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11
크로아티아에서 거룩한 주일을 지킨다. 집에서. 한인교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유튜브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번도 교회를 떠나 지내본 적 없는 나와 현아에게는 조금 어색하지만 우리가 있는 곳이 교회라는 생각으로, 몸이 아닌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 스플리트에서 맞는 두번째 안식일. 이곳에서 놀고 먹느라 요일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주일만큼은 애써 감각해본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안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세상의 일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 나에게 주일은 안식과는 정반대였으므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후에 알바는 필수였다. 주말 알바, 대학생에게 주말만큼 바쁜 날이 또 있을까. 지난 비정규 노동의 역사를 잠시 돌아본다.
첫 알바는 파리바게트, 주말이었다. 바로 집앞에 있는 곳이라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었다. 아주 카랑카랑하고 무뚝뚝한 목소리의 사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야“라고 불렸으며, 난생처음 내가 조용해서 난감하다는 듯한 말을 들었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작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은 너 때문에 귀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데. 그 사장님의 목소리 앞에 나는 자주 묻혔다. 그러나 퇴근할 때마다 남은 빵들을 자주 챙겨주는 분이었다.
두 번째 알바는 뚜레쥬르, 주말과 평일을 오갔다. 이곳은 파리바게트보다 더 가까운 빵집이었는데, 걸어서 2분 뛰어서 1분이었다. 우리집 창문으로도 훤히 보이는 위치였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했는데, 아주 꿀알바였기 때문이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빵집에서 마감 알바는, 청소만 잘하고 가면 되는 자리다. 나는 체크무늬의 유니폼과 빵모자를 쓰고 일년 반동안 열심히 일했다.
이 사장님은 아무래도 금수저 같았는데, 30대 초반의 나이에 뚜레쥬르 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주 많은 명품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자신의 바디프로필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해두기도 했다. 화면이 켜져 있을 때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아주 난감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면 매장의 감시카메라가 바로 보이게 해둔 사람이었다. 매장으로 자주 전화가 왔다. 지금 이러한 일들을 해달라며, 저 손님은 왜 가지 않냐며. 자주 웃고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를 자주 감시하던 분이었다.
남은 빵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의 몫은 딱히 없었다. 전날 팔리지 않은 빵들 중 우리의 간식빵이 있긴 했다. 그 간식빵을 챙겨놓는 것은 마감자의 몫이었다. 나는 남은 빵들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녀석들, 하루를 버틸 만한 탄수화물들을 열심히 골라냈다. 몇백원이라도 비싼 녀석들을 챙겨두곤 했다. 그에 비해 사장님이 간식빵을 챙겨놓는 날이면 단팥빵, 소보로빵, 슈크림빵 등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빵들은 내가 일하는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선택을 받지 못했다. 보기만 해도 힘이 떨어지는 양식들이었다.
세 번째 알바는 메가커피, 역시 주말과 평일을 오갔다. 평일 점심으로 시작했으나 주말 저녁으로 옮겨갔다. 두 시간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메가커피… 손님들에게는 괜찮은 가성비 카페지만 알바생들은 아주 죽어나는 곳이다. 노동의 강도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매장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음료의 양도 많고 화려하기도 한 곳이라 외울 것도, 챙길 것도, 닦을 것도 불어난다. 그곳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배우고 또 가르쳤으며, 진절머리가 났다.
그러나 수많은 동료들을 제치고도 가장 피곤했던 건 사장님이었다. 그는 우유부단했고 소심했다. 알바비를 밀당하며 주던 이였다. 누구는 오전에 입금을 받았고, 누구는 저녁 8시가 넘어가도록 입금을 받지 못했다. 5만원 정도를 더 챙겨준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시간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이곤 했다. 그곳에서 8개월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튕겨져 나왔다. 아주 고단하고 지난한 8개월이었다.
네 번째는 이디야, 주말과 평일이었다. 때로는 토일 알바였다가 때로는 수목 알바였다가, 대타도 많이 나가곤 했다. 메가커피 근처였기 때문에 상권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출이 하락세인 곳이었다. 하필 그 시점에 이 카페를 인수한 사장님은 메가커피를 질투하고 견제했지만 그쪽에서는 알 리가 없었다. 마침 내가 적진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저런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메가커피는 그냥 유행을 탔을 뿐이고, 자리가 좀더 좋았을 뿐이다. 사장님의 매출 꿀팁 같은 건 없었다.
다행히도 이디야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님 수도 적당했고, 진상 수도 적당했다. 혼자 매장을 지키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으나 너무 심심해서 핸드폰도 자주 했다. 매장이 조용할 때는 조용했으므로 친구들이 와서 공부도 많이 했다. 그게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디야는 이디야, 가족들이나 어른들이 몰려올 때면 공부하던 학생들은 조용히 짐을 챙겨 나갔다.
마지막은 스타벅스다. 나는 카페 알바의 정점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는 사실 알바도 아니고 직원으로밖에 못 들어간다. 그래서 마음은 알바였지만 몸은 직원이었다. 그곳에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웠다. 배우기만 하다가 끝난 것 같은 7개월 반이었다. 거긴 그냥 커피를 파는 회사였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스타벅스를 좋아하던 손님의 위치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안식과 노동은 정반대의 일일까. 확실히 안식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노동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날들을 많이 떠올린다. 일주일 중 하루도 온전히 쉬지 않았던 날들을 생각한다. 간헐적으로 일하다가 간헐적으로 쉬고 있으니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는 편이 더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도 안식도 어느 정도는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안식일을 안식하며 보냈다. 글도 쓰지 않고 읽지 않고, 해야 하는 무엇도 없이 보냈다. 그러고 나니 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더 하고 싶게 하는 열망을 준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고 싶어서, 죽상으로 하고 싶지 않아서 안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너무도 바빠서 안식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