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거절은 거절

by 최열음

거절은 익숙하지 않다. 거절받는 건 좀 익숙할지도. 사실 익숙해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쪽인 것 같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 나의 필요와 관점을 먼저 생각하는 것,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엠비티아이는 *stj들… 특히 이 거절에 대한 걸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얼굴들은 모두 엣티제들…


부탁한 적도 없는데 거절당하는 기분이 든다. 어떤 언니와 이야기할 때면 그렇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목감기에 걸려 헤롱거리던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한 시간 반 포스를 보고 한 시간 반 동안 바에서 열심히 손님들을 콜링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야말로 세 시간 동안 목을 써야 하는 것인데, 열한 시반 출근이었으니 러시 타임과 딱 겹쳐 이제 죽은 목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쯤 주문을 열심히 받았을까, 손님들이 많이 빠지고 잠시 쿨타임이 왔다. 나갈 음료도 없고, 기다리는 손님들도 없지만 언제 다시 손님들이 밀려닥칠지는 모르는 상황. 커피 한 잔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좋아하던 블론드 샷을 누른다. 역시 스타벅스 아아는 그란데 사이즈에 투샷이 딱이다. 음료가 들어왔냐는 질문에 나의 것이라고 수줍게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근무 중에는 먹으면 안 돼요~’. 아주 은근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 네~ 하고 음료를 뒤에 가져다 두지도 못했다. 그저 빽과 가장 가까운 모서리에 얼음도 넣지 못한 채로 가져다 두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당황한 듯했다. 근무 중에 안 마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하다가 목이 안 마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당황스러운 상황에 내 음료를 들고 가서 얼음을 채워주고, 귓속말로 다가와서 얼른 마시고 오라고 해준 파트너가 있었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채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 언니는 기강을 잡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쓴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내가 점심에 출근하기 전까지 그 언니를 포함한 네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모두 그녀보다 어리고 천진하고 그들끼리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출근한 후에도, 그들은 내게 더 바빠지기 전에 놀자고, 지금을 즐기자고 말했다. 나는 그게 귀여우면서도 곧 다가올 러시가 어떻게 터질지 몰라서 조금은 불안했다. 만반의 준비 없는 러시는 훨씬 가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등짝 한 대 때렸다가 정색을 세게 당한 파트너는 자꾸만 나를 때렸다. 퍽퍽 치면서, 내 등 뒤에 라벨을 붙이고 장난을 치면서 관심을 갈구했다. 신나는 건 좋은데, 나는 별로 신이 안 나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을 때, 내게 무안을 준 건 내가 오기 전에 형성되어 있던 분위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건 나와는 관계없는 무엇이었다. 그래서 정말 어이가 없어졌다. 자꾸만 속에서 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나 꼭 그럴 때면 그 사람과 붙어 있는 상황이 생긴다. 이를 테면 다음 포지션으로 같이 바 1, 2를 맡아야 한다거나. 참 가혹하다... 어떻게든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외면보다는 직면을 택하게 하신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출근을 해야 한다. 역시 그 언니와 함께 일하는 날이다. 이 스타벅스의 복잡한 관계성에 대해 생각할수록 내 속만 뒤집어진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당당하게 웃는 얼굴로 가서 일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싸움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일로 기가 죽어서 죽상을 하지는 않는다는 마음으로. 사회인이 이렇게 강해지나 보다…


하필 지난주에 교회에서 엣티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 교회에만 세 명이 있는데, 그들 모두 쉽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상처를 주면 줬지, 받는 편은 아니라고. 쉽게 채이고 긁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딴 세상 이야기였다. 그리고 역시 엣티제인 파트너 언니를 생각한다. 나를 살짝 긁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언니는 곧 잊을 것이다.


그 언니가 지적할 때마다 공격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지적하는 편이라, 생각만 해도 위축되는 기분이다. 이번에 일하면서 알게 된 건, 나는 자극과 채찍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와 일하는지에 따라 아예 다른 하루가 된다. 그게 어떤 하루든 마음대로 건너뛸 수는 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으로, 거절은 거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