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재미없다는 남자친구에게

크로아티아 3

by 최열음

나에게는 몇 가지 발작버튼이 있어. 그건 아마 너도 알 거야. 너는 내 이름을 따서 내가 숭을 낸다고 하지. 그래서 숭희라고. 맞아, 나는 너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주 숭을 내는 사람이야. 그걸 자주 귀엽게 봐줘서 아주 고맙다고 생각해.


우리는 지금 세계를 반의 반바퀴 정도 돌아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지. 제대로 된 연애도 거의 처음이지만 장거리 연애는 더 처음이라 나는 작은 것에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어. 이를 테면 우리의 시차를 고려한 전화 시간이라든가. 제때 보내는 카톡과 답장이라든가.


너는 방금 내게 3개월이 너무 길다고 말했어. 사실 나도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해.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6개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3개월만 하기로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내가 조금은 쫄보라, 그리고 조금은 돈이 없어서, 그래서 용기를 덜 낸 게 다행이었어.


여행을 하는 동안 맹목적으로 그리워 할 대상이 있다는 게 많은 위로와 원동력이 되더라. 그리고 또 그만큼 자주 슬퍼지더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두고 3개월씩이나 유럽을 떠돌다니. 이 선택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얼마나 모험이었는지 생각하게 돼. 그러다 우리가 함께 할 평생 앞에서 이 3개월이 얼마나 짧은지도 생각해. 유한한 삶 속에 조금 더 유한한 여행이라고.


요즘 휴식 없이 주 7일을 일하는 너를 보면서 자꾸 노파심이 들어. 당신이 가장 지치고 예민할 때 내가 옆에 없다는 게 미안해져서. 내가 그럴 때마다 당신은 옆을 꼭 지켜주었는데. 그리고 나한테 항상 장난으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는데. 나는 장난으로도 도망치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네.


농담과 여유를 빼면 너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무리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이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웃으며 춤을 춰버리는 당신이니까. 퇴근 후부터 출근 전까지 축 처져서 눈물바람을 보이는 나와는 아주 다르지. 너의 옷자락에 내 눈물을 묻힌 일이 너무 잦았던 걸 생각하면 민망해져. 뭐가 그렇게 걱정되고 서러웠는지.


매일을 출근하고 퇴근하는 당신이 걱정되어서 어제는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선물하고 싶었어. 내가 없으면 카페도 디저트도 딴 세상이 되어버리는 당신이니까. 우리는 7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으니까, 디저트 가게가 오픈하려면 나는 새벽 3시야. 던킨 도너츠와 와플대학 중에서 행복하게 고민했어. 마치 내가 먹는 것처럼.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때까지 잠에 들지 않았어.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기 때문이야. 덕분에 아침에 깨어있는 너와 30분 정도 통화를 할 수 있었어. 던킨 도너츠가 약속된 시간에 오픈하지 않아서 결국 와플 대학에서 이런 저런 맛을 고민했지. 나는 이런 고민을 참 좋아하니까 더 행복했어.


알다시피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는 너와 달리 나는 모든 음식과 식사에 진심이잖아. 행복한 한 끼가 하루를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지 나는 알고 있지. 그런데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윤택한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고. 자기만족이란 게 얼마나 주관적인 일인지 생각해.


나는 당신을 만나면서 남자는 초코와 딸기요거트, 돈까스를 좋아한다는 가설을 자주 말하고 다녀. 그걸 싫어하는 남자는 많이 없는 것 같더라고. 특히 당신은 디저트에 있어서는 극강의 단맛도 용인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와플도 누텔라와 초코 오레오 같은 맛으로 골랐어. 슈크림과 애플시나몬은 곁들임으로.


새벽 3시에 그걸 시키고 너에게 “문 잘 열어조”라는 카톡을 보낸 뒤에 바로 잠에 들었어. 나는 한 번 자면 잘 깨지 않잖아. 배달이 오면 당신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카톡을 보니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사람이더라. 다른 집에서 시킨 배달일까봐 한참을 기다렸다가 먹었다는 걸 보면서 너무 웃겼어. 나라면 일단 먹었을 텐데.


그리고 추가 배달비가 들 줄은 몰랐어. 2천원에 대해서는 미안해. 당신이 이 말을 한 대가라고 생각할게. 요즘 나의 브런치가 재미없다고 했지. 퇴근하고 힘들 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글들을 보면 자꾸 다운된다고 했지. 전에도 한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내가 아빠에 대해 글을 쓸 때 당신은 그 글들을 보기가 조금 그렇다고.


그 때도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 글들을 쓸 거라고 말했어. 사실은 울었는지도 몰라. 하도 많은 날과 밤에 울어서 기억이 잘 안 나. 요즘은 스타벅스 글을 쓴 후로 내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 사실은 여행 자체보다도 여행에 대한 나의 감정인 것 같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예전 것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글.


그리고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가볍고 재밌고 우회적인 글들을 쓸 수 없을까 생각해. 그런 게 진짜 좋은 글이라고도 생각했어. 한참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들과 같을 수가 없더라고. 살아온 삶이 다르고 경험이 달라서 정서도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나는 엄마가 없잖아. 이거 봐, 또 무거워지지. 근데 이게 나의 정서네. 나의 기쁨이고 슬픔이야. 엄마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만큼 자랐고 슬펐고 성숙해졌으니까. 그리고 글도 쓰게 됐으니까. 나의 글에 어쩐지 슬픔이 묻어나는 이유도, 내가 그만큼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인스타를 볼 때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나니까.


한편 고등학생 때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가던 나도 있어. 그런 유쾌한 나도 나야. 그리고 슬픈 나도 나지. 나의 모든 세상이 당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세상이 무거운 만큼 당신의 세상을 안아줄 힘이 내게는 있어. 질기게 슬퍼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품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럼에도 아주 넓은 품을 가진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자꾸 편해져. 사실 당신도 꽤나 슬퍼본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해. 잘 잊고 쉽게 웃고 지레 겁을 먹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이 가진 넓은 가슴을 생각해. 거기에 안겨 있으면 많은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돼서 자주 애용해. 요즘은 그게 없어서 자꾸 깊어지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서프라이즈 와플을 먹고 2천원을 낸 너는 이 글을 끝까지 읽고 잘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내 글이 재미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재미없다고 말할 때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었으면 해. 왜 재미가 없는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안 그러면 이렇게 당신의 생각이 노출될 수밖에 없잖아.


매일 전화를 하는데도 하고 싶은 말이 왜 이렇게 많을까. 고작 핸드폰으로는 전할 수 없는 언어와 얼굴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 특히나 전파도 잘 터지지 않는 이 유럽 한가운데서. 우리는 얼굴을 보면 참 많은 말을 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장난을 치면서 저절로 회복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는 익숙해진 그리움 속에서 남은 2개월을 보내자. 빈자리를 느껴봐야 더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일단 나를 만나면 부서지게 안아줬으면 해.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자주 잠에 들곤 하니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해줘. 퇴근하고 이 글을 보면서 아주 놀랐으면 좋겠다.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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