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치계에 입문했다

by 최열음

일하러 가기 전, 조용한 개인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쓴다. 실은 조용하다고 해서 온 카페인데,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직장인들과 마주 앉게 되었다. 누가 봐도 조금은 지친 얼굴로 카페를 찾은 사람들, 그래서 아메리카노가 시급한 사람들. 그런 얼굴들을 자주 목격한다. 나 역시 오전에 출근할 때면 그런 사람들만 보인다. 점심시간에 단체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8할이 그런 얼굴이다.


직장인 틈에서 민낯으로 헤드셋을 끼고, 패드 앞에 앉아있으려니 조금은 민망한 기분이 든다. 아마 나를 지독하게 부러운 백수로 생각할 테다. 뭘 하길래 이 시간에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혼자 상상 속에서 나의 업을 밝히는 상상을 해봤다. ‘ㅅ.. 타벅스에서 일해요.’ ‘어디요????’ ‘스.. 타벅수요!!!!’ 하고 말하는 상상을. 사실 진짜 직업도 아니지만.


그들이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하고 빈컵을 반납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나 부하 직원은 몹시 피곤한 위치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평등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해도, 서로 닉네임을 부르며 존칭을 생략한다고 해도, 여전히 부하 직원들은 커피를 가져오고 다시 가져다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솔직히 저들이 바로 엉덩이를 떼지 않으면, 당장은 상사가 일어나더라도 언젠가 개념 없는 후배의 됨됨이를 걸고넘어질 거다. 그게 사회의 면면이니까…


사회는 정치다. 어떤 사회든 정치적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이런 말을 했다. 세상 모든 게 정치적이라고. 나의 작고 소중한 사회에서도 그 말을 자주 떠올렸다. 우리처럼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견디는 사람은 예민해질 수밖에. 또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그러다 보면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그래서 누군가는 투명하고 단단한 벽을 치게 된다. 관계가 형성되거나 부서지는 걸 자주 목격한다.


정치가 활발한 곳에 꼭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십을 전하고 즐기는 사람들. 열댓 명의 파트너가 모두 여자이고, 적지 않은 기싸움도 있으니 가십걸 세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가십걸은 두 명이다. 자기 얘기보다 남의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정확히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어떻게 이야기하든 뒤에서 하면 과장되고 무책임해지고 가벼워진다. 변명할 당사자가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해도 슈퍼바이저나 그 이상의 말이라면 신뢰가 붙는다. 이것도 명분의 연장선이다. 명분으로부터 정치가 시작된다. 이렇다 할 명분이 있기 때문에 인정이 된다. 명분이 없는 자는 정치적으로도 권력이 없다. 그러나 명분이 있어도 정치판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수한 경우지만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뭐냐 하면 그가 미움을 받을 때이다. 정치판의 희생자들…


우리 매장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 다 큰 사람들이 치사하게도 말을 전하고 부풀려 미워하는 걸 본다. 나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파트너도 사람들에게 상당한 미움을 받았다. 매장에 1년 이상 있었던 사람들이 그의 답답함을 욕하고, 때로는 벼르는 것을 보았다. 자기 앞에서 한 번만 잘못했으면 좋겠다고, 그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거다. 입사한 지 한두 달도 되지 않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나 역시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그러나 우습게도 남을 욕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전배를 가게 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러자 정치판의 구도가 바뀌었다. 도태되었던 윗사람들이 빠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니, 얼마 남지 않은 고인물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자신의 뒤를 받쳐주고 지지해주던 파트너들이 사라지고 나니,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우리 매장은 이런 변화 덕분에 더는 고이지 않고 신선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정말이지 잘 된 일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히고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가 업무 환경과 직결된다. 스타벅스에서는 한 매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하는데,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도태될 게 뭐 있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이해했다. 누구든 한 곳에 2년 이상 있으면, 특히 우리처럼 반복적인 사람과 반복적인 일을 하는 환경이라면 고이기 십상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정치판이 싫다고, 그런 게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고, 그래서 자연히 부패되는 게 싫다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 다시 한번 그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조그마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새로 들어온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분위기 그 자체일 수 있으므로, 다음주부터 같이 근무할 새 바리스타에게 아주 비정치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바리스타지 정치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