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명절을 보냈다. 교회 사람들과, 남자친구와, 친구들과… 그리고 메가커피에서도. 알바를 시작하면서 삶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따지자면 공기의 흐름 같은 것이다.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고 봐도 좋겠다.
명절 당일은 금요일이었다. 내게는 명절인 금요일이든, 명절 아닌 금요일이든 비슷하기 때문에 풀 알바를 뛰기로 했다.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이었다. 어차피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으므로, 출근 날짜를 늘리는 것보단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시부터 5시까지 일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1분도 쉬지 못하고 8시간을 보냈다… 추석에 메가커피는 가족들의 성지가 되었다. 많은 가족들이 모이는 집은 제사상에 올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음료들을 포장해갔고, 그렇지 않은 집에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잔뜩 사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라 함은… 우선 커피는 아닌 것이었다. 커피는 아닌 모든 음료는 만들기 귀찮은 구석이 있다.
함께 일하는 친구는 17살이었다. 나와 7시간을 일하고 잠시 쉰 뒤에, 저녁에는 다른 메가커피로 일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 애의 체력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8시간 근무를 위해 종아리 압박스타킹까지 신고 온 참인데. 조용하면서도 신중하게 음료를 만드는 그 애를 보면서 침착한 기류가 흐르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내게는 없는 기류였다.
아무튼 아침부터 오후 내내 사람들이 미친 듯 몰려들었다. 주문이 어느 정도 잡혔다고 생각하다가도… 밀려드는 것들을 더이상 잡을 수 없게 되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료들을 턱턱 만들어내는 동안, 나의 정신머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갈려나갔다. 그런 와중에 갖가지 종류의 빵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금요일은 끝이 났고… 더는 정신 없지 않은 날들이 오갔다. 아빠의 생일을 맞아 샤브샤브를 먹은 날과, 교회 사람들과 게임을 하며 보낸 날들이 있었다. 전자는 조용하지만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고, 후자는 소란하지만 버겁지 않은 시간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는 추석이 반가웠다. 어제는 남자친구와 피식쇼를 보며 지냈다. 외국의 무엇인지 모를 토크쇼를 리메이크한 형태였는데, 그들의 격 없는 질문과 대화가 턱없이 웃겼다. 저항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애들이 좋아할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언젠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렵지만 기대가 된다고도 했던 것 같다. 그가 올린 웨딩 사진 같은 것들을 보면서, 정말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다. 그건 언어의 시각화였다. 어쩌면 사진은 형태를 지닌 언어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어느 재주 좋은 작가와 사진가가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소식에 조용히 기뻐했다.
그러나 당장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도 아닌 나는 무엇을 시각화할 수 있을까. 허울 뿐이지 않은 말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아는 분에게 돈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 짧지 않은 글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확실한 사람인 그는, 조금 더 확실한 글을 써달라고 말했다.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일 뿐더러, 피드백을 받고 글을 고쳐야만 하는 일도 처음이었으므로 무척이나 막막했다.
난 이미 확실한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준 사람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무엇이든 더 확실해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문단의 순서도 바꿔 보고, 새로운 문단도 추가했다. 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과정이 꽤 고단했다. 자의로, 그리고 무료로 쓸 때는 몰랐던 것이었다. 혼자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글은 그리 고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받고 쓰는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다. 이런 때 머리를 싸매다가도,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카페에 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놀리며 돈을 버는 일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입을 놀릴 수도 있다. 많은 전업 작가들이 강연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미래가 올지, 온다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오게 된다면 반갑고 두려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확실한 글을, 확실한 마음으로 쓰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글은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을 테니까. 글을 판 돈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이왕 올 거라면 어서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벌써 10월이다. 크리스마스가 2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캐롤을 듣기 시작하면 정말 올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이미 캐롤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으므로… 캐롤을 한참 유예하고 싶다. 어차피 듣고 싶지 않아도 거리에서 흘러나올 것이다. 아마 메가커피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먼저 듣게 될 것이다. 마지막을 보내야 다시 처음이 온다. 둘 중 무엇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써야 할 것이다.
202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