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진짜다. 손수 밥 해먹고, 잠 제때 자고, 이불 잘 개켜놓고 깔끔하게 옷 입고 나가는 사람들. 이 모든 걸 매일 착실하게 해내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큰 실패는 없을 듯하다. 나는 여전히 매일 잔잔바리로 실패하며 산다.
본가에 살 때는 요리를 종종 했다. 배달 음식에 지친 나와 가족들을 위해, 혹은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 가끔은 그냥 음식을 만들고 싶을 때도 있었다. 주로 내가 다뤘던 건 물코기보단 고기. 그걸 뭉근하게 끓여낸 찌개나 볶음이나 탕 같은 것들을 주로 만들었다. 내가 한식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같이 먹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취방으로 넘어오면서 알게 된 건 한식은 뒤처리가 힘들다는 것이다. 뒤처리가 몬데용? <- 본가에선 어떤 요리를 하든 수습은 아빠의 몫이었다. 그것이 우리집 식탁에서 아빠가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동생은 집에나 있으면 다행이고, 없을 땐 밖에서라도 알아서 잘 챙겨먹으면 땡큐고. 혼자만의 방에선 남은 음식이나 쓰레기를 부지런히 처리해야 할 뿐더러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한다. 집을 꾸리는 건 역시 정성스럽게 성가신 일이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 친구들이 혼자 해먹는 요리들을 보면 대체로 파스타, 샌드위치, 볶음밥, 덮밥 같은 비교적 간편한 음식들이었다. 1차적으로 나는 그런 음식에 큰 애정이 없으니 자취방에서도 닭볶음탕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같은 것들을 불나게 해먹을 줄 알았는데 3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음식은 잘 시켜먹지도 않는다. 우선 식재료도 없고... 장을 보더라도 매주 집을 비우다 보니, 주말이 오기 전이면 부리나케 남은 재료를 처리해야 한다.
처리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먹거나, 버리거나, 냉동실 행이다. 지금도 냉동실에는 남은 밥, 시켜먹고 남은 김치찜, 도넛, 남은 치킨 등등이 있다. 물론 협소한 냉동실이라 모두 소분된 상태로... 차갑다 못해 굳어버린 음식들을 언젠간 구출해낼 거라고 믿는다. 부지런히 시켜먹고 포장해먹고 데워먹다 보면 몸에 살이 술술 붙는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두세 번 나를 굴려주던 필라테스도 못해서 문제다. 수술 후 나름의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정을 취하는 게 잘 먹고 쉬는 거라면 누구보다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혼자" "처음"이라는 단어에 끌린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혼자 먹을 치킨을 시켰다. 곧 수술한다고 친구가 보내준 네네치킨인데 한마리가 이렇게 양이 많은 줄 몰랐다. 이틀에 걸쳐서 나눠 먹고, 남은 후라이드를 잘게 잘라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꺼내 간장에 졸여 치킨 덮밥이라도 해 먹을 생각이다. 나만을 위해 시킨 치킨은 처음이라 좀 설렜다. 치킨은 동생의 주종목인 치킨을 본가에서 먹으면 셋이 한 마리도 조금 부족하다. 게다가 치킨 다리를 좋아하는 아빠, 그냥 많이 먹는 동생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금방 배가 부르기도 하지만 아무튼 같이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치킨 박스를 버리러 가는 길에 바람을 맞으며 문득 생각했다.
점점 혼자인 게 익숙해지는데 언젠가는 또 혼자인 게 익숙해서 싫어질까?
아직은 모르겠다. 사무실에서도 대표님 없이 혼자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혼자이면 인생이 조금 밋밋하긴 하다. 가끔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으며 보며 쉬는 게 고요해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괜찮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혼자인 순간이 많은 요즘에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아주 완전히 혼자라고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연결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가족들,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 딱 붙어 있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떨어진 채로 우정과 신뢰를 유지하는 일. 그들과 매일 밥을 같이 먹을 수는 없더라도 각자 무얼 먹었는지 얘기하며 시시덕거리는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요즘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그분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다행이라고 믿으며 살 것이다.
오늘도 본가에 내려가기 위해 집을 잘 비워두고 나왔다. 내가 없는 동안 여전히 냉장고는 10분에 한번씩 진동하며 웅웅거릴 테고, 이불은 조금 구겨져있으며, 체취와 머리카락이 곳곳에 묻어있을 테다. 그 사이를 다시 비집고 들어갈 때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변한 나일 것이다. 혼자 치킨을 시켜 먹고 프렌즈를 보며 청소를 하는 나를 누구도 말리지 않고, 찾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