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편

by 최열음

체스키크룸로프라는 도시를 아시나요. 무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인데요. 저희는 잘츠부르크에서 프라하로 넘어가기 위해서, 이 도시에 들러야 했습니다. 친구가 파워 서칭한 덕분에 예약한 봉고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조금 자유로워보이는 기사님이 운전하는 차였는데, 다른 한국인 가족과 함께 실려가게 됐어요. 비도 오고 날이 뒤숭숭한데 집 앞까지 와주는 봉고라니, 너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이른 아침 숙소를 떠났습니다. 언제나 교통수단을 타러 멀리멀리 이동해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주 호사스러운 일이었어요.


cafe in VIVO


그렇게 도착한 체스키크룸로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랜드마크인 성에 다녀온 후로는, 그냥 카페에서 쉬기만 했어요. 비도 오고 관광에 대한 열정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에너지를 조금 비축해 둬야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카페에도 사람이 아주 없고 한적해서 각자 핸드폰을 충전하며 유튜브를 봤습니다. 괜찮은 카페를 서치해서 간 건데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 실망했어요. 조금 관리가 안 되는 느낌이랄까요. 저희는 가장 구석에 앉아있었는데, 저희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불도 켜두지 않았거든요. 조금 애매한 마음으로 앉아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서 프라하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했어요. 터미널 편의점 같은 곳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기로 했습니다. 이 날이 되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왜인지 모르겠어요. 날씨가 안 좋았기도 하고, 다들 조금 지쳐있기도 해서였을까요. 혹은 마트 샌드위치에 질려버린 걸까요. 모두였을지도 몰라요. 프라하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 당시의 감정이 오늘까지 전이되는 게 신기한 일입니다.


프라하 성 스타벅스


사실 프라하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프라하 성 스타벅스와 굴뚝빵이었습니다. 그 스타벅스에 한국인이 그렇게 많다고 들었는데요. 그냥 체코에 한국인이 많더라고요. 무려 프라하성에 있는 스타벅스잖아욧! 듣던 대로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습니다. 일하는 파트너 중에도 민진이라는 이름이 있어서, 한국인인 줄 알고 물었더니 몽골리안이라고 하더라고요. 몽골이라는 나라가 처음으로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체코에서 민진이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몽골리안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못했어요. 유럽 스타벅스에만 있던 솔트 캐러멜 크림 콜드브루도 너무 맛있었어요. 보일 때마다 사 먹었는데 지금도 저 짭짤한 크림 맛이 그리워요.


굴뚝빵 역시 보일 때마다 사 먹었던 것 같아요. 굽는 걸 바로 볼 수 있어서 더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굴뚝빵을 굽는 언니들이 모두 체코 전통의상 같은 걸 입고 있는데, 그게 일본의 메이드복과 흡사했다는 거예요. 당장이고 캉캉을 출 것만 같은 어벙한 치마였는데, 어깨에는 둥근 뽕도 있고, 리본도 하나씩 달려있는 체크무늬 원피스였습니다. 굴뚝빵뿐만 아니라 그걸 굽는 언니들까지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요. 우리가 보기엔 예뻤는데 그걸 입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웃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모두 기계적으로 빵을 굽느라 바빴거든요.


Trdlo


제가 먹었던 굴뚝빵 중 최고는 이곳인데요. 야경을 보러 다리를 건너기 전, 우연히 들렀던 곳입니다. 줄이 되게 길어서 궁금했거든요. 얼마나 맛있길래, 하고 기다려서 기본 맛을 사봤는데 결대로 찢어지는 게 제대로였어요. 너무 부드럽고 따끈하고 맛있어서, 학교 가는 체코 애들이 이걸 먹는 상상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로 치면 단팥빵 같은 존재일 테니까요? 혹은 백설기정도일까요……


unknown…


프라하 쇼핑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아이가 먹는 걸 보고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영어를 못해서 엄마가 일러준 곳으로 찾아갔어요.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체코 사람들이더라고요. 체코 사람이 사 먹는 굴뚝빵이라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날 먹었던 빵을 생각했는데, 요전날 먹었던 게 좀 더 맛있더라고요. 주문을 받는 아저씨가 되게 프로페셔널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탕을 듬뿍 발라줘서 간식으로 먹기 딱 좋았어요. 프라하는 정말 굴뚝빵을 먹느라 커피 생각도 거의 못했던 것 같아요. 하루에 쓸 수 있는 간식비는 한정적이니까요.


