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날

크로아티아 4

by 최열음

크로아티아 한달살이 5일차. 그 중에서도 항구도시인 스플리트에서다. 처음 한달살이를 마음먹고 숙소부터 찾았다. 바다가 보이는 예쁜 집, 가격은 인당 50만원 정도. 여기서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대신 무지하게 예쁜 집을 골랐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3층짜리 복층 땅콩집으로다가. 개인 공간이 무려 층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도 좋았고, 거실과 부엌을 따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예뻤다.


그리하여 한달살이 숙소를 박아놓고 전후로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한달살이 전 2주 좀 넘게, 한달살이 후 한달 좀 넘게. 분명 한달살이가 중간에 있으니까 쉼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오기 전에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아주 따뜻하고 반갑고 화려하고 맛있는 도시들이었다. 둘다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아직 우리는 이 동네 밖을 나가보지 않았다. 이번주가 아주 추운 주간이라고 해서다. 그리고 우리도 조금 휴식이 필요하지 않았나. 우리가 가본 거라곤 집앞 마트, 집앞 카페, 집앞 바다가 전부이다. 한국에서도 집에만 못 있는 나였는데, 여기서는 그나마 좀 쉽다. 내가 무언가를 꼭 하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하루라서 그런가.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가본 크로아티아 카페는 조금 달랐다.


유럽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은 알았다. 어디를 가든 길에서 피우는 사람들, 애기랑 있는데 피우는 사람들, 우리 얼굴 앞에서 연기를 뿜는 사람들. 그런데 카페 안에서까지 피울 줄은 차마 몰랐다. 그것도 연초를. 야외 자리가 있어서 그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광합성도 하고 좋았지만 바람이 조금 추운 자리였다. 실내에서는 노래방 냄새가 났다. 그리고 각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있었다. 유럽은 흡연자에게 참 호의적인 도시구나. 비흡연자는 그냥 숨 참고 러브 다이브구나.


그리고 이곳은 카드를 많이 안 쓴다. 카페에서도 마트에서도 다들 현금을 짤랑이며 다닌다. 어제 그 카페에서도 카드로 계산하려고 하는데 카드기가 연결이 안 돼서 몇 번을 시도하다가 실패해버린 것. 결국 친절한 바리스타 보이가 그냥 가라고 했다. 네버 마인드라며. 우리는 내일 다시 오겠다며, 위 윌 컴 투마로우를 외치고 미안한 얼굴로 나와야했다.


카드기가 되지 않았던 건 전파가 약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컴퓨터와 연결하려고 이것저것 눌러보았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전파가 약하다. 와이파이는 세 칸이나 떠있는데 브런치에 사진이 올라가지 않는다. 전파는 막대기 네 개중 한 두개를 왔다갔다 한다. 남자친구와 전화하려면 지지직 소리를 조금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 비해서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참 많은 곳에 비싼 돈을 주고 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절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보고 싶고, 먹고 싶고, 가고 싶지만 여행자가 된 것은 어나더 문제니까.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들을 여행하고 있노라면 조금 촉촉한 마음이 든다. 처음 보자마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곳들에 닿는다는 게 신비롭고 아쉽고 설렌다. 무언가에 마지막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니까.


보통의 하루 일과는 열시쯤 일어나서 열한시쯤 간단한 아침을 먹고 한시쯤 점심을 시작한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나는 글을 쓰고, 현아는 휴식을 취한다. 원래 아침을 먹지 않는데 나와 시간을 맞춰버린 녀석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뭔가를 입에 넣는 편이다. 밤새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심을 차려먹고 오후가 되면 각자 할일을 한다. 주로 나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본다.


또는 오후 시간에 함께 외출을 한다. 아주 소소한 외출이다. 카페를 가거나 장을 보거나 하는 등의. 그런데 그런 것만 해도 오후는 금방 가버린다. 그러면 또 저녁 시간이 와서 저녁을 차려 먹는다. 디저트가 습관이 되어가고 있어서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그러고 나면 저녁 여덟시가 훌쩍 넘고 우리는 같이 드라마를 정주행한다. 내가 여기 오기전에 시작한 ‘뷰티 인사이드’를 함께 끝내고, 딱 어제 ‘그녀는 예뻤다’를 시작했다.


이 드라마 나이트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이른 저녁밥을 먹고 함께 일일드라마를 보는 노년의 부부처럼 지내는 게 다소 웃기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쩌면 은퇴한 부부같은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집에서 설렁설렁 쉬다가 밥을 해먹고, 바다를 보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잠에 드는 삶. 생각해보니 너무 달콤하다. 은퇴 부부와는 달리 우리는 벌어놓은 돈이 얼마 없어서, 이 여행이 끝나면 많은 날들을 돈을 버느라 보내게 되겠지만. 은퇴 부부가 과거를 떠올리는 만큼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벌어놓은 돈을 쓰는 시기니까 그 점에만 만족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알뜰살뜰하게 먹고 잘 수 있을지만 고민하는 날들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고민은 디폴트. 요즘은 소설에 대한 강의를 들어볼까도 고민중이다. 그런데 강의들이 너무 비싸다. 정말이지 너무 비싸서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든다. 하지만 어떤 작가는 작법서를 보고 소설을 시작했다고도 한다. 그 방법도 생각중이다. ~에 대한 모든 것, 이라고 적힌 책들이 과연 모든 것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져서다.


1층 거실에서 커튼을 열어놓고 글을 쓰고 있다. 길거리의 행인들이 모두 보이는 자리다. 놀랍게도 유럽 사람들은 남의 집에 관심도 없다. 이렇게 사생활 하나 없이 눈앞에 창문이 열려 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나만 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다면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이다.


현재는 앞집 남자가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거들고 쳐다보다가 간다. 페인트칠이 시작되고 거의 끝나는 동안, 나는 이 글을 시작해서 마무리한다. 페인트칠처럼 눈에 보이게 오래가는 것을 마무리하는 일이 더 뿌듯하려나. 손가락만 움직였는데도 금방 배가 고파진다. 오늘 아침은 풋사과 하나만 먹었기 때문에 사실 글을 시작할 때부터 배고팠다.


이런 기록의 날도 한번은 있는 거겠지. 내 무수한 생각들보다 현재 나의 상황을 기록하는 글이 조금 낯설다. 이런 건 블로그에서 사진 엄청 올려놓고 쓰는 글들인데. 오늘은 딱히 고민하는 바가 없다는 얘기다. 그냥 점심으로 해먹을 가지밥이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럽 가지는 너무나 크다. 너무나 커서 어떻게든 잘 해먹고 싶다. 쌀과 물과 가지와 버터를 장조림을 넣어서 냄비밥을 하고, 밥이 다 되면 쪽파와 노른자를 올린다. 이곳에는 간장이 없으니까 장조림 국물을 비벼서 먹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해본 적 없던 요리들을 자주 시도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아빠와 나와 승우의 입맛에 모두 맞는 음식을 하려면 주로 한식을 해야 했다. 사실 여기서도 할 수만 있었다면 떡볶이와 닭볶음탕과 김치찌개 같은 것들을 해먹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우리에게 허락된 재료 안에서 최대의 맛있음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어제는 밥을 먹다가 혀를 살짝 깨물어버렸다. 현아가 만들어준 고추참치볶음밥이 맛있어서였을까. 가지밥을 먹을 때는 조심해야겠다.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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