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도시를 산책했다. 아주 오랜만에 혼자 하는 산책이었다. 어째서인지 가만히 거실에 앉아있는데도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집에 더 머물고 싶으려면 더 멀리 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무튼 제대로 멀어져야 가까이 지낼 수 있다.
아무래도 지난 일주일이 일상과는 아주 분리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발판이 필요했다. 정읍에서 제주, 제주에서 파주, 파주에서 다시 청주까지. 무척이나 정신 없고 분주한데 여유롭고 평안한 시간이었다. 글은 별로 쓰지 않았다. 대신 남자친구의 휴가 일주일을 빌려 썼다고 생각했다.
아주 입체적인 시간을 보내며 납작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글을 몰아서 쓸 수록 어쩐지 나와 남이 모두 납작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서포터즈 사람들과, 교회 사람들과 흘러간 일주일이었다. 그러니 다시 혼자 일어나 쓰고 먹고 쓰고 읽고 자는 루틴으로 돌아올 준비를 했다.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나의 중심인 것 같다. 그 중심이 흔들리면 다른 모든 일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쓰는 습관이 들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며칠만 게을리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둘다 지순한 엉덩이가 필요하다.
… 사람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날들이 꽤 행복한 사람이 어떻게 소설을 쓴다는 걸까. 고인 이야기를 배출하는 일은 지극히 혼자인 일인데. 글쓰기의 위장을 남들과 공유할 수는 없지 않나. 소화하고 배출하는 건 오롯이 나만의 일인 걸 알기 때문에 고민한다. 무척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음을 느낀다.
그런 욕구들이 나의 혼자인 정신을 흩어지게 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말하고 느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이지만 혼자일 수 없는 마음으로 산책을 했다. 아직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엔 동네에 사람이 참 없다. 임박한 출근을 대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하고 노곤한 몸과 마음으로 침구를 정리하고 있을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래도 혹시나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런 동네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걸으며 느껴지는 것들을 흘려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메모장에 두서 없는 글들이 늘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나 장면을, 또는 충격을 희석시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물을 너무 많이 흘려보낸 드립커피는 밍밍해서 맛이 없을 수 밖에.
흩어지는 생각들을 모아가며 평소 걷던 산책길을 걸었다. 친구와 함께 걸을 때는 딱히 루트랄 게 없이 여러 방법으로 변형하여 걸었던 길인데, 혼자 걸으며 보니 집에서부터 나와 공원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괜찮은 루트가 있었다. 혼자 나온다면 이 루트로 계속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오빠는 혼자 산책한다는 내게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괜찮지 않은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누가 뒤에서 찌를 수도, 때릴 수도, 발로 찰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답답함이 더 컸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상관하지 않는다고 상관이 없는 건 아니었으므로 경계를 아주 풀지는 않으며 걸었다.
그리곤 다시 집에 돌아가면 정돈된 책상에 앉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실의 식탁 겸 책상 말고, 25년 된 내 책상 말고… 혼자인 공간의 혼자인 책상에 무척이나 앉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집에서라도 잘 써야지. 결국 스스로를 탓하는 결론인 것 같아 몸을 털고 빠르게 걸었다. 적어도 산책은 돈이 들지 않아 다행인 것이다.
잠에 들기 전에는 그냥 닥치고 쓰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주일 간 밖에서 나돌았더니 가만히 앉아 쓰는 법을 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꿈을 꾸었다. 책상에 관한 것이었다. 투베이 자취방에 책상을 세 개나 두었다.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다른 방향으로. 그런데 그 꿈에도 동생이 있었다. 꿈에서도 현실과 소망을 적절히 반영한 것인가…
그 꿈에서 깨자마자 스타벅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일어났지만, 그래서 세수도 하지 않고 요가를 했다. 거실에서 팔과 다리를 부끄럽지만 길게 뻗는 동안, 동생은 식탁에서 냉동 낙지볶음밥을 먹었다. 바로 씻고 싶었지만 동생은 학교에 가야 하고 나는 카페를 가는 것뿐이니까 양보하기로 했다.
걔가 샤워할 동안 세수도 하지 않은 축축한 얼굴로 유튜브를 봤다. 내일은 반드시 일찍 일어나 혼자 준비하고 나갈 것이다… 글을 많이 쓸수록 독립과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도 잘 모르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게 두렵지만 싫지는 않다. 남들은 믿지 않을 때 혼자 믿는 게 언제나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