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옹
제 주변엔 빵을 참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점심으로 완두앙금빵을 사 먹으러 가는 녀석입니다. 언젠가 그 애가 파리에 다녀온 후, 크루아상 맛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느낌은 다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 느낌이란 게 무얼지 정말 궁금했어요. 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무엇이니까요. 어쩌면 그런 궁금증에서부터 모든 여행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먹었던 햄치즈 크로와상인데요. 커피까지 해서 이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살 떨리는 빵값이라고 생각하며 먹었습니다. 공항 빵집인데도 크로와상은 엄청 바삭하고 맛있더군요. 저희는 샤를 드골도 아니고, 오를리도 아닌 보베 공항으로 왔습니다. 저가 항공사는 그곳에 모여있다고 들었는데요. 청주공항보다도 작은 크기라서 소박하고 정겨웠달까요.
녹차 파운드케이크……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씻은 뒤, 마트와 빵집부터 들렀습니다. 필수 코스니까요. 사실 파운드케이크는 퍽퍽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촉촉하고 달달한 파운드는 처음이었어요. 두 번 먹을걸…… 카스텔라 같지도 않았어요. 그냥 무지하게 부드러운 녹차 파운드케이크였습니다. 파운드도 맛있으면 앞으로 난 어떡해! 하며 먹었던 것 같네요. 빵으로 점철된 이탈리아 후속편이 되겠다고 예감하면서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빵집들은 구글맵으로 모두 확인해 보는데요. 그중 가장 때깔이 좋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파리에서는 아침마다 크루아상을 꼭 하나씩 먹고 싶었거든요. 파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일정이 많다 보니, 아침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했는데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오픈런을 하고 말았습니다. 크로와상과 휘낭시에를 골랐어요.
무려 디즈니랜드를 가는 길이었거든요. 그런데 소화가 다 되기도 전에 길거리에 있는 로컬 빵집을 발견해버린 거예요. 안 그래도 버스에서 잘못 내려서 새로운 길이라 정보도 없는데, 무척이나 설레하면서 크로와상을 하나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와보니까 빵이 세 개인 거예요. 저희가 세 명이라 그냥 한 사람에 하나씩 먹겠거니, 하고 세 개를 넣어주셨나 봅니다. 돈은 냈지만 횡재했다고 생각하며 아침부터 거나하게 즐기게 됐어요.
그래도 빵을 세 개나 먹은 덕에 디즈니랜드에서 점심값을 아꼈는데요. 아주 맛있는 크로와상을 한 번에 많이 먹어버려서 며칠간은 안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에 한 번만 먹어도 족하겠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했어요. 디즈니랜드에서 저녁은 맥도날드로 대신했는데요.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당황했다가, 저녁에는 또 쌀쌀해지길래 뜨순 라떼를 하나 주문했어요.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동안 열심히 홀짝거렸더니 속이 다 뜨끈해졌습니다.
아, 참고로 파리는 스타벅스가 맛이 없더라구요. 두 번 정도 갔는데 모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밍밍했어요…… 뜨거운 커피에 넣어서 얼음을 녹인 것 같았달까요. 어떻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맛이 없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파리는 그랬습니다. 아마 이들이 우리만큼 얼음에 미쳐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희는 얼음 꽝꽝 씹어가면서 시-원하게 들이켜야 하잖아요. 그보다는 커피도 조금 더 우아한 느낌이었달까요.
약 4일간 파리에 머무르면서 유명한 빵집들을 매일 찾아다녔어요. 이 날은 친구들이 식당 웨이팅을 하는 동안 혼자서 빵집을 두 개 돌고 왔습니다. 모두 저의 의지였는데요. 딱히 어떤 빵을 먹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녀석들을 데려오기는 했습니다. 각각 바닐라슈와 흑임자 에끌레어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요. 슈는 크림이 없는 껍데기뿐이었고, 에끌레어는 한국에서 먹어본 듯한 흑임자 크림의 패스츄리 같았습니다. 특별한 맛은 아니라서 특별히 기억에 남지는 않네요. 다만 꽤 더운 여름의 파리 길바닥을 열심히 쏘다니던 제 열정은 선명히 기억해요.
