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크로아티아 9

by 최열음

이번주부터 크로아티아에 장마가 시작된다. 앞으로 일주일간 계속 비가 올 예정이다. 살다보니 크로아티아 장마를 겪어보기도 하네. 한국에선 장마가 여름의 상징인데, 여기 사람들은 장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크로아티아어로 장마는 뭐라고 부를까.


2020년 한 여름이 기억난다. 한달을 내리 비가 오던 그 때. 대체 하늘이 왜 고장난건지, 우리는 얼추 알지만 알지 못한다. 비가 그치면 금세 잊어버린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던 그 시절에, 미친 기후까지 더해지니 많은 이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어야 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는 마음이 개일 틈도 없게 했으니까.


나는 그 계절에 남자친구를 만났다. 정확히 2020년 여름, 아주 긴 비가 오던 때. 오빠를 만날 때마다 우산을 들고 나가야 했다. 비가 아주 거세게 오던 날에는 오빠를 만나고 싶어서 드라이브를 하자고 해버렸다. 운전의 어려움을 잘 실감하지 못하던 때였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에 대해 묻고 듣고 짐작하면서 비를 자주 잊어버렸다.


다음주면 우리가 벌써 1000일이다. 내가 스무살 때 교회 청년부에 올라가면서 오빠를 처음 봤으니까, 알게 된 지는 햇수로 5년인데. 우리의 진짜 처음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몇년간은 완전한 남이었던 게 분명하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신분밖에 없었으니까. 너는 학생이고, 너는 직장인이구나. 우리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구나.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낯섦을 자주 느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데면데면했던 우리가 왜 손을 잡고 있는지, 왜 서로를 보면서 웃고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자주 부끄럽고 또 자주 신기해서. 그래서 비가 오는 여름이면 우리의 시작을 떠올리게 된다. 벌써 우리가 함께 맞는 네 번째 여름이 오고 있다.


1000일째 되는 날은 동생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제 군대를 끝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한 애다. 나도 모르는 새 많이 커버린 애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베이커리 카페 알바를 시작해서 자기 앞치마가 내 스타벅스 앞치마보다 좋은 거라고 떵떵거리던 애. 그래놓고 그 앞치마를 집에 두고 가서 알바에 늦을 뻔한 애. 보기보다 크고 보기보다 허술한 애.


그 애가 사준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는 크로아티아에 와있다. 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생일에도 걔는 친구들과 열심히 놀겠지. 아빠랑 케이크도 불 것이다. 내가 없어도 가장 영향을 받지 않을 나의 주변인. 걔가 군대에 갔을 때 난 가장 자유로운 집생활을 했으니까, 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도 아빠의 방을 열심히 넘나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겠지. 아마 약속이 많아서 그럴 시간도 없을지 모른다.


아빠와는 가끔 전화를 한다. 아주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할 때. 크로아티아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더 자주 했지만 이곳에서 한달을 사는 동안은 딱히 전할 말이 없다. 원래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생한테도 한번 전화하라고 하던데, 나나 걔나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할 만큼 애틋한 사이는 아니다. 둘다 살기 바쁘니까 아빠 목소리만 들어도 족하다.


이곳에 오고나서 삼시세끼를 열심히 차려먹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리에 대한 진입장벽이 좀 낮아졌달까. 더는 요리가 책임이나 의무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현아와 주고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빵꾸가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현아가 열심히 깎아놓은 키위와 오렌지를 먹었다. 어젯밤에 같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준비해둔 아침용 과일이다. 걔의 그런 다정이 우리의 아침을 좀 더 멍할 수 있게 한다. 아침이 아침다울 수 있게.


과일이 아주 저렴한 곳에 살고 있다. 귤을 열개 사도 천원대인 곳이다. 오렌지와 키위는 아주 달고 진한 맛이다. 과일을 자주 먹는 현아를 따라, 나도 과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같이 익숙해지는 요즘이다. 내가 좋아하는 빵, 현아가 좋아하는 과일, 같이 보는 한국 드라마 같은 것들. 지금은 상속자들을 다시 보고 있는데 이 고딩들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재벌 왕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 그보다는 가볍게 살아가고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럼에도 나를 괴롭히는 고민이 하나 있다. 소설을 시작해도 되는지에 관해. ’일단 써보고 말해‘가 보통 내 신조였고 항상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지만.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허가가 분명 떨어지기를 바랐다. 무언가를 섣불리 시작했다가 섣불리 끝내고 싶지 않아서이다. 글쓰기는 먼저 기도하고 시작했고, 브런치는 기도하지 않았고, 여행은 기도하고 왔고, 스타벅스는 기도하지 않았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가장 후회했던 게 스타벅스였다. 준비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은 것, 기도로 신의 뜻을 구하지 않은 것.


사실 소설은 허락을 구하기보다 하나님이 내게 등 떠미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게 주신 일이기를 바란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강의는 시작을 해버렸는걸. 어제 하루종일 소설을 써도 되는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밤에 잠이 들기 직전, 결론을 내렸다. 내가 삶을 충실히 살아내기를 원하실 하나님이라면 ‘그냥 해’ 라고 하실 것이다. 내게 주신 달란트를 십분 활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 매순간 기도하면서 시도하자는 것.


할지 말지만 고민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러나 섣부른 판단으로 후회하는 인생이 되고 싶지도 않아서. 갈팡질팡하는 나의 마음이 애석하지만, 아마 평생 이러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일의 시작도 가벼워지면 안 되니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하는 인간의 생이니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해볼까. 비로 시작해서 글로 끝나는 글을 썼으니, 이제 현아랑 라면 먹고 소설 과제를 시작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위 아 고잉 투 더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