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증

크로아티아 13

by 최열음

나는 아무래도 숙면증에 걸린 것 같다. 잠을 무지하게 많이 자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간밤에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안다. 짐작할 수도 없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아주 많이 자는 나 역시 조금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 깨우지 않는다면 12시간은 거뜬히 잘 수 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그 절반을 잠만 잘 수 있다는 얘기다. 조금 한심한가.


그래서 나는 쉬는 날에도 알람을 늘 맞춰놓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깨어나지 않을지 알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취침해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지 안다. 꺼지지 않는 내 알람 때문에 화를 내는데, 걔네가 화를 내야 겨우 일어나고 만다. 어쩌면 내가 숙면을 취하는 게 잠귀가 어두워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통탄스럽다. 들어야 할 소리도 못 듣는 때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보통은 중고딩 때가 가장 잠이 많은 시기라고들 한다. 아주 갓난아기는 제외한다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부은 얼굴로 학교에 가는 중고딩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않나. 나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숙면한다는 게 관건이지만. 보통 교회를 가려면 오전 9시에서 10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주로 11시 예배를 참석하게 되니까, 그러면 나는 전도사님한테 전화를 열 통 받고도 못 일어났다.


청년부에 올라가서도 수련회 날 지각, 청소 지각, 아주 다사다난한 지각의 역사를 보냈다. 모두 잠 때문이었다. 저녁에 나가는 모임에는 전혀 늦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제때 참석했다. 유독 아침에만 약한 나였다. 거의 모든 약속에 부어서 참석하는 날들이었다. 누군가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대체 어떻게 새벽같이 일어나는 거지. 그야말로 미라클 모닝이다.


물론 내가 일찍 잠에 들지는 않는다. 한창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는 너무 피곤해서 12시에 자곤 했는데, 그래도 최소 9시는 되어야 일어나곤 했다. 내 잠의 총량이 궁금해진다. 스타벅스에서 일하지 않는 크로아티아의 아침도 비슷하다. 보통 2시에 잠들기는 하지만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처음엔 알람으로 열시, 그러다 알람을 못 듣고 열한시, 알람 없는 열두시, 오늘은 대뜸 한시에 일어났다.


여기서는 사실 알람이 필요하지 않다. 매일이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급하게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면 한끼 더 먹는 것밖에 안 한다. 잠으로 인해 공복시간이 16시간씩 유지된다. 그렇다고 살이 빠지지는 않았다. 함께 살고 있는 현아는 나와 정반대의 노선을 걷는다. 얘는 드라마를 보다가 아침 6시에 잠들어도 4시간 뒤에 깬다. 나는 한번 깨어보지도 않고 12시에 일어나는데.


스스로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과거였다. 수면시간 하나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나를 자책했다. 특히 고딩 때, 그리고 재수 때까지도.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쉬는 날에도 알람을 맞춰두고 일어나는 게. 아침 시간에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 하루를 길게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 게 바로 생산적인 삶이니까. 내가 늦게 자는 만큼 새벽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나의 생리적 특성을 좀 고려했다면 덜 죄스러웠을 텐데.


잠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을 많이 잔다고 죄스러울 필요는 없는 건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아침이 있는 거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밤이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쉬는 날이라는 가정 하에. 나는 아마 열시간 정도가 적당한 잠인 것 같다. 무작정 쉬기만 하는 이때, 나의 수면 패턴까지 알게 된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알람을 맞추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잠이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까. 누군가는 못 자서 안달, 누군가는 많이 자서 안달이다. 안달하지 않고 잘 만큼만 잘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실 나도 열 살 무렵에 불면증 비슷한 걸 겪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아빠는 내게 안달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티비를 보다가 잠이 오면 자라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자려고 애쓰지 말라고. 억지로 무언가를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라는 게 아빠의 인생 지론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억지로 잠을 깨워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억지로 잠에 들어야 하는 때도 있다. 욕구와 바람을 눌러가면서까지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스타벅스에서 아침 근무를 하던 때, 항상 늦잠을 잘까 두려웠지만 한 번도 늦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근무를 시작하던 날들이었다. 아주 피곤하고 몽롱했으나 오후 1시에 퇴근을 할 때면 날아갈 것 같았던 날들이었다.


오늘은 오후 1시에 일어나 머쓱하게 거실로 내려왔다. 오빠에게 ‘오마이갓’이라는 카톡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현아에게는 ‘이게 무슨 일이야’라고 했다. 평소에도 늦게 일어나면서 오늘은 더 늦게 일어난 사람의 민망함이다. 점심을 먹고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나니 벌써 세시가 훌쩍 넘었다. 하루가 아주 단축될 예정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타자를 더 빨리 치고 있나. 사실 크게 개의치 않는다.


점심을 준비하던 현아는 내게 개운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주 개운했다. 나는 오늘 아주 개운한 잠을 잤다. 글이 잘 써질 것만 같은 잠이었다. 현아가 차려준 브런치는 정성이 가득했고, 적당히 배가 불렀다. 내일이면 두브로브니크로 놀러갈 계획이 있다. 오늘은 짐을 챙기고 일찍 잠에 들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더 짧아지겠지만 뭐 어떤가, 여행자 주제에. 집에서 빈둥대고 있어도 이곳은 여행지인걸. 여행지에서의 개운한 늦잠은 어쩐지 조금 더 생산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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