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동생이 돈까스를 먹고 있다. 내게도 밥은 먹었는지 묻는다.
- 아니, 아직. 오늘 출근했어.
나는 이미 묘하게 열이 받아 있다. 식탁을 흘깃 보니 남은 밥이 없다. 왜 내 몫은 없는지 생각하다가 문득 몇 시간 전에 저녁은 집에 와서 먹냐는 카톡을 받은 기억이 난다. 답장을 뭐라고 했더라... 동생에게 내껀 없냐고 물었더니 밥을 먹고 온다고 하지 않았냐는 물음이 돌아온다. 그 질문엔 답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내려오는데 저녁 계획은 없었다. 집에서 대충 먹을 거라고 답했어야 하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답장을 잘못한 것이다.
- 나 서울이얌
애초에 입맛도 없었지만 쟤가 돈까스를 먹고 있는 걸 보니 괜히 샘이 난다. 돈까스를 거의 비워가는 동생을 쳐다보지 않고 베란다로 나가 컵라면을 하나 뜯는다. 이미 손끝과 발끝엔 잔뜩 심술이 나 있다. 자취방에서 먹는 라면은 특별한 느낌인데 본가에서 먹는 라면은 너무나도 대체품같다. 아이러니한 건 본가에서 라면을 훨씬 자주 먹는다는 것이다. 내 자취방엔 먹을 게 아주 많다. 나만 먹어서 빨리 줄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라면을 기다리고 있는데 동생이 오늘 복권에 대해 말한다. 얘는 왜 자꾸 복권을 사는 거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한다.
-...응
이게 오늘의 최선이다. 얘 말의 요지는 복권 결과를 라이브로 보는데 자기가 첫 자리 빼고 연속으로 세 개 숫자를 맞췄다는 거다.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리가 아팠다는데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대로 답한다. 그게 됐어야 한다면서 아쉬워하는 걔 목소리와 함께 만약 당첨이 됐다고 해도 지금처럼 바로 말했을까, 하는 불신이 아주 잠깐 피어오른다. 돈까스를 먹기 전에 얼마나 가슴이 벌렁댔을까. 그 현장에 있었다면 나도 함께 소리를 질러댔으려나. 호들갑은 내 전문이지만 집에서만은 그렇지 않은 게 기묘하다.
라면을 먹고 좀 쉬고 있는데 이번엔 아빠가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잘 다녀왔냐고 묻고, 샤인머스켓을 먹으라고 하고, 저녁을 먹었는지 묻는다. 물음과 제안과 물음 사이에서 나는 급격히 피곤해진다. 오늘은 정말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곤히 누워있고 싶다. 머지않아 몸을 일으켜 글도 정리하고 브런치 프로젝트도 제출해야 한다. 그 에너지를 남겨두기 위해 샤인머스켓을 이미 몇 알 주워먹었다고 말하려다 만다. 어차피 아빠도 대충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버린다.
겨우겨우 일어나 글을 정리하는데 자꾸 한숨이 나온다. 자취방에선 나오지 않는 파장이다. 왜일까. 진짜 피곤한 걸까, 아니면 이 관심이 싫지 않아서 더 받고 싶은 걸까. 숨을 뱉는 정도의 한숨이 아니라 허억- 소리가 날 만큼 크다. 그러고 보니 물 마시러 나온 동생도 몇 번이고 그만한 한숨을 쉬었다. 자칫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볼 뻔했다. 거실과 안방 사이를 오가는 아빠도 그랬다. 그는 조금 더 땅을 향해 숨을 내쉰다. 서로의 한숨이 당연한 배경음악같아서 아무도 묻질 않은 것이다. 이 한숨 가족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앞으로도 영영 서로의 고단함을 전부 알지는 못하겠지만, 내 것만은 짐작해주길 바라는 소박한 이기심일지 모른다. 그래서 '무슨 일 있어?' 물어보면 별일 아니라는 듯 흘리고 지나갈 테지만 그럼에도 깊은 숨을 내쉬는 것이다. 아무리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날이라도 서로를 성가시게 할 사람들이 있음에 한편으로는 깊이 감사하면서. 눈에 보이면 마음에도 기필코 남는다. 사랑 받고 싶으면 알짱대야 한다. 매번 이 사람들을 성가셔하면서도 거실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이유도 그래서일까. 어쩌면 진짜 금쪽이는 나인 듯 싶다.
아무리 한숨을 푹푹 내쉬든, 저녁을 안 먹고 오든, 샤인머스켓이 없는 방에 있을 때는 힘주어 말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힘을 낼 필요도 없다. 그저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머물기만 하면 된다. 본가 생활자인 나는 자꾸만 변명을 한다. 서울에서 무얼 하고 왔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변명은 성가신 일이지만 덕분에 잠시 나에게 거리를 둔다. 평일엔 자취방에서 말을 잃고 주말엔 본가에서 수다스러워져야 하는 이 균형이 꼭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빠가 쿠팡에서 시킨 수세미 20개가 문앞에 있다. 며칠간 아무도 포장을 뜯지 않았다가 방금 전 동생에 의해 개봉되었다. 마침 수세미가 필요한 차였는데 서너 개 훔쳐갈 생각을 한다. 그와 함께 부드러운 겨울 잠옷과 고구마도 몇개 가져갈 계획을 세운다. 이 집과 저 집은 끊임없이 비워지고 채워지고를 반복하는데 나는 무엇을 옮겨가며 두 집 생활을 하고 있을까. 어떤 정신과 무슨 체력으로 두 집을 건너다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두 집 생활을 하는 동안 벌써 스물 여섯의 해가 저물고 있다. 조금 더 위태롭지 않게, 싹싹하고 유연하게 회사와 집 1, 교회와 집 2를 오갈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한 오늘의 내가 있길 바랄 뿐이다. 그거면 너무너무 피곤한 토요일 밤이라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