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세 번째 이야기
밴쿠버 셋째 날,
현주언니가 떠났다. 원래 혼자였는데 있던 사람이 없어지니 새삼 혼자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비가 안 오길래 우산 없이 빈손으로 나갔는데,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밴쿠버 다운타운을 걸으며 조금 막막함을 느꼈다.
게스 타운 증기시계 근처에 있는 'cafe buro'에 들어가 라테 한잔을 시켰다. 우드톤의 캐주얼한 카페였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사람 구경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카페 안엔 노트북 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이렇게 앉아있으면 현지인처럼 보일까 쓸데없는 기대를 잠깐 해봤다.
창을 통해 밖을 보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처럼 우산 없는 현지인이 태반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운타운부터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부슬비는 아니었지만 외국에서 비 맞은 전적이 많기 때문에 이 정도쯤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비 맞는 걸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달갑지 않지만 외국에서 비를 맞으면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나 '어바웃 타임'같은 장면 말이다.
이럴 때면 H와 보낸 프라하의 밤이 생각난다. 그때도 딱 이렇게 비가 왔는데, 축축하게 젖은 밤거리를 걸으며 신나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까를교를 건너 화약탑을 지나고 있었다. 밤이라 인적이 드물어진 거리는 물을 먹어 가로등 불빛들을 비치고 있었다. 나는 외국에서 비 맞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방방 뛰었는데 H는 그런 나를 재밌다는 듯이 쳐다봤다. 우리 둘은 머리까지 푹 젖은 상태로 호텔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낭만적이던 유럽의 길거리와 같이 웃어주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애석하게도 밴쿠버에선 혼자인 데다 낭만적인 거리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옷부터 신발까지 적신 채로 돌아오니 오후 네시였다. 호스텔은 여행자들이 다 나간 탓인지 고요했다. 30분가량을 비 맞으며 걸어왔더니 몸이 녹진해졌고 조금 지친 기분이 들었다. 밴쿠버의 마지막 날은 별 것 없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