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인풋

크로아티아 5

by 최열음


제주대학교의 한 국어국문과 교수님의 강의를 찾았다. 유튜브에 소설 창작이라고 검색한 결과이다.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아니면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적절한 때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소설을 배우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서는 분명 다른 일과 겸하게 될 텐데,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해보고 싶은 욕심이다. 한달살이를 하는 동안 시간과 마음이 넉넉할 테니까. 집에서 하루종일 가만히 있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스스로도 채찍질하지 않을 이 때.


수필 말고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다. 문예창작과 입시를 위해 시를 썼던 것 말고는 배워본 적 없는 글들이다. 아주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 일이다.


제주대 교수님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어쩔 수 없이 빈 강의실에 카메라를 두고 강의하게 된 교수님들 중 한 분이다. 학생들도 당황스러웠지만 교수님들은 더 당황스러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이버 교수님들이 영상 앞뒤에 자신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에 대해 설명하셨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한테도 들었으니까 조금 스킵하기로 한다.


첫 강의에서 글을 쓰는 태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셨다. 자기 안에 분출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지, 글을 쓰지 않으면 배길 수 없는 마음의 상태인지를 먼저 확인하라고.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듣고보니 교수님을 더 믿고 싶어졌다. 나 역시 모든 일의 시작은 비장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인지,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는 둘다인 것 같다. 정확히는 내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게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시나리오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탐색은 이미 끝나버려서 다행이다.


지금의 나는 인풋이 많이 없어서 아웃풋도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책과 글과 작가가 별로 없는 내게서 나올 수 있는 글은 한계가 있을 테니까. 양질의 글들을 많이 채워가야 할 일년인 것 같다.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에 겁먹지 않고 천천히 빠르게 채워나갈 예정이다.


소설을 시작하는 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시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예창작과를 나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스물 다섯도 그렇게 빠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느린 것 같지도 않다. 교수님은 소설이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엄청난 자의식과 열등감과 싸우는 일이라고.


그런 것에 정말 자신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일, 나만의 페이스를 지키는 일, 정말 적응되지 않는 일이다. 진심으로 자신이 없지만 그래서 해보고 싶다. 오히려 해보지도 않은 일에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는 게 더 의심스러운 일일 테니까.


이 부활주일 오후에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가만히 글을 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있다. 곧 돌아갈 집이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도. 가만히 생각만 해도 귀여운 남자친구가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도. 나는 정말 가만히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격정적인 무엇보다 이런 곳에서.


짤막한 소설 강의를 듣고 글을 썼으니까,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씻을 것이다. 조금 배가 고플 것 같아서 간식도 생각해두고 있다. 아마 자주 보던 유튜버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시시때때로 찾는 유튜버들은 다음과 같다.


항시 틀어놓는 유쾌한 해쭈, 예쁘거나 연애하고 싶을 때 보는 누가영과 수사샤, 배고플 때 보는 여수언니와 살빼조, 잔잔한 일상의 걍밍경과 하누. 이렇게 원하는 때마다 돌려보면 한 영상을 5번도 넘게 보곤 한다. 그 익숙함이 편하고 좋아서 자주 틀어둔다. 이 모든 언니들이 내게 골고루 영향을 주고 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막연함이 들 때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해있다는 연결고리를 느끼고 싶을 때마다 유튜브를 본다. 그렇게 제주대학교 강의도 발견했다. 작은 나에게 필요한 거대한 인풋들. 이제 잘 소화해서 어떻게 배출할 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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