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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이라는 미국 땅 그리고 재회

시애틀 첫번째 이야기

by summer

내 생에 처음 밟아보는 미국 땅. 그렇게나 설레던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미국에 로망이 있었나 보다.

밴쿠버에서 시애틀은 버스로 4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중간에 입국심사를 하긴 하지만 서울-강릉 정도의 거리인 셈이다.


그동안 악명 높은 "미국 입국심사"이야기를 들어와서인지 시애틀행 버스를 타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약한 버스는 숙소 근처 Holyday Inn 호텔 앞에서 탈 수 있었다. 오전 9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옆 마트에서 물 한 병을 구입했다.


버스는 이르게 도착해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세 번째 좌석 창가에 앉았는데 내 앞자리는 어느 동양인 친구 세명이 앉았고, 건너편에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앉았다. 그 여자아이는 내게 볼펜을 빌려갔는데, 조금 뒤 앞에 앉아있던 남자애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애는 대뜸 내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난 정말 당황해서 "w.. why..?"라고 대답했고 말한 뒤 바로 저 짤막한 대답을 후회했다. 아마 그 친구는 뒤에 앉은 동양인 여자애가 어떤 앤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것이다. 그런 호의에 고작 why라니. 나는 바로 "to Seattle!"이라고 고쳐 말했고 그 뒤로 몇 마디가 핑퐁 했지만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미국식 'small talk'에 면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튼 두 시간 정도 달리자 미국 국경이었다.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섰는데 대답에 질문을 못할까 봐 그리고 예약 내역을 보여달라고 할까 봐(서류 준비를 따로 안 해갔기 때문에) 심장이 쫄렸다.
심지어 앞에 몇 명은 뭔가 걸렸는지 옆으로 빠져있기도 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What is your destination?"

"Seattle!"

"What's the purpose of your visit?"

"for travel!"

"What will you do in seattle?"

"어..... i'll go starbucks.."

내 허술한 대답에 심사관은 아주 쉽게 보내줬다. 속은 안절부절 허둥지둥 난리가 났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죄다 단답이었다. 스타벅스 가겠다는 말이 재밌었는지 웃음을 흘리며 좋은 여행되라고 덕담까지 얹어줬다.

긴장이 확 풀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드디어 미국이었다.

두 시간 정도 더 달리고 버스는 시애틀 시내에 진입했다. 시애틀은 유럽과는 다른 느낌으로 이국적이었고 미국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빈티지한 매력이 있었다.

난 내 몸만 한 하얀색 백팩과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걸었다. 5분 거리에 있는 딘타이펑에서 딤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건물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 계단을 올라야 했다. 아무래도 커다란 짐들을 들고 계단을 오르기란 불가능해 보여서 포기하고 숙소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내가 내린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였다. 큰 마트 뒤로 똑같이 생긴 주택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그중에 내 숙소가 있을 터였다.

숙소 가는 길

우리의 숙소는 시내와 조금 떨어진 탓인지 가격에 비해 굉장히 넓고 깨끗했다. 구분 없이 부엌과 침실과 거실이 연결되어있어 실평수보다 넓은 느낌이 들었다.


시애틀 숙소 !


J는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자기가 오기 전까지 잠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침대 이불이 참 폭신해 보였고 살짝 누워봤더니 잠이 몰려왔다. 잠깐 눈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창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반년만에 본 J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껴안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까 무뚝뚝한 서울 여자인 내 입에선 "어 왔어?" 밖에 나오지 않았다. J도 들어오면서 반년만에 봤는데 반응이 너무 덤덤한 거 아니냐며 투덜거렸다.

둘이 이렇게 떨어져 지낸 건 처음인데.. 다시 보니 연인도 아니면서 괜히 가슴이 울멍거렸다.

반년만에 만난 단짝 친구와의 재회 장소가 시애틀이라니, 뭔가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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