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절함, 유연함, 순발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센스로부터 나온다. 특히 스타벅스에서는 센스 발휘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눈치 없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고, 바쁜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나는 스타벅스에 오기 전, 메가 커피와 이디야 커피에서 각각 많은 것을 느끼고 왔다. 메가에서는 손님과 음료의 회전율에 압도되어 기진맥진했고 이디야에서는 너무 심심한 카페는 다닐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매우 상반된 카페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벅에 진입했고, 이곳은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였다.
그야말로 모든 것의 집합체. 피크 타임에는 엄청난 음료량과 업무 속도를 보았고, 그 외 시간에는 오픈이나 마감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했다. 특히 우리에게는 숨겨진 서포트라는 역할이 있다. 서포트…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누군가 음료를 잘 만들고 주문을 받고 매장 전반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동안, 서포트는 자신이 필요한 구석을 적절히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그 구석을 파고드는 일이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해서 한참을 헤맸다. 사실은 아직도 어려워하는 중이다. 서포트는 주로 피크타임에 프라푸치노 같은 음료를 만들어주고, 푸드를 꺼내거나 데워주고, 컵이나 뚜껑을 채워주고, 손님이 밀리면 주문도 받아줘야 한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서포트는 주로 숙련된 바리스타나 슈퍼바이저 이상이 맡는다.
꼭 서포트뿐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센스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힘이고 능력인데, 그걸 기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경험과 눈치가 필요하다.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채워야 할 빈틈이 보이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들어온 바리스타에게 센스를 요구하는 건 비합리적이지만, 있으면 좋은 것이다. 카페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그 짬바가 있다.
이에 비해 한 매장에서 오래 일하면 생기는 것이 있다. 바로 명분이다. 센스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이제부터는 명분 싸움이다. 카페에서 명분이랄 게 뭐가 있겠나 싶겠지만, 사실 웬만한 일을 익히고 나면 각자의 스타일 대로 다르게 일을 하게 되어있는데, 그 스타일을 인정받도록 해주는 게 명분의 역할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새로 들어온 바리스타 A가 한 것과 슈퍼바이저 B가 한 것은 다른 취급을 받는다.
A에게는 지적이 들어오고 B에게는 인정이 들어온다. 한 달이 넘어서고부터 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은 명분 싸움이구나, 나에게도 명분이 생기면 내가 한 일에 대한 고유성을 인정받겠구나, 하고 바닥을 쓸면서 자주 생각했다. 처음 들어온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적을 받았다. 큰 일에 대해서는 곧바로 인정하고 반성했으나 사소한 일에 대한 건 짜증이 밀려왔다. 행동마다 지적이 따라오는 건 아주 피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게도 명분이 주어지고 나의 스타일을 인정받는 것 같지만, 실은 아직도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자주 어렵고 실수하고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내게 주어진 역할에서 할 일이 없을 때 곤란하다. 애써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해보려고 하지만 몸이 빨리 움직이니까 금방 동이 나버린다. 그래서 친밀한 바리스타들은 이런 일을 해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할 일이 없어지면 민망해진다는 이해의 표현을 덧붙이면서.
센스와 명분은 사실 카페가 아니더라도 어느 일터에서든 필요할 것이다. 그 두 가지가 있으면 어떤 일을 해도 어렵지 않을 것이고. 이 사실을 스타벅스에서 깨달은 게 참 다행인 것도 같다. 이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이 시간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때 쭈뼛쭈뼛하고 곤란해하던 나를, 압박감 속에 자주 바스러지던 나를 돌아보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