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W.milk vs O.milk

by 최열음

스타벅스에는 다섯 가지 종류의 우유가 있다. 기본, 저지방, 무지방, 소이, 오트까지. 다섯 가지의 우유를 구별해서 손님의 입맛대로 음료를 제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사실 음료 제조가 일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음료는 한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음료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주로 하지만, 우리의 비전은 한 고객과 공동체에게 영감을 주고 풍요롭게 하는 것. 그야말로 음료를 매개로 하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일 뿐, 음료는 수단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고작 음료를 먹기 위해 스타벅스를 오는 게 아니다. 스타벅스가 주는 분위기, 영감, 공간, 소통을 위해 온다. 딱 음료만 먹기 위해 오기엔 음료 맛이 기가 막힌 것도 아니다. 이곳은 그냥 성공적인 마케팅의 산물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다른 곳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커피에 지불하기엔 비싼 금액이라도 사 먹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희소성은 없지만 오히려 완전히 대중적이라서 친밀한 무엇. 저렴한 느낌은 아니다. 완전히 대중 곁에 존재하면서도 어쩐지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과 단절되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상과 분리된 일상 같달까…


그렇게 내부자가 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해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남이 마실 우유를 열심히 골라가며 만들어주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별로 싫지 않다. 하지만 바쁠 때는 커스텀이 정말이지 귀찮다... 커스텀을 전부 바꿔먹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보는 건 특히 말차 프라푸치노다. 우유를 무지방으로 바꾸고, 자바칩을 9번 추가해서 반은 갈고 반은 토핑으로, 베이스를 라이트하게 바꾸고, 휘핑은 에스프레소 휘핑으로. 이렇게 바꾸면 그건 말차 프라푸치노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게 스벅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트너들은 뒤집어질 노릇이다. 특히 나 같은 초짜는 그런 음료가 들어오면 우유 넣기 전에 라벨 보고, 얼음 넣기 전에 라벨 보고, 자바칩 넣기 전에 라벨 보고… 음료 하나 만드는데 라벨을 다섯 번씩 들여다봐야 한다. 외워서 하면 좋겠다만 정신없이 바쁠 땐 하나하나 확인하는 게 정확하기 때문에…


어제는 아침 7시부터 1시 반까지 근무를 했다. 보통은 10시에 브레이크라 그때까지는 오픈만 잘하고 조금의 손님만 맞으면 된다. 잠시 쉬고 온 후에는 피크 타임을 대비한다. 그리고 12시부터 러시를 치다가 1시 반에 퇴근하는 게 보통적이다. 그런데 어제는 9시에 러시가 터졌다. 보통 아침에 터져도 8시쯤 출근 시간에 맞춰서 터지는데, 어제는 생뚱맞게 9시에 터졌다. 이런 게 진짜 곤란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때 터지면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3명씩 일하는데 이런 때는 2명밖에 없다. 한 명은 주문받고 한 명은 음료를 만드는데, 커스텀까지 현란하면 돌아버린다. 포스에서 주문을 받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 싶으면 뒤에 가 있는 사람을 부를 수 있는데, 그러라고 만든 벨도 있다. 그냥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어제는 방심한 탓에 둘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뒤에 있는 언니를 부르지 않았다.


뜨순 라떼가 6잔 들어온 게 시발점이었다. 기계는 2대인데 스팀을 6개 치려면 동시에 두 개씩 세 번 해야 한다. 그러고도 음료가 줄줄이 들어오면 마음이 급해진다. 이후에 파트너랑 얘기하면서 라떼 6잔이 들어왔을 때부터 언니를 불렀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그리고 그건 포스의 역할이었다. 나는 그 언니를 부르는 대신 주문을 얼른 받고 바를 도우려고 했다. 바에서 음료를 잘 내보낼 수 있도록 음료를 만들어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기로.


다른 건 다 제대로 했는데, 어떤 사람이 돌체 라떼를 W.milk로 변경해 먹는 걸 보고 O.milk와 헷갈려 냅다 오트 우유를 부어서 내보냈다. 원래 돌체에는 무지방 우유가 들어간다. 근데 오트 밀크가 들어가면 색깔이 아주 고소해지는데, 바에 있던 애도 바쁘니까 별생각 없이 내보낸 거다. 그리고 음료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후에 내게 물었다. ‘아까 일반 우유로 나간 거 맞죠?’


나는 아주 사색이 되었다. 분명 오트 우유로 나갔는데, 생각해 보니 W였던 게 스쳐갔기 때문. 보통 ~.milk 라고 쓰여있으면 오트 우유였기 때문에 아주 방심을 해버린 것이다. 사실 우유 하나 바뀐 게 별 일인가 싶겠지만, 스타벅스는 컴플레인이 잦기 때문에… 쿠폰과 함께 사과를 받아갈 때가 많다. 이런 커스텀 변경이 특히 그렇다. voc라고 하는데, 손님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런 건 우리가 듣고 사과하고 반성해야 끝이 난다. 실질적인 보상도 필요하고.


물론 나의 실수지만, 내가 일반 우유로 내보냈다고 탄식하자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파트너의 표정 때문에 더 식겁했다. 우유 하나 잘못 나간 게 이렇게까지 기겁을 할 일인가.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나 역시 순식간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던 일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위협적인 얼굴이었구나. 누군가의 실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건 역지사지가 되어야 온 감각으로 느끼고 반성할 수 있다.


사실 그 고객이 voc를 올리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우유 좀 바뀐 거 가지고 석고대죄하고 깊이 반성할 마음도 없다. 내가 고치고 싶은 건 실수를 대하는 태도이다. 실수를 한 스스로를 지나치게 다그치지 않는 마음, 또 실수를 한 타인에게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는 여유를 보이는 쪽으로. 실수로 인해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트 우유나 일반 우유나 맛만 있으면 됐지… (어쨌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