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탈리아 이후로 가장 바삐 움직일 계획이었던, 오스트리아에 왔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음악이 유명한 곳인데요. 그래서인지 커피와 빵을 열심히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마트의 빵이 아주 맛있었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어느 날 아침부터 바지를 수선하기 위해 수선집을 찾아다니다가 Billa라는 마트를 가게 됐거든요. 그곳에서 초코 크루아상과 애플 패스츄리와 프레첼 같은 것들을 사 왔더랬죠. 혼자 부지런히 나와서 빵을 사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면서요.
결국 바지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수선을 맡기지 못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 번, 비엔나에서 한 번씩 수선집을 들렀는데 모두 거절당했거든요. 대신 맛있는 빵을 발견했으니 실패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주변에 빵집이 되게 많았는데 어쩐지 사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숙소 주변에 와서야 아침으로 먹을 과일이라도 사려고 마트에 들어간 거예요. 그런데 너무 괜찮아 보이는 빵들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아침이라 그런지 갓 구운 녀석들이었고, 그야말로 신선식품이었습니다. 사과 세 개와 빵 세 개를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유럽은 빵들이 어느 정도 다 맛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크루아상이 아주 바삭하니 맛있습니다. 이 마트에서 산 초코 크루아상도 꽤 성공적이었어요. 이름이 다 독일어로 되어있어서 대충 눈으로 짐작해서 때려 맞춘 거거든요. 번역기를 돌릴 만큼 정성을 쏟지 않았는데도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어서 아주 뿌듯한 마음이었습니다. 숙소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도 맛을 보라고 했어요. 그 애들도 다음날 같은 빵을 사 먹곤 했습니다. 준비에 쏟을 시간을 빵 먹는 데 썼습니다. 사실 이 날만이 아니라 많은 아침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아침을 챙겨 먹는 타입도 아닌데, 유럽에서는 화장 대신 빵을 선택했거든요. 지금은 먹으라고 해도 안 먹을 것 같아요.
오스트리아에는 3대 카페가 있다고 합니다. 어딘지는 잘 모르는데,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3대 카페를 모두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장황한 수식어를 가진 곳이 별로 기대되지 않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건 맛있는 로컬 카페 쪽이었어요. 그런 곳을 찾았을 때 훨씬 기쁜 마음이더라고요. 그래도 3대 카페 중 하나인 ‘자허’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한번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카페를 찾았는데요. 소소하게 웨이팅도 있었습니다. 호텔 카페라서 그런지 되게 격조가 있더라고요. 서버들도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는 게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혼자 이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요. 결국엔 친구들이 저와 합류하게 되면서 큰 테이블로 옮겨가게 됐어요. 제가 시킨 음료는 크림이 올라간 멜랑쥬 커피였습니다. 전혀 쓰지 않고 달지도 않고, 딱 적당히 기분 좋은 맛이었어요. 가격은 그렇지 않았지만요. 케이크도 되게 유명했는데, 자허토르테라는 이름으로 살구잼이 들어간 초콜릿케이크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디저트라고 하네요. 비엔나커피도 궁금하긴 했지만 사실 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 보는 멜랑쥬를 시켜봤어요. 오스트리아의 공식 음료와 대표 디저트를 먹고 할 일을 조금 하다가 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한국인이 꽤 많았어요. 바로 옆 테이블도 한국인이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귀에 쏙쏙 박혀서 에어팟을 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 기분 좋은 대화는 아니었거든요. 염탐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염탐이 되어버려서 조금 슬펐어요. 역시 외국은 언어 때문에 소음도 상관없는 게 큰 메리트라고 실감하면서요.
비엔나 다음 행선지는 잘츠부르크입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되게 잔잔하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겼어요. 비엔나와 비슷했지만 더 시골스럽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강릉에서 고성으로 넘어간 느낌이랄까요. 강원도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가장 비슷한 느낌이라서 비유해 봤어요. 아니면 말고요……
사실 잘츠부르크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도시예요. 좀 쉬어가려는 생각이기도 했고요. 한 도시에서 달리면 다음 도시에서는 쉬어줘야 밸런스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비가 오는 날씨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처음으로 기차를 놓쳤습니다. 한 달 넘게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 기차를 놓친 게 더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요. 처음 겪은 일이라 당황하기는 했습니다. 여행에서는 당황스러움에도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게 슬프더라고요. 친구 덕분에 다음 기차를 저렴하게 예매하고 올라탔습니다. 이후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었답니다.
