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처음을 잊은 사람들

by 최열음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된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일주일을 쉬고 있다는 게 기적 같으면서도 곧 돌아갈 것에 대한 불안감과, 그만둘 것이라고 말할 타이밍 때문이었다. 여행을 가기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해 봤을 때, 나는 눈치 없이 걸려버린 코로나 격리가 끝나자마자 거의 바로 점장님에게 그만둘 것이라고 알려야 했다.


그 생각을 하는 동안은 한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 쉬다가도 이 생각이 들어서면 근심이 어렸다. 점장의 반응이 두려워서, 나를 얼마나 구워삶을지 예측불가능했으므로 자주 불안해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갔다…


그만두겠다고 말할 디데이를 정해놓고,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제가.. 취업준비를 하려고 하는데요.. 여행도 좀 가려고 해요..’ 사실은 순서가 좀 바뀌어서 여행부터 가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지랄할 것 같아서 뒤집어 말해요.. 나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최악을 열심히 상상하며 기대치를 낮춰가고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나는 하나님께 말씀도 받았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전쟁이 하나님께 있으니 나는 한 발 뒤에서 그의 영광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그래도 마주할 점장의 얼굴을 생각하면 자꾸만 아득해졌다. 그건 온 감각으로 다가올 분명한 현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퇴근하는 동시에 그가 출근할 예정이다. 그래서 다른 파트너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기로 했다. 분명 오늘부터 내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할 텐데,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최소한의 예의로다가... 그런데 오늘, 점장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부터 앞으로 쭉 안 올 거라고 한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고, 본인의 일에만 최선을 다해 관대하며, 자주 짜증 섞인 말을 내뱉던 그의 태도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위에서도 벼르고 있고, 아래서도 벼르고 있다가 문제를 팡 터뜨린 것.


그렇게 본사 직원들이 나와서 파트너들을 인터뷰하고, 심층 조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사 기간 동안 그를 우리와 격리시킨다는 게 정말 정말 정말 다행인 거였다. 그는 앞으로 함께 일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증발했다.


그날 오후에 매장에 와서 짐을 싸갔다고 한다. 그것도 정말 독하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지만 와서 짐을 싸고 한 시간가량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본인의 파일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점장의 길인가. 그날 매장에 있던 파트너들 중 두 명은 뒤에 가보지도 못하고 한 명은 화장실에 숨어있었다고 했다. 숨어있던 친구는 장애인 바리스타였는데, 그가 가장 많은 어려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점장은 정말 처음을 잊고 사는 사람 같았다. 자신의 처음과 누군가의 처음을. 처음을 잊은 자는 관용을 베풀 수가 없다. 자신이 얼마나 미숙하고 비효율적이며 부족했는지를 잊어버리고, 완성본과 같은 현재만 기억하면서 누군가의 처음을 비난하는 거니까.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인 거니까…


새로 온 신입이 그렇게 부적절한 판단을 받는 동안 나는 나의 지난 시간을 생각한다. 분명 학교도 다니고, 교회도 다니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나를 두고도 수많은 욕을 했을 테다. 그러나 내게도 처음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10년이나 일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초딩 시절의 과거처럼 느껴지려나.


그래도 우리는 처음을 잊어서는 안 되니까,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켜야만 한다. 누군가의 처음이 나의 처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언제든 처음이 될 수 있는 자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과 다정은 돈이 들지 않는다. 어떤 대가도 없이 영혼을 불리는 방법이다. 사랑과 다정, 누구의 처음이든 잊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