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로부터

by 최열음

아빠와의 저녁이 꽤 익숙해졌다. 승우의 개강 이후로 둘이 보내는 저녁이 더 잦아졌다. 셋보다는 둘이 모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아빠와 승우, 아빠와 나… 둘다 높은 확률로 저녁 약속이 있다. 번갈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아빠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왜 항상 칼퇴를 하고 집에 오는지 의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12월 31일이나, 명절에도 딱히 데이트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골프 약속이 훨씬 많아 보이고… 아빠의 연애에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중년의 연애는 좀 다른 것 같다. 잘 붙어있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 잘 떨어져있기 위해 만나는 느낌이다.


아무튼 아빠는 저녁 약속이 잘 없고, 나는 요즘 돈이 없으므로 약속도 잡지 않는다. 우리의 저녁 풍경은 느리지만 분주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아빠는 주로 6-7시 사이에 퇴근을 한다. 사무실부터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러쉬 아워지만 별로 막히지 않는다. 도로의 흐름을 역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는 카페에서 궁둥이가 납작해질 때까지 뭐라도 쓰다가 털레털레 집으로 온다. 점심을 일찍 먹기 때문에 오후 5시부터 배가 고프다. 그러나 아빠와 밥을 먹으려면 7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혼자 먹을까, 5번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기다린다. 같이 먹을 수 있는데 혼자 먹으면 두고두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근래 배달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빠 돈을 자주 쓰는데, 집에서까지 배달 음식을 먹으면 커피를 사먹기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돈도 아낀다고 생각하며, 장을 봐오거나 주로 집에 있는 것들로 대충 음식을 차렸다. 데우거나 익히거나 굽거나 하는 식의 간편한 방법만으로 해결해 온 요즘이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시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카페 알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힘들다는 뜻이다… 평소 좋아하던 쌀국수 집에서 쌀국수와 볶음밥을 시켰다. 베트남 분들이 하시는 곳인데 저렴한 데다가 양도 무지하게 많았다. 두 음식의 조화가 좋아서 끝도 없이 들어가는 맛이었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먹을 수 있는 양을 조금 초과한 것 같았다. 평소라면 친구에게 산책을 하러 가자고 떼를 썼을지 모르지만,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양도 이미 초과되었으므로 조용히 집에 머물렀다. 아빠는 철물점에서 사온 부품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며칠째 말썽인 변기를 고치기 위함이었다.


나는 먼저 커피를 내렸다. 온 집에 커피 냄새가 진동했고, 아빠는 커피 향이 좋다고 말했지만 당장 먹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뜨거운 드립커피에 우유를 살짝 타먹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식기 전에 마시기로 했다. 커피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아빠는 변기에 매달렸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게 미안했으므로 화장실 앞을 기웃거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게 문제였으나 막힌 것은 분명 아니었으므로, 관리사무소에서 바꾸라고 한 부품을 교체할 계획이었다. 아빠에게 해본 적 있냐고 물었는데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가 손을 댈 때마다 변기에서 울컥이는 소리가 났다.


아빠는 변기 옆에 신문지를 깔고 무릎을 꿇어 변기 뒤편에 있는 나사를 풀고 조이고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 힘이 잘 닿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가 요청한대로 선풍기를 가져와 바람이 잘 닿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옮겼다. 가장 센 풍량이었지만 그럼에도 더웠는지, 땀에 젖은 웃옷을 당겨달라고 했다. 옷이 달라붙어서 잘 벗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끈적였으면 나한테 옷을 받아달라고 했나 싶어서 바로 옷을 빨래통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라고 한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벗은 것뿐이었다. 결국 변기는 제 수압을 찾았고 아빠는 정말 뿌듯해보였다. 몇 번이고 힘을 주어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런 말조차도 우리 사이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 무엇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정말 개고생을 했고, 결국엔 변기를 고쳐냈으며, 그것이 아빠의 책임이자 무게였던 것이다. 한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이 내게는 딱히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의 세대는 검증된 무엇만을 해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일단 덤비고 보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일단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개인 생활을 한다. 나는 주로 거실의 소파에서, 아빠는 안방의 안락의자에서. 나는 집에 있는 것에 취약하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 그것도 가만히 쉬는 일에 빈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쉬는 건 좋지만 갸륵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끝장나게 잘 쉬고 싶어졌다. 알바도 했고, 글도 웬만큼 썼으며, 맛있는 밥을 먹고 아빠는 변기를 고쳐냈기 때문이다. 집이 집일 수 있게 하려는 사람의 노력을 직관했으니 나 역시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래서 런닝맨을 조금 보다가 일어나서 차를 우리기로 했다. 집을 집일 수 있게 하는 나의 첫번째 스텝, 차 우리기.


