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두 번째 이야기
LA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도시다.
나와 J는 LA에 오래 머물 만큼의 예산이 부족했다. LA에서 최소 6박은 하자던 계획은 어마 무시한 땅값에 무산되고 말았다. 뚜벅이들에겐 숙소 위치도 중요했고 벌레가 나왔다는 후기가 있는 곳들을 거르다 보니 예약할 수 있는 저렴한 숙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10만원 상당의 게스트하우스 프라이빗 룸으로 예약하였고 4박 5일간 LA에서 머물게 되었다.
우리 여행의 모토는 '굳이 다 보려고 하지 말자'이다. 언젠가 또 올 수도 있는데 빡빡하게 전부 보는 것보단 다 못 보더라도 여유 있는 게 좋지 않냐며 종종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그러기에 LA는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는 이미 가고 싶은 미술관만 두 곳이었고, J는 라라랜드에 나온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야경을 보고 'Paul smith' 핑크 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하루는 디즈니랜드에도 가야 했다.
한 번도 이렇게 일정이 많았던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닥친 낯선 상황에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렇게 완성된 계획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했다. LA에서 놀게 된 첫날, 우리는 먼저 다운타운에 가기로 했다. 내가 가고 싶어 한 현대미술관 'The broad'를 보기 위함이었다. 'The broad'는 LA에서 유명한 미술관이다. 특히나 입장료가 무료임에도 떨어지지 않는 전시 퀄리티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사실 인터넷 예약을 미리 했으면 줄을 잠깐 서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내가 미리 예약하지 않아서 아침부터 45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The broad는 2015년 억만장자 Eli broad 회장이 2000점이 넘는 아트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지은 미술관이라고 한다. 감각적이고 유니크한 외관과 알찬 작품들 덕분에 개관 직후부터 쭉 LA의 핫플레이스였지만, 오픈한 지 몇 년이 지났으니 관광객이 좀 시들해졌을 거라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The broad는 LA 다운타운에 있는데 생각보다 근처에 볼 게 많아 점심 일정이 가득 찼다. J는 원래 코리아타운에 가서 미미면가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다운타운에 있는 유명한 서점과 센트럴 마켓에 가고 싶다며 원래 일정을 포기했다. 다운타운을 같이 구경할 친구가 생겼다.
LA는 유독 날이 따뜻했다. 여름 같진 않았지만 12월에도 얇은 니트 한 장이면 될 정도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렸다. 미술관 벽을 따라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했지만 날씨가 좋아 힘들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입구에서 짐과 가방을 맡기고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The broad에는 사진 명소가 있는데 바로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y mirrored rooms'이다. 아주 좁은 거울 방 안에 들어가면 LED 조명들이 반사되며 무한한 별빛들이 반짝이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더브로드를 검색하면 가장 다이내믹하고 화려한 인증 사진들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 인증샷을 찍는 것이 치열하다는 것을 몰랐는데, 그를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하거나 입장과 동시에(이른 시간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예약을 올려놓고 시간에 맞춰 들어가야 했다. 심지어 제한 시간이 45초라는 말을 듣고 과감히 포기했다. 45초를 위해 투자하기엔 그 과정이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미국 여행 중 다닌 미술관들은 모두 재밌었다. 잘 모르던 현대미술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회화작품 전시보다 더 생동감이 있었다. The broad엔 역시나 관람객들이 많았는데 흡사 미술관을 가장한 거대한 포토존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기 작품들이 포토존으로 쓰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작가는 무슨 기분일까"라고 J에게 물었다.
J는 그림이 포토존이 된 것 자체도 현대미술이지 않겠냐며 대답해 주었다.
The broad에선 다양한 설치미술들과 팝아트도 볼 수 있었다. 통통 튀고 세련된 작품들이 많아 확실히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1층엔 일본 작가(아마도 쿠사마 야요이)의 단독 전시홀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관람하려 줄을 서고 있었다. 물론 나와 J는 한국인답게 일본인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서진 않겠다며(사실 그냥 귀찮았다) The broad의 메인이었을 것이 분명한 작품들을 모두 보지 않고 나왔다.
전시를 다 보고 나가는 길, 미술관 옆 블럭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도 볼 수 있었다. The broad 못지않게 독특한 건축 양식에 보고 싶던 건물이었는데 쉽게 발견해 기분이 좋았다. 고풍스러움 보단 세련됨이 느껴지는 LA 건물들을 보며 미국은 확실히 유럽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J와 이런저런 전시의 감상평을 나누며 다운타운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45분 기다리고 무료로 이런 전시를 봤다는 것에 괜히 뿌듯했다.
<소소한 tip>
the broad 공식 어플을 다운 받으면 오디오 가이드 이용 가능(아이폰 한정)
화요일~일요일 1:15pm, 3:15pm 무료 투어(공홈 public tour schedule에서 확인 가능)
주차 3시간에 $17, 15분 추가당 $5, $25 이상으로 주차요금 부과 X
평균 대기 시간: 평일 30분~40분, 주말 60분(현장 예매의 경우)
짐 보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