한국인에게 꽤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요. 어떤 메뉴보다도 이 티라미수…… 주인장 언니가 아주 큰 티라미수 판에서 주걱으로 턱턱 퍼주는 걸 손 놓고 지켜보았어요. 그들에게는 직접 만든 티라미수 퍼주는 것쯤이야 일상이겠지만, 저희에게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주 잘 정제되고 포장된 티라미수 케이크들만 보다가, 이런 날 것의 모습을 보니까 너무 색다르고 반가웠달까요. 왜 이제야 왔니…… 싹싹 긁어먹고 왔습니다.
역시 슈와 에끌레어를 샀던 집에서 각각 사온 녀석들인데요.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애정이 딱히 가지 않았네요. 평범보다도 못한 맛이었달까요. 왼쪽은 초코가 박힌 퍽퍽한 핑거스틱 같았고, 오른쪽은 퀸아망 같이 생겨서 기대했는데 그냥 말랑하고 퍼석한 녀석이었어요. 그래도 바게트는 정말 맛있더라구요. 빵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사버려서 며칠 동안 두고 먹느라 혼쭐이 났어요. 남은 게 많아서 끼니로 대체하기도 했거든요.
크렘 브륄레는 한국에서도 잘 사 먹지 않는 편입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달콤해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식당에서 먹어본 맛으로 그 인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는데요. 항상 깊고 오목한 그릇에 있었던 녀석이 납작하게 펼쳐지니까 더 아름답더라고요. 전혀 느끼하지도, 과하게 달지도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맛이었어요. 밥을 먹다가 미술관 예약에 조금 늦어버렸는데도, 뛰어간 게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게다가 집 앞에 있던 식당이라 더 기뻤습니다. 기쁨은 역시 가까운 곳에서 오는 걸까요.
아…… 최고의 퀸아망. 저는 일단 좋으면 탄식부터 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는데, 제가 음식을 먹고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다더라고요. 좋으면 한도 끝도 없이 오바하는데, 싫으면 그냥 딱 사실 전달만 하는 거. 좋으면 일단 흐에엑- 하고 반응한다는 게 억울하면서도 사실인 것 같았어요. 이 퀸아망을 사 먹고도 그런 반응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상상한 빠짝하고 바삭하고 꾸덕한 퀸아망 그 자체였거든요.
두 개를 샀는데 남기지 못하고 한 번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아주 더운 파리의 날씨에 조금 지친 채로 숙소에 돌아온 직후였거든요. 친구들이 오기 전이라 맨몸으로 숙소를 활보하면서 퀸아망을 먹었던 짜릿한 기억이 있네요. 맨몸의 퀸아망, 참 좋았거든요.
파리의 마지막 날, 꽤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렀어요. 누아르라고 읽는 건지, 노아르라고 읽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캐리어를 닫아놓고 혼자 커피 한잔 마시려고 나왔습니다. 앉아서 먹기에는 애매하고 시간도 없어서 테이크아웃만 하려고 했는데요. 아침 열 시 정도였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요. 파리는 이제 출근 시간인 걸까요, 아니면 다들 저처럼 백수인 걸까요…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같은 줄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얼마나 맛있는 커피인지 궁금해하면서요.
커피 맛도 맛이지만, 이런 공간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부다페스트에서 좋아했던 카페 겸 디자인 샵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너무 넓지 않은 공간에 딱 필요한 것들만 존재하고, 사장님은 여유로운데 커피에는 고집이 있으실 것 같고, 기구나 컵은 되게 심플해서 기대되는 느낌이랄까요. 이 시리즈를 쓰면서 계속 느끼는 건, 좋은 게 좋은 이유를 말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거예요. 만약 제가 카페를 차린다면 딱 이런 공간에 이런 테이블을 두고 손님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처음으로 플랫화이트가 아닌 라떼를 먹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첫 입 먹고 바로 후회했어요. 너무 셔서요…… 라떼가 셔서 눈을 찌푸릴 정도면 대체 그냥 샷은 얼마나 신 걸까요. 라떼 사이즈가 커서 후회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모자라서 후회했지, 많아서 후회하지는 않았거든요. 한 절반 정도 먹고 보니까 그래도 좀 익숙해지더라구요. 맛있다는 생각도 가끔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산미 있는 커피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이 날은 조금 싫어질 뻔하긴 했어요. 그래도 집 앞에 앉아서 혼자 모닝커피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파리를 떠나, 기차를 타고 리옹으로 왔습니다. 리옹은 사실 스위스를 가기 위한 관문인데, 꽤 괜찮아 보여서 2박만 하고 가기로 했어요. 숙소가 되게 특이했던 게 상가를 개조해서 쓰는 것 같더라구요. 길바닥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온갖 도로 소음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났는데요. 여기가 밖인지 안인지,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희한한 공간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곳에서도 잠은 잘 자야 하니까요.
