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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만찬

샌프란시스코 네 번째 이야기

by summer


서구권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 크리스마스 당일엔 그럴싸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어렵다. 식당이 문을 닫거나, 예약 없이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다. Gogh street에 있던 수많은 식당들이 담합이라도 한 듯 크리스마스에 문을 닫았다. J는 크리스마스에 재즈바에서 저녁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재즈바는 커녕 버거킹이나 안 먹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렇게나 한국이 그리운 순간이 없었다. 다행히 이브에는 영업하는 식당들이 종종 있어 이브날 저녁에 분위기를 내기로 타협했고, 특정 식당을 정하지 않고 지나가다 괜찮은 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24일, 우리는 코너에 자리 잡은 아늑해 보이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Chez Maman West'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고급스러운 곳 같지는 않아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어둑한 분위기에 주홍색 조명들이 가게를 밝히고 있는데 연말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캐주얼 레스토랑이었다. 밖에서 메뉴를 보고 문 손잡이를 잡자마자 웬 사랑스러운 직원분이 문을 열며 우리를 맞이했다. 우릴 향해 웃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들어간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무튼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가격대도 20~30달러로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많아 돈 없는 여행객이 분위기 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각자 샌드위치와 치킨 스테이크를 시켰고 샹그리아를 한잔씩 마시기로 했다.



음식은 적당히 맛있었다.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맛있는 냄새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테이블을 제외하고 모두가 홍합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메뉴판에서 홍합을 못 봤는데?' 하고 억울해하던 찰나 내가 홍합이 영어로 뭔지 모른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향이 어찌나 좋던지 저걸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알아봤더니 그곳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고 프랑스식 홍합탕과 에스까르고가 인기 메뉴였다. 향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결국 샌프란 마지막 날에 혼자 재방문해서 홍합을 먹고야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홍합 메뉴의 이름 'Les Moules'

이 레스토랑에서의 기억은 내 두 달간 여행 중 좋았던 순간을 꼽는다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바깥은 추운데 레스토랑은 따뜻했고, '크리스마스이브'가 실감 날 정도로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팁을 $4나 적고 갔다. 내 선에서 줄 수 있는 최선의 팁이었다. 만약 여유가 있었더라면 더 큰 금액을 적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하루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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