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편

by 최열음

드디어, 서유럽에 왔습니다. 한적하고 잔잔한데 붉고 아름다웠던 동유럽, 너무 좋았지만 사실 제 취향은 서유럽 쪽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날아오자마자 너무 좋았거든요. 시끌벅적하고 인프라도 많다는 게 제일 설렜어요. 여기서 인프라는 베이커리와 카페일지도 모르겠네요. 영국 음식이 맛없다는 소문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괜찮던데요. 대도시가 주는 생기로움을 가득 안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숙소가 조금 독특한 곳에 있었는데요. 어쩐지 아랍인들만 가득한 곳에서 4일 정도를 지냈습니다. 주변이 온통 레바니즈 식당이었어요. 아랍 사람들이 야외 카페에 일렬로 앉아서 물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신선하더라고요. 그야말로 물이 가득 찬 기계의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보글보글 끓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들이 빨아들이는 원료가 뜨신 물인지 찬 물인지는 몰라도 괜히 쫄아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갔습니다. 레바니즈 음식을 한 번도 못 먹어본 게 조금 아쉽긴 하네요. 용기를 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Blank street


친구가 런던 여행 코스를 열심히 짰습니다. 빅벤, 런던아이도 봐야 하고, 뮤지컬도 봐야 하고, 노팅힐도 가야 했거든요. 저희는 메릴본 쪽에 머물렀기 때문에 노팅힐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어요. 버스로 30분 정도 갔던 것 같아요.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노팅힐에 도착하자마자 피쉬 앤 칩스를 먹었습니다. 영국은 어쩐지 그게 제일 유명한 음식인 것 같더라고요. 튀김에 속이 잔뜩 버무려진 채로 노팅힐을 걸었습니다. 목적지 없이 소품샵들을 구경했는데요, 우선 커피부터 한잔 해야겠더라고요. 구경할 게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블랭크 스트리트, 사실 롱블랙이라는 뉴스레터 플랫폼에서 봤던 카페였는데요. 먹을 때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거든요. 유명한 체인점이라는 걸 모르고 괜찮은 라떼 사진만 보고 갔습니다. 내부는 크지 않았는데, 블랭크 스트리트 자체가 작은 공간에서 적당히 맛있는 커피를 파는 컨셉이라고 하더라고요. 자투리 공간들을 활용한다고 해요. 아마도 제가 갔던 곳은 큰 편이었나 봐요.


어쩐지 노팅힐에서는 제가 가장 신이 났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진도 많이 찍고 폴로 마켓에서 선물도 사 왔는데요. 런던이라는 글자가 크게 박힌 키링도 여기서 샀습니다.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것들이 친구들 가방 어딘가 혹은 벽 어딘가에 달려있을 걸 생각하니 무척 기쁩니다. 그러라고 산 거니까요. 선물을 사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여행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작은 물건을 통해서도 시공간과 사람과 추억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buns from home


영국 최고의 시나몬 빵 나왔다…… 이름은 집에서 구운 번이라는 것 같은데, 이런 집이면 들어가서 살고 싶어 지는데요. 길을 걷다가 이 빵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가게 반경 500m 안에서는 다 이걸 손에 들고 있더라고요. 냄새를 찾아서 여기다, 하고 들어갔습니다. 정갈하게 진열된 빵을 보니까 너무 기뻤어요. 3.5유로면 거의 5천 원 정도라서 한 조각만 먹기로 했습니다. 아직 먹어야 할 빵과 마셔야 할 커피가 많기 때문입니다.


buns from home


시나몬 빵은 정말 후회가 없었습니다. 가능하다면 한 번에 세 개씩 먹고 싶은 맛이었는데요. 그래서 마지막 날에도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시나몬 빵보다 이 크림빵이 더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비주얼이 말도 안 돼서 설레는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크림이 바닥까지 꽉 차있어서 상자에 한번 털고 먹었습니다. 묵직-하게 떨어졌어요. 아까운 크림을 버릴 수는 없으니까 시나몬 빵에 찍어 먹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이렇게 먹다가 살찐 것 같아요.


크림은 바닐라였어요. 사실 여행하면서 무언가를 정확히 알고 먹지는 못했거든요. 대충 생긴 거 보고 짐작하고, 이름 보고 아리송했다가, 먹어보고 깨닫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영국은 영어라서 너무 편했습니다. 영국 억양에도 자주 치였는데요. 처음 보는 제게 달링~ 혹은 허니~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신기했어요. 아,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도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지하철 계단에서 저희 캐리어를 들어준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동이었어요. 쓰면서 생각해 보니 영국을 좋아할 수밖에 없네요. 아름답고 친절한 데다가 맛있고, 없는 것도 없으니까요.


starbucks coffee


저희가 갔던 스타벅스 중에 사람이 가장 많았던 매장입니다. 런던 소호 거리 한복판에 있는 곳인데요. 차이나타운과 가까워서 유동 인구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았어요. 대도시의 위엄에 눌린 나머지, 잠시 쉬고 싶어서 카페를 찾아다니던 차였습니다. 근처 스타벅스는 모두 자리가 없어서 세 번째 시도에 겨우 앉을 곳을 찾아냈어요. 이 스타벅스에는 유난히 특별한 기억이 있는데요. 저희 주문을 받은 바리스타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샘플링을 진행할 때 찍힌 사진이 있는데요. 옆자리에 앉은 콜롬비아인이 함께 사진을 찍겠다고 했어요.