리옹은 파리와는 아주 달랐어요. 정말 작았거든요. 그리고 시내가 쇼핑거리뿐이에요. 나머지는 다 사람 사는 동네더라고요. 저희 숙소가 있던 동네는 그렇게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날 것의 프랑스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달까요.
리옹에서는 브런치 카페에서 한 번, 스타벅스에서 한 번 글을 썼는데요. 되게 기대하던 브런치 카페였는데, 어째서인지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한 시간 남짓 있었던 것 같아요. 주말에는 노트북이나 업무를 하지 말아달라는 글이 붙어있는 것 같았거든요.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거절감이란 게 느껴지잖아요? 제 라떼는 처음으로 해마 모양의 아트를 선물 받았습니다. 바리스타 세 분이 모여서 열심히 제 음료를 말아주시더라구요.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고도 좋았습니다. 아마 아트를 배우고 있는 바리스타였겠죠. 사실 해마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받고 특이하게 예뻐서 좋아했습니다.
어쩐지 눈치가 보이는 브런치 카페에서 벗어나 스타벅스로 왔습니다. 스타벅스는 항상 쾌적했으니까요. 사실 이 스타벅스가 내부 자체는 거의 최고로 좋았거든요. 그런데 에어컨을 켜주지 않더라구요. 켜주긴 했는데 아-주 미약해서 손 선풍기만도 못했달까요. 막 더워지기 시작한 시점이라 난감했어요. 그래도 스타벅스인데, 에어컨을 일부러 짜게 틀어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잘 모르긴 하지만요. 해마 커피를 먹은 뒤라 병음료를 하나 샀는데요. 아주 단 블루베리 스무디라서 얼마 못 먹고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여기서 글을 쓰려고 꽤 노력을 했는데 얼마 못 썼던 것 같아요. 이쯤 되니까 글을 쓰러 시간을 내는 것도, 공간을 찾는 것도, 돈을 내는 것도 성가시게 느껴졌거든요. 리옹에서의 두 카페가 모두 마음 같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애초에 글쓰기 완벽한 환경이라는 건 없으니 어느 곳에서든 카멜레온처럼 착착 써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스스로에게 열받은 걸지도요. 남 탓, 부모 탓, 환경 탓이 제일 쉬운 일이니까요.
리옹에서 맛있는 빵집을 찾기가 꽤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정보가 별로 없어서요. 리옹이 미식의 도시라고는 들었거든요. 그러니 아무 빵집이나 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찾아둔 빵집이 없어졌길래, 바로 근처에 있는 곳을 향했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제가 가려던 곳이 맞네요. 아주 젊은 청년이 더위 속에서 빵을 팔고 있었는데요. 크로와상이 없어서 누텔라를 샌드한 빨미까레와, 뺑오쇼콜라를 하나 사 먹었어요. 뺑오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빨미까레는 얼려서 다음날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이게 정말 신기했는데요. 가게 밖에서 보고 왜 이렇게 빨간 게 자꾸 눈에 보이지, 했는데 모두 빵이었던 거예요. 리옹 전통 빵이라는 것 같아요.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주 부드러운 빵 안에 핑크색 설탕 코팅 같은 게 되어있고, 견과류가 크게 씹혀요. 아몬드 크로와상 결에 밴 단맛 같달까요. 견과류가 박혀있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정말 처음 먹어보는 빵, 처음 느껴보는 맛이라서 모든 게 생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랑스는 정말 빵, 빵, 빵으로 가득했는데요. 그야말로 빵친놈의 일지 같았네요. 그럼에도 프랑스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빵 말고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참 많은 곳인 것 같아요. 이번에 올림픽이 있을 예정이라 파리가 아주 깨끗하게 치워진 거라고 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조금 더 너저분한 곳이 많다고 하던데, 제가 갔을 때는 로봇청소기가 지나간 것처럼 깔끔했어요. 그래서 제겐 영원히 좋은 도시로만 기억될 것도 같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 공간,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니까요. 오히려 사랑의 도시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흔한 슬로건이 필요 없을 만큼, 저의 고유한 기억으로만 존재해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