Republica coffee


그래도 커피를 안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정말 좋다! 고 생각했던 카페인데요. 애들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털레털레 카페로 피신하게 됐어요. 구글맵에 저장해 뒀던 카페들을 둘러보다가 근처에 있는 동네 카페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이날 아침에 조깅을 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렇게 기진맥진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평소에 하지도 않던 조깅으로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걸지도요. 아마 꾸준히 했더라면 체력의 발판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안정적인 근육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조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처음에는 어려워도 루틴이 되면 관성이란 게 생기잖아요. 처음엔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근육이 붙고 나면 체력의 원천이 될 테니까요. 운동과 글을 습관처럼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꾸준함이라는 재능이 제게는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께 공간이 너무 좋다고 고백한 후에, 카푸치노를 한잔 주문했습니다. 카공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요. 그런 조용한 분위기라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이날은 놀러 온 거라 쓸 것도 읽을 것도 없었지만, 별생각 없이 쉰다는 마음으로 머물렀습니다. 곧 친구들과 다시 만나서 바비큐 립을 먹으러 가기로 했거든요. 한 시간 정도 혼자 여유를 즐기다 올 수 있었어요. 친구들은 스타벅스에서 모르는 할머니들과 합석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어리둥절하지만 또 유럽이라 그럴 수 있다고 수긍했을 걔네가 상상돼서 혼자 웃었던 것 같아요.


I need coffee!


제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카페입니다. 애들과 한인마트에 들렀다가 혼자 글을 쓰러 카페에 왔는데요.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기대하고 왔는데, 와이파이도 안 되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오래 있지는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커피도 맛있었고요. 바리스타들도 모두 즐기면서 일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끌벅적한 카페 분위기가 괜히 신명 난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서 조용하게 글을 쓰는 제가 조신하게도 보였고요. 헤드셋이 없었다면 얼마나 슬펐을까요.



한인마트에 들르기 전, 현지 마트에서 산 크로와상과 바나나, 요거트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어쩐지 프라하에서는 되게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혼자 조깅도 하고, 멀리 있는 카페도 다녀오고, 일정이 바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아보는 여행이라는 취지에 맞았달까요. 숙소에 돌아와서는 하트시그널을 보면서 밥을 먹었는데요. 저는 빵과 요거트와 바나나를 먹었고, 친구는 신라면과 햇반과 장조림을 먹었던 것 같아요. 한식을 그렇게 좋아하는 저인데도, 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네요.


물론 한 번에 빵을 세 개나 먹지는 않았고, 다음날 아침을 위해 하나를 남겨뒀습니다. 프라하 마트도 크로와상이 너무 맛있어서 좋았어요. 마트 빵은 저렴하고 접근성도 좋기 때문인데요. 유럽에 괜찮은 마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제 여행에 빵과 커피가 없었더라면 훨씬 고단했을 거라고 확신해요. 프라하에서도 이런저런 빵과 커피들이 제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크로아티아 이후에 많은 나라들을 건너 다니느라, 심신이 꽤 지쳤던 것 같거든요. 아무리 낯선 곳에도 맛있는 빵과 커피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 여행의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들에게 지면을 주고 싶어졌달까요. 어제자로 현실의 저는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빵은커녕 밀가루 자체를 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사실 여행이 끝난 지 한 달쯤 된 지금도, 빵을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저는 대체 3개월 간 얼마나 많은 빵을 섭취했던 걸까요. 그러나 정말 맛있는 빵 앞에 서면 다시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아요. 아직 그만큼 매력적인 빵을 만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