사실 그것밖에 하지 않았으므로 마지막 스텝이기도 하다. 정확히 무언지 모를 차를 우렸다. 아주 큰 주전자에 찻잎을 대거 떨어뜨리고 팔팔 끓였다. 끓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찻잎을 얼마나 넣어야하는지 몰라서 두 주먹 정도 넣었더니 색이 과하게 진해졌다. 거의 보리차 같아졌는데 이래도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물을 조금 부어서 한번 더 끓인 뒤에 불을 껐다. 아빠에게 한 컵 따라주었는데, 밍밍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금 허무했으나 내게도 몇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일지 몰랐다. 먼저 먹어보고 아빠를 줄 걸 그랬나, 싶어서 얼음을 하나 띄운 차를 마셨다. 묘하게 호박과 곶감 맛이 났다.


차를 마시면서 런닝맨을 보는 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으므로, 읽고 있던 소설을 펼쳤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소설이었고, 한번 읽은 뒤 곱씹으면서 다시 읽는 중이었다. 곱씹는 데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한 탓인지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메모를 하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꼭 이런 소설을 쓰고 싶기 때문에 더디더라도 직선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심시선 씨는 이 시대의 할머니이자, 과거를 지나온 모던 걸이다. 시대를 앞선 행보로 ‘다수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집요한 미움’을 동시에 받은 사람이다. 억압 속에서도 더디지만 직선으로 걷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아주 그림자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폭력과 시기 속에서 잠시 빛을 거두고 살던 때도 있었다.


그런 시선으로부터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영향을 받는다. 아픔을 물려받기도, 낙천을 닮기도, 기백을 품기도 하며 시선을 기억한다. 돌이킬 수 없는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나 역시 <창호로부터>* 받은 영향을 가지고 산다. 조용히 인내하며, 참고, 견디고, 급발진하기도, 처음인 것을 해내기도 한다.


낯선 일을 낯설어하며 두려워하지만, 적응이 되고 나면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 아무래도 나의 아빠는 조용한 기개를 가진 자인 것 같다. 인내의 총량이 끝이 없다. 자신의 몫을 최소한이라도 꼭 해낸다. 막히더라도 막힘 없이 돈을 벌어왔다. 벌써 삶의 절반 이상을 그래왔다.


요즘은 매달 꾸준히 돈을 벌어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렇게 벌어온 돈을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나눠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내가 알기로 아빠는 스무 살부터 일했다. 대학은 퇴근 후 야간 시간을 활용했다. 그런 아빠의 배경을 알면서도, 거실에 누워 런닝맨을 보는 저녁이면 그의 눈을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 이유로 낮 시간 동안에는 더 열렬히 쓰려고 노력한다… 아빠가 보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 하지는 못하니까 그저 그가 믿어주기만을 바란다. 조용한 기개를 가진 그는, 내심 불안할 테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믿는 것 같다. 믿을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나올지 나는 모른다.


그의 불안과 신뢰를 동시에 받으며, 그의 돈으로 산 커피를 마신다. 세 입에 한번 정도 아빠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나를 먹이고 입히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한다. 스물 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무척이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바탕이 없이는 아마 한 자도 쓰지 못할 것이다. 손가락만을 놀려 아빠를 먹이고 입힐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것 역시 조용히 믿는 수밖에 없다.



*<시선으로부터>, 주인공 시선의 발화 인용.

*아빠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