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는 파견이라는 제도가 있다. 일손이 부족한 매장에 다른 지점 파트너들이 파견 근무를 와주는 것이다. 우리 매장에서도 몇 명 본 적이 있다. 보통은 자차가 있는 파트너가 많이 와주는 편이고, 가까운 곳에 산다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파견은 낯설고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원정팀의 마음으로 뻔뻔하고 당당하게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견은 어느 정도 경험과 실력이 되는 파트너들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받을 때도 그런 파트너들을 원한다. 10분 정도 무엇이 어디 있는지 스캔한 뒤에, 자신의 역할을 착착 해내는 사람들. 보통은 블랙 에이프런을 입은 파트너들이 많이 온다. 꼭 블랙이라고 일을 잘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커피에 대해 잘 알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사람들이라는 암시니까.
우리 점장님은 파견을 자주 받는 사람이므로 이미 봤던 파견인들을 또 볼 일이 생긴다. 보통은 손이 부족하면 파트너들에게 연장을 때려가면서 빡세게 굴리거나, 파견을 받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후자다. 그래서 파견을 많이 받는 만큼 많이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가까운 매장에서 파견을 안 주면 좀 서운해하기도 한다(물론 점장님만). 그는 많은 사람에게 많은 이유로 서운해하는 편이다.
가장 최근에 왔던 파견자는 일을 무지 능숙하게 하는 자였다. 어느 정도 짬이 찬 사람들은 스타벅스라면 어딜 가나 똑같다고 한다. 이 말을 한 파트너는 리저브 매장과 디티 매장을 모두 거치고 온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단체 음료가 들어오면 ‘음료 스무 잔 들어와요~’ 라며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하는 자다. 그 정도로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지. 그런 사람이 우리 부점장이 됐다. 아주 신비롭고 멋지다.
어제의 파견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음료가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솔직히 파견으로 오면 파트너들끼리 하는 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고, 자연스럽게 대화에 스며들기도 어렵다. 그러면 일을 미친 듯이 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파견자들이 그랬다. 기존 파트너들은 파견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함께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우리 파견자들은 이방인의 마음으로, 지금껏 파견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기억들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일을 두 배로 뛴다. 평소라면 바로 버리지 않을 쓰레기도 냅다 버리러 다녀오고, 자잘한 일들도 시간을 채워가면서 열심히 하게 된다. 나는 두 번째로 파견 온 언니에게 열심히 말을 건다. 쉬엄쉬엄 하시라고, 어쩐지 매장이 평소보다 조용하다고. 새롭게 발령받았다는 매장은 어떤지 안부를 묻는다.
그는 지난번에 우리 매장에 와서 나의 질문 세례를 받고 갔다. 어쩐지 그는 노란색을 좋아하고, 차이티 라떼를 두유로 바꿔서 먹는 편이고, 아메리카노는 블론드 샷이 맛있다고 했는데, 그가 쓰던 텀블러가 아주 탐났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베이지 색의 스타벅스 텀블러였는데, 그녀가 멋있어 보여서 인지 그가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텀블러를 살까 말까 고민했었다. 포스에 있으면 눈에 바로 보이던 텀블러였기 때문이다. 그치만 누군가가 멋짐을 따라 소비하지는 않기로 했다.
게다가 그녀는 곧 전국 매출 상위권 매장으로 전배를 갈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덤덤해 보였지만 해당 매장의 명성이 워낙 높은 터라, 오히려 내가 더 떨려했다. 그리고 약 세 달 후에 우리 매장을 다시 찾은 그녀는, 정말이지 똑같았다. 전혀 지치지도 않아 보이고 신나지도 않아 보였다. 그냥 덤덤하고 묵묵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자신의 업무를 봤다. 이번에는 그 일관성을 닮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롤모델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존경 레이더에 걸리면 쉽게 마음을 주고, 그의 멋짐을 흡수하고 싶다. 우리 매장에서는 아직 그럴 만한 사람을 딱히 보지 못했다. 물론 부분 부분 존경하긴 하지만 완전히 롤모델 삼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특히 우리 점장님을 보면... 이번 파견 근무를 받게 된 것도 그가 아이돌 컴백 무대를 보러 갔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파견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 점장님 어디 가셨는지 아냐고 묻자, 아이돌 보러 간 거 아니냐며… 정확히 알고 있는 게 아주 부끄러웠다. 그가 아이돌을 보러 가는 데 2박 3일을 빼야 했기 때문에, 나는 오후에 결혼식이 있지만 오전에 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넣어 두었다. 오늘의 스케줄 때문에 파트너들을 들들 볶다가, 결국 내가 출근하고 파견자를 받는 것을 택한 뒤에 홀연히 사라졌다. 아주 오렌지색의 캐리어를 끌고 서울로 떴다.
곧 그를 만나게 되면 대뜸 자신의 콘서트나 아이돌 이야기를 할 것이다. 물어보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해도 할 것이다. 자랑스럽게 그리고 여운이 남았지만 현실로 돌아온 것이 애통하다는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영혼 없는, 그러나 정성을 들인 사회인의 웃음을 달고 그에게 대답할 테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이방인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