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할 수 없는 사랑

크로아티아 2

by 최열음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를 보면서 어제 하루를 마무리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제대로 하루를 보낸 첫 날이었다. 아침 시간을 알뜰하게 썼다는 이유로 홀가분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이곳에서 한달을 사는 동안 나는 나를 잘 돌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글을 쓰는 몰두의 시간을 적당히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들리는 만큼 쉬운 게 아니다.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들이 있다. 어이없게도 모두 멜로 드라마이다. 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뛰어드는 편인데, 액션이나 서스펜스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되도록 느끼고 싶지 않아서이다. 더욱이 모든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어떨지 방법이 어떨지는 몰라도 결국은.


동백꽃 필 무렵,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미스터 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뷰티 인사이드. 어떤 영상이든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들을 자주 돌려보는 편이다. 보통은 미국 드라마인데 이 낯선 세계 한복판에서까지 타국어를 듣고 싶지는 않으므로, 뷰티 인사이드를 먼저 꺼냈다.


한세계라는 주인공이 엄마와 투닥대다가 결국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걸 보고, 그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갑자기 도래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상 밖으로 엉망진창인지를 떠올린다. 내게도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이 있었으므로, 마지막인지 모르는 마지막이 얼마나 황당하고 원망스러운지 나는 안다. 그리고 이제 한세계도 안다.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유예하면서 유럽여행을 왔다고 하면 엄마는 기뻐할까 걱정할까. 둘다 하겠지. 엄마가 하지 못했던 무수한 일들과 가보지 못했던 무수한 곳들을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나를 보면 조금은 자랑스러워진다. 나, 평생 살던 동네를 처음으로 벗어났다고. 아빠의 집에서 나와 살아보고있다고. 엄마의 생애는 여기 올 수 없었으니 내가 엄마의 눈으로 보겠다고, 자주 기뻐하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우리는 늘 그렇게 속수무책이 되는데. 당도하지 않은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므로, 그렇게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이 없으므로 자꾸 망각하게 된다. 멀리 보자, 더 멀리.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던 아빠가 자주 떠오른다. 우리가 안아본 게 언제였더라. 아빠의 품이란 게 이렇게 가까웠었나.


한달살이를 하는 동안 우리는 삼시세끼를 찍게 될 것이다. 매일 밥을 차려먹는 일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정말 사고가 다른 나와 친구지만, 밥을 그리워한다는 것만큼은 똑같은 신체구나. 가짜 부부의 동거생활 같은 우리의 일상이 밥으로 인해 굴러가고있구나. 여기서 우리는 더 자라나겠구나.


간장과 고춧가루가 없는 밥상이 얼마나 밍숭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밥상을 만들어내려 한다. 때로는 비빔밥으로, 파스타로, 고기볶음으로. 대왕 큰 가지를 하나 사왔는데 객기였다는 생각을 했다. 간장 없이 가지를 어떻게 쓰지.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그 생각을 하다가 토마토 소스로 타협을 봤다. 잘 구워가지고 버섯에 말아가지고 토마토 소스에 빠뜨려야겠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아침이었다. 어제는 아침과 점심 식사 사이에 샤워를 했고, 오늘은 안 했다. 집에만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남용하면 부작용을 맞는. 씻는다는 행위가 어째서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지. 결국 글은 못 쓰고 깔짝대기만 하다가 점심을 먹고 씻었다. 씻고선 쿠키를 가지고 방에 올라와, 글을 쓰기 싫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 그는 마음에 힘을 주어 글을 쓰기 싫다고 똑바로 말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기 싫다고 그렇게나 힘을 주어 말할 수 있나. 얼마나 잘하고 싶으면 그토록이나 하기 싫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엄지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면서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 부주의하게 렌즈통을 열다가 아작난 젤네일을 외면하고 싶다. 이정도의 빈틈은 좀 용인하고 살아도 된다는 표식인 것 같다. 빈틈 없는 삶이 어디있나, 빈틈 없는 생각이 어디있고.


엄마에 대한 생각으로 더 차분해지고 담담해진 하루다. 그리움이라는 표현보다도 이제는 그냥 기억하는 일 같다. 세상에서 잊혀가는 얼굴과 목소리를 붙잡아두는 일. 아마도 엄마의 딸과 엄마의 엄마가 가장 간절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이 끝나면 할머니를 곧장 만나러 갈 것이다.


나를 자주 그리워하는 사람,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준다는 사람, 못 간다고 하니까 그럼 나한테 끓여 먹으라는 사람. 그녀가 가진 확실한 사랑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슬프고 아련한 그 사랑을 유예하고 싶어져서.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유예하다보면 분명 후회하고야 말 사랑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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