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 암스테르담
정말 마지막 여행지, 스위스입니다. 3개월 여행이 끝나는 곳이다보니 조금은 슬픈 마음이기도 했는데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들인 돈이 아깝지 않게 놀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라서 놓칠 수 없었거든요. 대신 식사는 모두 라면이나 빵, 조식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5일 동안 외식은 딱 하루만 하기로요. 마트에서는 주로 복숭아를 샀고, 조식으로는 주로 빵을 먹었습니다. 크로와상이 꽤 제대로던데요.
스위스에 오려면 컵라면을 매 끼니 분량으로 챙겨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교통권만으로도 비쌌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컵라면을 약 7개 정도 가져간 것 같아요. 파리에서부터 면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가방을 옮겨 다녔습니다. 인터라켄에 와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더라고요. 인터라켄 현지 마트나 파리 한인 마트나 비슷한 가격이었거든요. 스위스에 한국인이 어찌나 많은지, 마트에 신라면이 다발로 쌓여있었습니다. 저녁에 숙소들을 지나다 보면 라면 냄새가 나기도 했고요.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는 꿈도 못 꾸었기 때문에, 당이 떨어질 때마다 초코우유를 사 먹곤 했습니다. 생리 중이기도 했거든요. 초코우유가 은근히 힘을 주더라고요. 첫 번째는 그냥 엄청 크고 저렴해서 궁금했고, 두 번째는 너무 맛있어 보였습니다. 레몬파운드케이크는 아주 상콤하고 향긋했어요. 모두 귀여운 맛들이었네요. 어이가 없게도 스위스에서 먹은 빵과 커피는 이것들이 전부인가 봅니다. 물가가 저를 단식하게 하네요.
네덜란드가 커피로 또 유명하다고 하더라구요. 혼자 가려다가 친구와 함께 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인점이더라구요.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라서 좋았어요. 저는 비록 경유지로 잠시 머물겠지만, 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며 많은 날들을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면 아득해지더라구요. 다시 볼 확률 같은 건 거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 다시 오지 못할 공간이라는 건 묘한 느낌을 주잖아요.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많은 날들을 가치롭게 살 수 있을 텐데요.
이 카페 화장실에 붙어있던 메모가 아주 귀여웠습니다. 지금은 고작 화장실 때문에 우리 카페를 왔을지언정, 커피 한잔 마셔보면 우리 고객이 되어버릴걸~ 하는 앙큼한 멘트라서요. 보통 앞부분만 읽으면 음료도 안 사 먹고, 화장실이나 쓰냐고 책망하는 줄 알 텐데 말이죠. 제가 사 먹은 카푸치노는 비록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이 멘트가 인상적이라서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그리고 유럽에서 사 먹은 마지막 커피이기도 하니까요.
네덜란드에서 또 유명하다는 와플도 하나 사 먹었습니다. 정말 하나만 먹는 거라서 조금 미안했는데요. 왜냐하면 저 얇은 와플을 불판에 지져서 담고, 슈가파우더를 뿌려서 포크를 꽂아주거든요. 이 호사스러운 걸 먹어도 되는지, 생각하며 떠났습니다. 따땃한 와플은 다섯 입 거리도 되지 않았지만요. 짜릿하게 달달했던 맛은 아직도 선연하네요.
이제 진짜 떠난다는 게 아주 착잡하고 슬퍼서 당황스러웠던 비행이었습니다. 왼쪽은 스위스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때고, 오른쪽은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떠날 때였거든요. 어쩌면 사진의 밝기가 제 심경을 의미하는지도 몰라요. 지독하게 긴 여행이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후루룩 지나버린 시간을 돌려버릴 수가 없어서 아련해졌던 마음입니다. 더구나 한국에 갈 때는 양 옆자리가 모두 비어있어서 아주 편안하게 왔는데요.
영화 두 편을 보다가 울었는데, 영화 때문에 운 건지 여행이 끝나서 운 건지는 조금 헷갈리네요. 아무튼 빵과 커피는 이번에도 제 심신을 달래주었습니다. 특히 빵은 소화가 좀 안 되었는데 커피가 진짜 속을 달래주더라고요. 드립커피 같았는데, 얹힌 듯한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커피는 어딜 가도 익숙한 맛이잖아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으니까 그 익숙한 맛과 정서에 자주 의지했던 것 같아요.
빵과 커피만큼 유럽에도 많고 당연한 게 거의 없으니까요. 무엇도 당연한 게 없는 낯선 도시에서 당연한 것들을 찾아 헤맸나 봅니다. 어떤 것을 찾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는지, 그걸 모두 찾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이 맛있는 빵과 커피가 매 순간 저를 달래주었다는 데 집중하고 싶네요. 고맙고 기특한 마음에, 이렇게 정성껏 지면을 내어주고 있으니까요. 턱없이 막막한 생각이 들 때마다, 두려움에 압도되거나 때로는 열받을 때마다, 빵과 커피와 유럽이 모두 제게 있었네요. 세 가지를 한 문장으로 연결해버리니 되게 짜릿합니다. 제게는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기억이고, 이제는 저의 시간과 신체에 저장된 것들이니까요.
<빵, 커피, 유럽>을 마치려고 합니다. 3개월 여행만큼이나 길고 지난한 과정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여행 같은 일상을 탄력적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때로는 빵과 커피의 힘을 빌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