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일ㅌ기가 의심되네요

by 최열음

(이 글을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조금 감춰야 했다.)


마감과 오픈을 적절하게 오가던 어느 날, 이 일이 단조롭다고 느낀다. 권태라는 건 그렇게 질기고 갑작스럽다. 매번 하는 말과 행동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 사람을 대하는 것도 카페도 다 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때쯤, 일태기가 시작된다.


나는 보통 카페에서 일하면 8개월을 마지노선으로 했다. 매번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가 딱 적당했다. 메가 커피와 이디야에서도 8개월, 스타벅스에서도 8개월 정도 일할 계획이다. 그 선을 넘기면 생기가 사라지는 편이다. 권태로운 와중에 손님들에게 친절하려면, 흩어진 영혼을 끌어모아야 한다. 아직 뼛속까지 다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물론 지금도 다른 파트너에 비하면 자라나는 새싹도 아닌 수준이지만, 애초에 여기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점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더 피로해진다. 예를 들어 그날의 포지션을 짜는 슈퍼바이저의 의도가 보이고, 꼼수가 보이고, 텃세와 꼰대미가 보이면 아주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어진다.


이제 거의 6개월을 일한 나는 아직도 많은 지적을 받는다. 정석대로 하라는 파트너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들에게도 그렇게 엄격한지 묻는다면, 정답은 역시 그렇지 않다. 남에게 엄격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솔직히 2-3년 정도 일한 파트너에게 지적받는 것은 세월이 있어서라도 수용해야겠지만, 나보다 몇 달 일찍 들어온 사람들의 지적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다. 지적을 위한 지적은 쿨하지 못하다.


요즘 내가 가장 피로를 느끼는 것은 점장과의 대화다. 또는 점장의 태도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자랑을 시작한다. 그게 아니면 타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모든 파트너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착하게 사는데 세상이 자기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점장님은 저한테 왜 그러시는데요…


한편으로는 그가 안쓰럽다. 즐거움이라고는 아이돌 보는 것 하나인데, 그것도 수많은 노력과 자본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이제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계속 마지막 티켓팅을 하고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놀러 다니는 것도 싫어하는데 가족도 싫어해서, 아이돌 외에 어떤 행복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인은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편이 아니라고 말한다.


게다가 매장에서도 거의 모든 파트너들에게 암묵적인 미움을 받아서, 최근에는 지역 매니저까지 매장에 다녀갔다. 아마도 그의 지난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한 슈퍼바이저 언니는 내게 그녀와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이 어려운 건데, 바뀔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적어도 많은 파트너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가. 이 복잡한 관계망에서 빨리 헤어나오고 싶다.


같은 언니가 내게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노코멘트했지만, 이제는 곧 퇴사를 고할 것이기 때문에 상반기 안쪽까지 다닐 거라고 처음으로 디테일하게 답했다. 그 언니는 내게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라며, 얼른 여기를 뜨라고 말해주었다. 내 생각엔 빨리 나가라고 해주는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사람이다. 내게 오래 남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편하자고 그런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일이 지겨워질 만큼 익숙해진 지경에 이르렀나 보다. 반가운 일이면서도 애석하기도 하다. 어떻게 적응했는데, 곧 나간다는 게 조금 섭섭하면서도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일태기라고 하기에는 아직 일한 기간이 민망스럽지만, 일하는 중간중간 오는 그 권태감을 무시할 수가 없다. 표정 없는 바리스타로 오래 남는 것보다, 편안히 웃는 손님으로 스타벅스를 찾고 싶다. 다시 생기를 찾기 전까지 가짜 눈웃음이라도 지어야겠지. 사회인의 눈을 착용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