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7
잠에 들락 말락한 정신을 붙잡고 침대에 누워 중얼거려요. 아무리 작게 말해도 들으시는 분은 귀가 좋으시니까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곳에 계신 성령님, 내 안에 계신 예수님. 나를 감싸는 당신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감사로 충만한 상태를 늘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먼저는 많은 체력을 기를 수 있게 해주세요. 좋아하는 일을 질기게, 오래 하고 싶어요. 앞으로 좋아하게 될 일을 위해서도 튼튼해지고 싶어요. 마음의 체력, 신앙의 체력, 글쓰기 체력. 보이지 않는 것들을 쌓아두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 모든 건 체력 싸움이라는 말을 조금 믿게 되었어요. 내일부터 꼭 달릴 수 있게 해주세요. 아침 조, 달릴 깅을 시작해보려고 해요.
저의 나약한 마음을 위해서 기도해요. 쉽게 미워하고 질려하는 마음,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 남보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자기연민. 결국 무엇도 다 상대적인 것인데 이리저리 비교하면서 꺾이고 싶지 않아요. 나를 나대로 지으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의 부족함을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마음이 태평한 친구와 함께 살고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태평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무적의 능력인 것 같아요. 저도 그 마음을 배울 수 있게 해주세요. 자주 낙담하고 조급해지는 저의 정신을 잘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주고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해주세요.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일하는 남자친구를 살펴주세요. 어쩌다 주 7일을 일하게 된 지금, 눈도 빨개지고 입도 부르튼다고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도 이번주엔 하루를 쉴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분명 오빠에게 예비하신 것들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오빠 스스로 건재할 수 있도록, 기도를 잊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자에게 즐길 수 있는 힘을 주실 테니까요.
머지 않아 만나게 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요. 떨어져 살아본 게 처음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곧 돌아온 가족이 될 수 있잖아요. 다시 만난 가족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떠나와야만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야 누릴 수 있는 애틋함과 감사함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신입생이 된 승우도, 자주 혼자 있을 아빠도 잘 돌보아주세요. 제가 줄 수 없는 것들을 당신께서 채워주실 거라고 믿어요.
오늘 길에서 할아버지와 너무 닮은 사람을 봤어요. 분명 크로아티아 사람일 텐데 요즘 자꾸 한국인의 얼굴이 겹쳐 보여요. 이들도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믿지도 않고 떠난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제가 어떻게 웃으면서 살 수 있을까 싶어요. 천국이 영원하듯 지옥도 영원할 텐데요.
그리고 우리 할머니. 애달픈 우리 할머니. 혼자 자는 밤이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고 창문을 열고 자버린다는 할머니. 자버리는 날보다 잠드는 날이 더 많아지게 해주세요.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 아프게 보낸 우리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할머니에게 꼭 복음의 씨앗이 전해지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를 사용해주세요. 더 늦지 않게 할머니를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한 친구와 함께 살아가면서 제가 얼마나 성숙하지 않은 어른이었는지를 자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나의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참아주었는지를 생각해요. 나의 이기심과 예민함, 때로는 철없음이 그들에게 닿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자꾸 미안해져요. 서로를 참아줄 수 있는 만큼 깊은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섣부른 행동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런 지혜를 주세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친구들, 하던 일을 끝마쳐가는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힘을 쓰고 있을 텐데, 그 힘이 부치지 않게 해주세요. 힘이 부칠 때 제가 알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꼭 곁을 지킬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없어도 충분히 야무지게 살아갈 애들인 거 알아요. 제가 그 애들을 믿는 만큼 그 애들도 자기를 믿게 해주세요.
짧은 인생에 많은 것들을 바라기만 하다가 끝나지 않게 해주세요. 바라는 만큼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바라는 게 없는 날이 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연약한 저를 돌보아달라고 기도드려요. 내가 용서받은 만큼 용서할 수 있게, 사랑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게. 그렇게 보면 주기만 하다가 끝나도 더없을 인생일 텐데 받기까지 바라고 있어요. 기브 앤 테이크는 사랑이 아닌 줄 믿어요.
보내신 곳에서 보내신 일들을 하다가 돌아가고 싶어요. 소설을 쓰는 게 나의 생각이고 당신의 허락을 구할 일이 아니라, 당신이 하라고 등 떠미는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무지한 저에게 확실한 사인을 주세요. 아까 봤던 드라마 주인공이 마지막에 동화 작가가 되는 길을 선택하던데, 더 확실하고 무자비하게 외면할 수 없는 시그널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시그널을 보내시면서 제가 알아차릴 수 있는 눈도 주셔야 해요.
내일은 감사를 잊지 않는 하루를 보내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