저분들과는 잠시 이야기를 하고 악수까지 했는데요. 말을 정말 잘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쉬려고 왔는데, 더 지친 나머지 곧 입을 다물게 됐어요. 아마 제 에너지를 그들이 빨아들인 것 같아요. 샘플링한 신메뉴는 올리브오일이 들어간 음료인데요. 되게 향긋하고 건강한 맛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솔티드 크림 콜드브루를 먹어야 해서요. 그리고 저희는 올리브오일이 그렇게 친숙하지 않잖아요. 채소 볶을 때 쓰던 걸 커피에 섞어 먹으니까 신세계였지만 저는 그냥 구세계에 머물고 싶은 마음입니다.


Cheeky scone / Maison Bertaux


런던에 올 때 스콘도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 정도 먹었는데요. 모두 주먹보다 크고 촉촉하더라구요. 우리가 먹던 퍽퍽 스콘과는 다른 맛이었습니다. 왼편은 노팅힐에서 먹었던 녀석이고, 오른쪽은 소호에서 먹은 녀석입니다. 갓 나온 걸 먹거나, 데워 먹는 게 맛있더라고요. 역시 스콘은 따뜻할 때 딸기잼 발라 먹는 게 최고니까요. 클로티드 크림도 처음 먹어봤는데, 제가 싫어할 수 없는 유제품이더라고요. 버터스럽고 꾸덕한 우유를 발라먹는 것 같았어요. 아, 그리고 크기가 진짜 커서 아점으로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야식이거나 아침으로 먹기는 했지만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안 먹던 끼니를 늘려서라도 먹던 날들이었습니다.


coffee island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거의 처음으로 삼단분리 되었어요. 저는 글 쓰러 카페로, 한 명은 내셔널 갤러리로, 한 명은 축구 유니폼을 사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런던의 주말은 아주 붐비는 서울 같더라고요. 카페에도 자리가 없었어요. 사람 없는 동유럽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분주함이었습니다. 이 카페는 평범했지만 되게 더웠어요. 공기가 답답했달까요. 숙소도 환기가 정말 중요한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웠어요. 복층 구조였는데 위층에는 거의 공부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저 역시 한 자리 차지하고 글을 썼는데, 중간쯤에 허벅지에 커피를 쏟았지 뭐예요.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커피 흘린 걸 까먹고 며칠 동안 바지를 그대로 입고 다니긴 했어요. 어쩐지 카페도 저도 조금은 모자란 느낌이네요.


Costa coffee


런던 근교 캠브리지로 떠나는 길입니다. 1박을 위해 세 달 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저희의 계획을 잠시 원망했어요. 심지어 한 명은 곧 바르셀로나로 떠나야 해서 당일치기로 캠브리지를 찍고 갔거든요. 다시 런던에 온다면 이런 일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캠브리지로 향했어요. 모닝커피로는 예전에 한번 마셔보고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코스타 커피를 한잔 했습니다. 너무 더워서 아이스커피가 간절했는데, 그렇게 많던 아이스 음료가 기차역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런던의 근교 중에서도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중에 고민했는데, 펀팅이라는 메리트가 있어서 캠브리지를 선택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대학 캠퍼스 같았는데요. 그 사이를 보트로 떠다닐 수 있었거든요. 친구를 공항으로 보내고, 숙소에 짐을 푼 뒤 혼자 카페에서 글을 쓰려고 나왔습니다. 캠브리지도 시골이라서 카페들이 다 일찍 문을 닫더라고요.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1시간 정도 남기고 주문을 했던 것 같아요. 아름답기는 손에 꼽게 아름다웠어요. 진짜 현지인들만 올 것 같은 로컬 카페였는데요. 카페 주변에도 주택단지와 도로밖에 없었습니다.


Barbarella


그러나 아쉽게도 제가 갔던 카페 중에 가장 집중이 안 됐던 곳이었어요. 제 옆자리에서는 사장님이 회계 장부를 정리하는 것 같았고, 딸은 계속 떼를 쓰고, 직원들은 일을 하다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거든요. 애써 변압기를 연결한 충전기를 꽂고 헤드셋을 썼습니다. 글을 조금 쓰기는 했던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게 마음이 분주했던 시간이었어요. 중간에 배가 고파져서 바나나 브레드 푸딩을 하나 먹었어요. 알고 보니 디저트 맛집은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플랫 화이트는 고소하니 맛있어서 좋았어요. 영국 빵은 어째서인지 다들 크기가 커서 반 정도 남기고 포장해서 나왔습니다. 친구에게 먹어보라고 했는데 두 입 먹고 말았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캠브리지에만 있는 카페에 가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어쩌면 제게는 카페도 하나의 랜드마크라고 생각해요. 노팅힐 카페, 런던 카페, 캠브리지 카페는 모두 달랐으니까요. 다르게 좋았고요. 진짜 랜드마크인 빅벤이나 런던아이를 직접 봤을 때보다 이런 로컬 카페에서의 시간이 더 강렬했고요. 그곳에만 있는 커피, 사람, 정서, 분위기, 음악이 있으니까요. 그런 유일무이함이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든 비슷하지 않을까요. 제가 오랫동안 글을 쓴다면 아주 많은 카페에서 모두 다른 글을 쓰게 되겠죠. 어쩌면 커피에 따라서 글도 달라지는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