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by 최열음

함께 일하는 파트너와 싸워본 적이 있는가. 나는 싸워본 적은 없지만 화를 입은 적이 있다. 그야말로 화를 당한 것이다... 내 상식으로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선배라는 이름으로 나보다 먼저 입사한 자에게는.


스타벅스의 계급은 바리스타 다음 슈퍼바이저, 부점장, 점장이다(매장 근무자에 한해서). 우리는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기 때문에 호칭을 생략하고 닉네임만 부른다. ‘~님’ 도 붙이지 않는다. 그건 다분히 한국적인 것이고… 우리는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권력관계나 수직 관계가 없는 줄로만 알았다. 나이브했다. 바리스타끼리도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배이자 꼰대가 된다.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처음 들어오고 3개월은 온갖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느 정도 안정기가 지나야 굳건한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5개월 차인 나는 아직도 애기 바리다.


우리 매장에는 바리스타보다 슈퍼바이저가 많았다. 계속해서 전배를 가고 전배를 오고 신입을 뽑으니까 달라지기는 했지만, 내게는 동갑내기 바리가 하나 있다. 그는 나를 지극히 챙겨주었고 나의 빠른 적응을 돕는 다정한 역할을 했다. 피로할 만큼이기는 하지만 짓궂은 장난도 치고 꿀팁들도 알려주었다. 권력관계를 알려주기도 하고 모두의 미움을 받는 사람과 그 이유를 알려주기도 했다. 5개월 간 그는 나의 피난처였으며 완벽한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당연히 없다. 그는 4남매 중 막내였으며 질투가 많고 소심하며 견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견제했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고양이처럼 다가와 냥냥펀치를 몇 번 날려보고 내가 반응하는 걸 보니 다가와도 좋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가끔은 내가 실수하거나 루틴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 앞에서 지적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일름보이기도 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게 큰 폭탄을 터뜨렸다. 그가 나의 신발에 얼음을 하나 떨어뜨려 내가 등을 한 대 때렸더니 개정색을 하면서 ‘저는 이런 거 싫어해요’를 시전하는 게 아닌가. 너무 당황한 나는 흘리듯 미안하다고 했으나 그게 성의 없이 들렸던 모양이다. 진심이냐며 반문하는 그에게 한번 더 당황했다. 완전 진심이라고 하며 상황을 무마하고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마스크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그를 한참 참고 보다가 미안하다고 귓속말을 한번 더 했다. 그러자 ‘뭐가요???’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명쾌하게 웃길래, 화가 풀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는 한 마디도 걸지 않는 그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꼈다. 커피를 내리는 입에서 아주 쓴 맛이 났다. 초반에 사람들의 텃세를 견딜 때로 돌아온 듯했다. 나를 두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아는 이야기,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포스 앞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더는 미안하다고 할 생각이 없으나 다시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사과를 세 번이나 할 수는 없다. 지금껏 내가 당했던 선 넘는 장난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등짝 한 대 때렸다고 틀어질 사이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깊게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파트너와의 원활한 관계가 나에게는 건강한 일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 그게 어긋나니까 출근하는 게 지옥 같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해서, 그리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고 해서 남은 시간을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파트너고, 파트너끼리는 실수할 수도 있으며, 그런 작지만 괴로운 일이 앞으로도 수 없이 있을 거라는 거. 이틀 후에 그 파트너를 다시 마주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했지만 실제로 만나고 보니 걱정하던 것만큼 최악이 아니었다. 그도 민망했던지 허둥대면서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게 느껴졌다.


다시 만난 우리는 혀도 꼬이고 몸도 꼬이고 평소와는 조금 달랐지만 평소와 닮아가기로 합의한 듯했다. 물론 나의 찝찝한 마음은 같지 않겠지만 일상의 궤도로 다시 진입했다는 것만으로 유의미했다. 궤도를 벗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자주 괴롭게 하지만 결국 희미해질 것이다. 다시 선명해졌다가 희미해지기를 반복하면서 경험으로 단단히 무장된 파트너가 될 것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만이 우리의 업무는 아니니까. 파트너끼리도 가장 좋은 걸 대접하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