잘츠부르크는 끝장나는 숙소 때문에 많은 일정을 보류하고 또 취소했습니다. 관광도 하루에 몰아서 하고, 비도 오는 김에 할슈타트는 모두 포기하고, 독일 뮌헨 당일치기는 가고 싶은 사람만 가기로 했죠. 아마 저희가 계획했던 모든 것을 이행했다면 굉장히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다음 일정을 소화했을 거예요. 모두 숙소가 좋았던 탓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테라스도 있고 주변에 마트도 잘 되어있고, 깔끔하고 넓어서 모든 게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후에 에어비앤비를 확인해 보니, 저희가 거의 마지막 게스트였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는 것 같아서 슬펐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자꾸 슬퍼지는지 모르겠네요.
잘츠부르크 관광은 하루에 몰아서 해버렸습니다. 볼 게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잘츠부르크 패스를 구매했기 때문에 뽕을 뽑으려고 노력했어요. 잘츠부르크와 독일에는 프레첼이 이렇게 널려있었습니다. 저렇게 큰 녀석들은 비싸서 사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프레첼을 먹고 싶은 건 저 혼자였는데, 저렇게 큰걸 먹었다가는 밥도 못 먹었을 테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점심으로 먹을 걸 그랬나 봐요.
역시 스타벅스도 들렀습니다. 비도 오고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한 번씩 가곤 했거든요. 잘츠부르크에 수학여행을 온 듯한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유럽 애들은 수학여행을 와서도 스타벅스에 오더라고요. 저희가 앉은 저 자리 주변에도 애들이 많았는데요. 어쩐지 저희를 원숭이 관람하듯 관람하며 웃고 쑥덕거리는 걸 참을 수 없어서, 다른 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누군가에게 희귀종이 되는 경험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잘츠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근처 독일 땅을 밟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뮌헨이라는 도시였는데요. 여권을 챙겨가지 않아서 중간에 매우 당황했지만, 한국 민증으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이라서 저 같은 사람이 많은가 봐요. 독일 땅도 못 밟아보고 돌아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었어요. 휴…… 손에 꼽게 아찔했던 기억이었습니다.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튀긴 족발이라는 슈바인학센을 먹고, 갑작스레 친구와 흩어졌습니다. 근처에 축구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그 애는 축구를 보러, 저는 빵을 사 먹으러 갔습니다. 역시 각자의 니즈에 충실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프레첼을 사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근처에 유명하다는 빵집을 향했습니다. 아직 카페에 정착하기엔 이른 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독일판 꽈배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줄이 아주 길었으나 체계적으로 주문을 받는 웨이터들 덕에 아주 빠르게 입장했어요.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습니다. 이때쯤 되니까 제 속에 피가 흐르는지 밀가루가 흐르는지 조금 헷갈릴 지경이었어요. 빵이 원동력이 아니라 그냥 빵이 된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기름에 곱게 튀겨지는 것들을 보면서 금세 행복해졌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요.
앉아서 먹고 가면 돈이 조금 더 추가되더라고요. 알 법도 했는데 그걸 까먹고 먹고 간다고 했어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데요. 커피도 한잔 할까 했는데, 커피를 기계로 내려주는 걸 보고 빵만 시켰습니다. 포장해 가면 설탕을 직접 발라주는데요, 먹고 간다면 테이블에 있는 설탕을 직접 뿌려먹으면 됩니다. 어떤 친절한 할머니 곁에 앉아서 조용히 빵을 먹고, 어떤 가족들과 대화를 하다가 나왔어요. 관광객인 줄 알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데, 여기 산다고 해서 민망하게 놀랐습니다. 가히 현지인도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정말 오랜만에 핸드폰 배터리를 거의 다 써버린 날이었습니다. 독일어를 전공한 친구와 전화를 했기 때문인데요. 걔는 자기보다 제가 먼저 독일 땅을 밟은 게 어이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 사실이 웃기다고 생각하면서 한참을 통화했어요. 뮌헨에 있는 영국 정원이라는 곳을 두서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오랜만에 구글맵을 끄고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였어요. 구글맵을 켜지 않아도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경험을 오랜만에 하면서요.
그리고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랄프 커피에 들렀습니다. 분명 뮌헨에서 유명한 카페라고 들었는데, 어쩐지 현지인보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 같았어요. 이래서 소문을 믿으면 안 되나 봅니다. 이름만 랄프 커피인 줄 알았는데, 정말 폴로 랄프로렌에서 운영하는 카페였습니다. 그래서 다들 쇼핑을 마친 뒤에 격조 있게 커피 한잔 하는 공간이더군요. 그곳에서도 가장 저렴한 마끼아또를 한잔 시키고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커피도 쓰고 공간도 좁아서 어쩐지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는 기차에서는 남은 프레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했는데요. 당연히 피로하기는 했지만 독일 땅을 밟아보길 잘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역시 여행은 피로와 기쁨을 교환하는 일이라고 느끼면서요. 그래서 자주 기쁘고 피로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네요.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건 꼭 여행의 일만은 아니겠지만요. 그리워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아마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많은 도시들을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요.
다음은 체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