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끝이라는 특별함

by 최열음

“나 이제 끝났어”


유니폼을 입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와 동생에게 말한다. 꽤나 지쳤지만 조금은 설레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나 이제 끝났어… 끝났어…? 진짜 안 믿겨.


맨날 입던 유니폼 셔츠와 청바지 주머니에는 마스크가 잔뜩 들어있다. 출근할 때 쓰고 간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어두고, 새 마스크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 마스크가 숨은 잘 안 쉬어지지만 핏은 좋았는데. 이제 공짜 마스크 볼 일은 없겠다.


자주 놀러 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많이 말했다. 그중 한 명은 좀 오다가 안 올 거잖아요! 라면서 일침을 날렸다. 솔직히 맞는 말이겠지. 아무리 많이 가려고 해도 이제 임직원 할인도 되지 않는 스타벅스는 비싸게만 느껴질지 모른다.


전배를 가거나 퇴사를 하거나 휴가를 다녀오는 등 이벤트가 있으면 파트너에게 작은 선물을 돌리곤 한다. 그런 전통이 있다. 물론 선택적이지만 나 역시 많은 선물과 편지를 받았고, 그런 것들이 하루를 견뎌낼 미약한 힘을 준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우유갑 모양의 초콜릿과 편지를 준비했다. 스타벅스니까 절묘하게 우유 모양으로. 그렇게 우유갑을 잔뜩 들고 출근했다가 사물함 속 개인짐을 잔뜩 들고 퇴근했다.


생각보다 7.5개월치 짐이 많았다. 역시 정리에는 젬병이라서 그런가. 크리스마스 시즌 때 착용했던 빨간 앞치마, 별로 쓰지 않은 고체 치약과 칫솔, 빗, 근로계약서까지. 별 게 다 들어있다. 이제 이것들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잘 열지 않는 서랍에 고이 넣어두기로 한다. 닉네임이 적힌 명표는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기로 하고.


닉네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마음에 들었다. 초반에 정말 그만두고 싶다고 느낄 때도 나를 부르는 닉네임이 좋았기 때문에, 예뻤기 때문에 버텨왔던 것도 있다. 물론 아주 미약한 힘이었지만. 영어 닉네임이 주는 힘이 있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특별하고 신비한 집단에 속한 듯한 느낌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선물을 받고 간다. 나의 앞날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점장이 바뀌고, 내가 나가고, 매장에는 꽤나 급작스러운 변화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웃으면서 커피를 팔고, 하루를 열고, 또 마무리한다. 결국 스타벅스를 지켜내는 것은 파트너들이니까.


나의 마지막 근무는 역시 마감이었고, 역시 플로어 청소. 두 가지 모두 8개월 간 뼈와 살을 갈아 넣었던 곳이다. 아마 우리 매장에서 마감을 제일 많이 했을 나, 그만큼 플로어 청소도 지긋지긋하게 했다. 괜히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특별해져서 평소엔 안 하던 것들도 기쁜 마음으로 한다. 보이지 않는 먼지들도 쏙쏙 잡아낸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힘인가. 출근길도 평소와 달랐고, 옷을 입을 때도, 인사를 할 때도, 화가 날 때도 느낌이 다 달랐다. 배 째,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이런 깡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반팔 유니폼을 입던 여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는 온갖 잔소리와 지적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에어컨을 끌 수 없이 더웠던 그때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지냈다. 이제는 긴팔 유니폼 소매를 야무지게 접어 올리고 새로운 파트너를 돕는다. 가끔은 내 손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머리와 손이 엇갈리는 일도 많이 줄어든다. 보이지 않던 누군가의 농땡이나 치사함 같은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시간이 흘러야만 쌓이는 것들이 있다. 경험과 사랑과 믿음 같은 것들. 스타벅스라는 경험을 자주 미워하고 가끔 사랑했지만, 분명 내가 있었어야 할 자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간다. 이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따끔하고 매콤하고 충만한 경험들을 새기고 간다. 마지막 근무날도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이 붐볐지만, 오히려 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스타벅스 이미지를 갖고 가니 뿌듯해진다.


내가 먹인, 내가 대접한 수많은 고객들을 기억하고 또 차차 잊어가면서, 이제는 그런 고객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새로운 누군가의 파트너가 되고, 임플로이가 될 테니까. 그게 조금은 두렵고 많이 설렌다. 곧 떠나게 될 여행에 유니폼으로 입었던 셔츠를 꼭 가져갈 것이다. 여행을 위해 벌었던 돈과 시간과 노력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남색 셔츠가 되게 예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