공인된 디저트 맛집이었다. 아이스크림이나 파르페, 케이크가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라테를 시키고, J는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직원이 나온 뒤부터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왔고, 어느덧 꽤 북적여진 카페를 보며 혹시 이 사람들이 귀신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귀신에 홀린 것처럼 어느 순간 테이블이 가슴까지 올라와있고, 또 어느 순간 다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J도 같이 느낀 일이었다!)
내가 안정을 찾은 건 웬 컨버스 신은 미청년이 나와 기타를 튕겼을 때부터였다. 꼭 돈 없는 예술가 같은 복장으로 나온 청년은 서툰 솜씨의 기타 연주를 보여줬다. 그의 기타 실력은 서툴렀지만 얼굴은 서툴지 않았다.(내가 넣어준 팁 $2는 얼굴값이었다.)
마음이 괜찮아졌을 때쯤 화장실에 가볼까 하고 일어났다. 화장실이 2층이라는 말에 혹시 현관에 있던 팻말이 화장실을 겨냥한 건 아니겠지 걱정하며 올라갔다. 나무계단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2층에 올라가면 다른 컨셉의 좌석이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더없이 짧은 복도에 수많은 문들이 있었다. 굳게 닫힌 문들을 보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이 연상됐다.
심장은 쿵쿵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잠깐 J한테 같이 와달라고 부탁할까 고민했으나 H 성격에 이런 말을 하면 질색할 것을 알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여니 그곳은 B급 공포영화 촬영장 같았다. 바닷속 같은 새파란 벽에 낡은 욕조가 있고 그 안엔 마네킹이, 천장엔 다리 모형이 달려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들어가 입으로는 욕을 하고 속으로는 온갖 신을 찾았다. 거울을 보면 안 될 것 같아 손도 급하게 씻고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여행 중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보다, 비행기를 놓쳤을 때보다 더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는 꼭 모험이라도 한 것처럼 J에게 화장실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그 일은 포틀랜드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신라면을 사 가면서 생각했다.
'이런 게 진정한 포틀랜드일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