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의 시작

크로아티아 12

by 최열음

유튜브 영상을 찍고 대충 편집하는 데 하루, 업로드하는 데 하루, 썸네일 올리는 데 하루 걸렸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찍고 편집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업로드하는 게 문제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매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지리적 환경에 속해있구나. 어차피 매일 올릴 생각도 없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가져야만 유튜바가 될 수 있었다. 어느 전파도 약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내의 총량이 어떻게 될까.


영상을 찍고 내 모습을 보니 좀 가관이다. 보통 집에서 조용히 있는 편이라 말을 안 하긴 하는데, 영상을 찍으면서도 거의 말을 안 했다. 감성 브이로거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비지엠을 넣고 보니 감성 브이로거가 되어버렸다. 다음에 영상을 찍는다면 조금 시끄러워도 말을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나는 집에만 있으면 침묵을 지키게 되는가. 참 기묘한 일이다.


어쩌면 내가 본래 조용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도도한 책벌레에 가까웠다. 책을 아주 좋아했던 엄마의 영향을 받아, 집에서 조용히 책읽고 뿌셔뿌셔를 사먹던 어린 시절이었다. 친구는 단짝친구 하나면 충분했으며,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귀가 후 엄마와 빨강머리 앤을 즐겨 보던 조숙한 애였다. 아무래도 엄마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다른 게 더 필요없었던 것 같다.


우리집이 한부모가정이 될 무렵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곳에서부터 나의 시끌벅적 역사가 시작되었다. 어째서 나는 이사를 가는 동시에 춤을 추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세등등 왁자지껄한 아이가 되었는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이었을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주도적이었다. 춤을 외워가고, 알려주고, 만들어내던 건 모두 나였으니까. 소녀시대 Gee와 원더걸스 Nobody를 동시에 연습하던 역사적인 날들이었다.


그러니까 10살 때부터 약 10년 정도, 스무 살이 될 무렵까지 아주 버라이어티한 성격으로 지냈다. 물론 시끄럽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시끄러운 사람에 지목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밖에서는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다가도 집에 가면 할 말만 하는 도도한 장녀가 되었다. 우리아빠와 동생은 나의 활약상을 말로만 전해 들었다. 이번에는 어떤 무대에 오른다더라, 어떤 직책을 맡았다더라, 하는 식의 겉도는 이야기들. 실제로 나는 겉에서만 돌았다. 내부적으로는 차분한 첫째딸이기만 했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어째서 이렇게 극명하게 나뉘는 것일까. 집안의 나와 집밖의 나 사이에서 숱한 간극을 느꼈다. 그러한 간극을 느끼는 것은 나 하나뿐이었으므로, 주변인들은 나의 단면만 보았다. 아주 시끄럽거나 아주 조용하거나. 내게 아주 깊은 사람이어야만 나의 양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은 생각보다 내가 조용하다고, 또는 생각보다 내가 시끄럽다고 말했다. 나는 아주 상대적인 사람이 분명했다.


스무 살에 재수를 하면서 조용한 성격이 좀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진지한 표정과 마인드가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고(그렇다고 제대로 된 글이 나왔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데서나 춤을 추거나 주접을 떨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스무 살 초반에는 이것이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예능인 측면을 조금 더 끌어올려보려고 했으나 조금 실패했다.


지금에서야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에 아주 적합한 정서라는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나, 예민한 나, 감각하는 나, 생각하는 나. 차분하고 기민해야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게 있었다. 나를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받아주지 못했던 누군가의 성격들, 상처들, 마음들이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먼저라는 걸 깨우쳐갔다.


아주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들의 일상에 잔뜩 개입되기를 희망하면서도 동시에 외면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한번도 떨어져본 적 없던 세계에서 겨우 분리되었는데,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있으므로. 실제로 분리되어보니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정말 보고싶은 것,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경계가 이럴 때 명확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스플리트에서 한달을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스플리트는 계란 노른자고, 나는 흰자쯤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카스텔라 라는 시골에 숙소가 있다. 스플리트에 나가려면 시내를 가는 것처럼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외곽 도로를 달려야 한다. 계란 흰자쯤에 집이 있다는 게 조용하고 심심하면서도 아주 평화롭다. 이곳은 노인들이 아주 많은 곳이다.


길을 지나다니다보면 할아버지 군단들을 마주친다. 그들은 젠틀해보이면서도 무료하고, 대체로 우리를 줄곧 쳐다보는 편이다. 모두가 모두를 아는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있으니 당연히 신기할 테다. 조금 보이다가 말 줄 알았는데 한 달이나 살고 있으니까 더 눈에 띄겠지. 까만 머리의 동양인 여자들. 우리는 대체로 백인인 이 동네에 브라운의 다양성을 더해주고 있다.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유튜브 영상은 아마 두브로브니크를 놀러가는 영상이 되지 싶다. 로마의 황제가 사랑한 도시라는 스플리트, 그리고 휴양지의 꽃이라는 두브로브니크. 물가가 살인적이라고 들었는데 아마도 적당히 조져지고 올 것 같다.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한곳에서 쭉 쉬다가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서 기분 좋은 설렘이 올라온다. 빨간 지붕이 많은 곳에서 벌겋게 익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가지고 간 물건들을 고대로 다시 가지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소박한 바람이 자주 개입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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