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가족

by 최열음

부여에 다녀왔다. 엄마의 엄마가 있는 곳이다. 할머니가 언제부터 부여에서 살았는지는… 분명 들었으나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튼 할머니의 아들인 나의 삼촌은 부여에서 나고 자라 결혼과 취업을 하고 현재까지도 부여에 살고 있으니, 할머니도 최소 50년은 살았다는 뜻이다. 그가 50년 이상을 살아온 곳에 나는 가끔씩 들른다. 그러나 부여에 대해 무엇도 모른다.


청주에서 부여까지는 버스로 약 세 시간이 걸린다. 운전을 해서 간다면 절반 정도 소요될 것이다. 곧 기가 막히게 운전을 해서 할머니 집에 당도하는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 미래가 오기까지는 시외버스에 몸을 맡겨야 한다. 충청도 기사님들은 대개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성격이 급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말투는 느긋하다.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옮겼다. 움직이는 차 안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기사님들은 대체로 발끈하신다. 매우 위험하고,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그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일 테다. 아무튼 여러 이유로 기사님은 화가 나셨으며 그런 중에도 느긋하게 말씀하셨다. “아니 왜 버스 운전을 못하게 해유~”


그러나 상대는 결코 만만한 아주머니가 아니었다. 그는 무어라 궁시렁대다가, 기사님이 궁시렁으로 답하자 “뭐! 못할 일도 아닌데 그렇게 뭐라고 하고 난리여” 라며 매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냥 이 싸움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당사자들보다 더욱 마음을 졸이며… 앉아있었다. 칼에 베이는 것도 순식간에 당하는 것보다 느리게 당하는 게 더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싸움은 금방 끝이 났고, 부여로 향하는 풍경은 너무나 익숙했다. 3년 만에 보는 건데도 그랬다. 삼촌이 데려갔던 짬뽕집, 외숙모가 자주 간다는 목욕탕, 할머니가 일했던 시장,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마트까지. 잊고 있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었다. 사실 부여에서 떠나있는 동안은 부여를 잊고 싶었다.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는 일은 엄마를 기억하는 일이고… 엄마의 형제들은 나를 볼 때마다 아련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 없는 불쌍한 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여에서 멀리 있는 동안, 나는 밝고 명쾌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살아가는 사람, 생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도 부여에서 삼촌을 만나는 동안은 계속 그렇게 지낼 수 있었다. 삼촌과 외숙모에게는 여유와 유머와 삶이 있었다. 농담이 난무하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자주 행복해했다. 그러다 할머니와 둘이 있을 때(주로 그랬고, 그러려고 간 것이었다)면 모든 게 조금씩 흐려졌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할머니와 지내며… 나는 할머니의 한과 두려움과 과거와 슬픔에 직면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흘러나오는 그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할머니에게 나는 착하고 불쌍한 딸자식, 동생은 똑똑하고 불쌍한 녀석, 아빠는 복도 없고 불쌍한 사위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의 세계관 속에 박제되었다. 그곳에는 아주 슬픈 내가 있었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 나의 불쌍한 면면들만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정말이지…


그러나 그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또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모든 말이 그의 사랑임을 알았다. 그건 그가 가족을 기억하고 엄마를 애도하는 방식이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엄마를 잊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나를 정말 몰랐다. 아무튼 그는 여름이면 직접 기른 호박잎을 따서 삶고 얼려둔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 수제비를 끓일 가능성을 매 여름마다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것들을 내게 먹이지 못하고 옆집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면 무척이나 아까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된장 수제비를 먹게 된 것 같았다. 할머니의 된장과 호박잎과 얇은 수제비를 무척 사랑했다. 그가 남의 땅 한 켠에서 호박을 기르고, 매일 들여다본다는 걸 알았다. 그게 낙인 것 같았다. 호박을 지켜볼 때마다, 그리고 호박잎이 무성히 자랄 때마다 내게 먹일 생각을 할 거라는 것도. 매년 여름 나를 기다렸을 테지만 오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게 무척이나 나를 슬프게 했다.


대체로 슬픈 와중에 엄마에 관한 재밌는 썰도 들었다. 엄마가 아빠를 만났을 무렵, 사실 다른 남자도 후보에 있었다고 한다. 어장을 친 건 아닌 것 같고(만약 쳤다고 해도 할머니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을 리는 없으니)…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 둘 모두와 잘될 가능성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무튼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는 부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부자와 결혼하면 가난한 친정을 얕잡아볼까봐 만나지 않았다고… 하마터면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할머니가 열심히 다니던 생활 과학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름이 무척 수상해서 열심히 찾아봤었는데… 이상한 곳은 아닌 것 같고 그냥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판매하고 건강에 관한 강의도 하며, 기구를 사용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현실판 생로병사의 비밀 같았달까. 아무튼 그곳이 문을 닫을 때 발품들을 사 두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선택한 품목들은 무슨 건강 의자와 치약과 에센스 등등…


할머니는 강인한 여드름 피부였던 나를 걱정했다. 나는 이제 아주 비싼 돈을 내고 피부과를 다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었으므로. 새로 나는 여드름이 없다고 세 번은 말한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의하면 사촌 동생이 갑자기 여드름 폭탄을 맞고 ‘나처럼 엉망진창’이 됐을 때, 할머니가 준 에센스를 사용하고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에센스의 효능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는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너무 직접적이라서 웃겼다. 고작 피부 같은 게 엉망진창이라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보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이제는 엉망진창이 아닌 피부인 데다가, 내일 피부과에서 15만원짜리 치료를 받을 테지만 할머니의 강권에 에센스를 받아왔다. 이제 나는 무적의 피부를 갖게 될 것이다.


웃기고 귀여운 일도 많았지만 대체로 할머니의 한풀이를 듣고 또 생각하는 게 너무 슬퍼서,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그 정서에 매몰되었다.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또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할머니의 곁에서 타박을 당하면서도 농담을 일삼는 삼촌이 있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에센스가 바닥나기 전에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다시 부여에 가야겠다고도…


내가 없이는 혼자 외롭게 잠든다고 말하는 할머니. 일주일에 세번 교통정리 알바를 하고, 일이 끝나면 메가커피에서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열번 짜먹는 할머니. 고기도 못 먹으면서 매번 꽃게탕과 LA 갈비와 갈치 조림과 양념 게장을 만들어놓는 할머니. 신보다는 미신과 가족과 경험과 돈과 정서를 믿는 할머니.


나의 취직과 결혼과 앞으로의 행보를 궁금해하지만,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먼저 묻지 않는 할머니를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은 내게 엄마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할머니가 정말 슬프다. 너무 슬픈 사랑이라 함부로 생각할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꺼내볼 것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 와서 글을 쓰고 남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할머니는 혼자 호박을 따고 식혜를 만들고 자연인을 볼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도 무척이나 다른 모습으로 흘러갈 텐데. 나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채워갈 테고… 할머니는 자꾸만 버려야 할 것이다. 다음에 갈 때는 김밥 재료를 좀 사가야겠다고 미리 생각한다. 나물을 잔뜩 넣은 김밥을 싸먹다보면 슬픔 같은 건 잠시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부여에 데려갈 생기를 지금부터 촘촘히 모아두어야 한다. 그가 과거를 돌아보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미래를 말해야 하고… 잔뜩 무장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무척이나 흔들릴 테니. 결코 흔들리지도 슬프지도 않을 그와의 미래를 꿈꾼다. 그는 엄마가 나오는 꿈만을 원하지만, 나는 언젠가 천국에서 할머니와 엄마를 만나게 할 거라는 원대한 꿈이 있으므로. 아마도 내 삶을 전부 쏟아 해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