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물 좀 마시고 올게요

by 최열음

러시 아워가 끝나면 바에 서있던 파트너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누군가는 한 시간 동안 영수증 번호만 불렀고, 누군가는 백 잔 이상의 커피를 말아주었으며, 누군가는 프라푸치노만 갈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손님을 응대한 포스와,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고 닦아주고 옮겨주는 자도 있다. 그러니 러시가 끝나면 백룸으로 들어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얼음물을 들이켜야 한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앞으로 나온다.


나는 바쁠 때 포스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는 하지만 압박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음료는 루틴에 따라 제조되어야 하고 너무 늦지 않은 타이밍, 정확히는 고객이 답답해하며 찾아오기 한참 전에 전달되어야 한다. 고객들은 주문할 때 대기 시간을 듣고 헉하긴 하지만,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본다. 그러나 그들의 출근시간 혹은 점심시간은 언제나 짧고 유한하기 때문에 굳은 표정으로 핸드오프 앞에 서 있다.


오피스 매장에서 일하는 나의 경우에는 직장인들 점심시간마다 뒤집어진다. 그들의 점심시간이 우리의 노동시간이고 특히 가장 바쁜 시간이다. 그 한 시간 반의 매출은 기본 80만 원대다. 직장인들은 각종 음식 냄새를 은근하게 풍기며 달고 쓰고 시원한 것들을 주문한다. 그들에겐 나른한 오후를 버티기 위한 각성제인 셈이다. 우리에겐 그냥 폭탄이 던져진 셈이지만.


오전에 근무하는 파트너들은 12시만 생각하면서 일한다. 매장을 완전히 오픈하고 난 후에는, 오직 12시를 위해 준비하고 움직인다. 러시 때 필요할 것들을 차곡차곡 채우고, 부족한 부재료도 넉넉하게 준비해 둔다. 마치 파티를 준비하는 주최자들처럼 한 발 앞서서 생각한다. 그리고 열한 시 반이 되면 단골이 등장한다. 저들이 왔으니 이제 시작이구나, 실감한다.


그리고 열두 시가 되면 밥을 일찍 먹은 부지런한 직장인부터 몰려든다. 그들은 네다섯 명씩 줄을 서서 원하는 음료들을 하나씩 말한다. 주문하는 것을 보면 일하는 분위기도 대충 짐작이 된다. 보통은 한 명의 상사가 음료를 사주는 식인데, 부하 직원들이 음료를 빨리 고르도록 인상을 쓰며 재촉하는 유형도 있고, 웃으며 여유를 두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우리는 빨리 골라줄수록 좋다.


가끔 한두 명의 앳된 직장인들이 목에 사원증을 걸고 원하는 음료 목록을 쭉 불러준다. 나도 언젠가 취직하면 이런 모습이 될까, 상상하며 주문을 받는다. 거듭 확인하고 더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본 후에 영수증을 건넨다. 그들은 미션을 달성했다는 듯 안도의 숨을 쉬며 뒤로 가 앉는다. 우리가 만든 커피를 전달하는 게 저들의 주 업무는 아니길 바라며 잠시 바라보지만, 바로 다음 손님이 주문을 시작한다.


나는 주로 손님들을 최전선에서 맞이한다.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은 더 높은 직급의 사람의 것이다. 실은 그런 센스가 가장 어려운 것이므로. 나는 주로 주문을 받거나, 거의 다 만들어진 음료를 마무리해서 손님들에게 전하는 식이다. 음료를 전하는 핸드오프에 서 있을 때면 집중력이 생명이다. 나의 왼쪽, 오른쪽에서 갖가지 음료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거기 적힌 번호와 음료를 확인해 휘핑을 얹고 얼음을 채운 뒤에 적절한 손님에게 전달한다. 가끔은 테트리스 같아서 재밌다가도 끝나지 않는 걸 보면 아득해진다.


그러나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 바쁨은 반드시 끝날 것이며 이들은 곧 돌아갈 것이라는 바람. 그들을 무사히 맞이하고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특히 그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갈 수 있도록, 최상의 스타벅스 경험을 제공하는 것... 절대 주문이 밀려든다고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 최전선에 선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막막해지는 순간 멘탈이 털리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만지고 있는 음료에 충실해야 한다. 다가올 폭풍까지 염려해서는 당장 살아남을 수 없다.


출근하기 전에는 막막함에 잠식되곤 한다. 출근 전날부터 상상하곤 한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과는 어떨지, 손님이 얼마나 많을지, 어떤 이유로 혼이 날지,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잠시 아득해졌다가도 어찌어찌 5개월을 버텨온 관성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매일이 압박 면접 같아도 결국은 견뎌낼 수 있도록, 언젠가는 폭풍 속에서도 웃으며 농담하는 여유를 부릴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잠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