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5층 화장실 두 번째 칸은 제자립니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첫 수능의 실패와 인턴 시절을 꼽겠다.
스스로의 자존감이 가장 낮아져 있던 시절.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던 시절.
인턴 시절, 내 고정석은 병원 5층 여자화장실, 두 번째 칸이었다.
아, 오해는 마시라. 결코 괴롭힘을 당하거나 혼자 밥을 먹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가장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이 그곳이었다는 얘기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의 나쁜 점은, 울고 싶을 때 마주치면 안 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직원들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다. 언제 어디서 맞닥뜨릴지 모르는 환자도 피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프로는 신뢰가 떨어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아지트는 완벽한 위치 선정을 자랑했는데, 하루 일과가 종료되는 6시가 지나면 직원들의 발길이 끊겼고, 그런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환자들은 꺼렸다. 눈가가 뜨끈해질 때면 가빠지는 숨을 꾹꾹 눌러 담았다가 아지트에 가서야 뱉어냈다.
난 내가 생각해도 참 서럽게 잘 울었다. 조용히 눈물 흘리기보다는 꺽꺽, 소리 내며 요란하게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한바탕 비워낸 후 세수 한 번이면 누구도 나의 그늘을 눈치채지 못했다.
(직장에서 울 때는 절대 눈을 강하게 비비지 않길 바란다. 운 거 다 들킨다.)
3년이나 지난 지금 그때를 다시 떠올려보면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정확한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지만 넘치는 의욕에 반비례하는 능력치 탓이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생각해 본다. 환자가 드시는 약은 확인했는데 언제부터 드시기 시작했는지 여쭤보는 걸 깜빡하거나, 해야 하는 이학적 검사* 하나를 빠뜨린다든가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마다 울지는 않았다. 늘 1개 빠뜨리다가 2개 빠뜨렸을 때 좀 속상했고, 나름대로 판단해서 잘 대응했다고 뿌듯해하다가 욕먹었을 때 좀 억울해서 울었다. 성심성의껏 울다가도 콜이 울리면 세수 한번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업무에 복귀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씩씩하고 강인하다고 칭찬했다.
점점 짜낼 눈물이 바닥을 보이고, 아지트를 찾는 횟수도 줄어들 때쯤 1년이 지났다.
인턴이 끝났다.
(**저자 주 : 기계를 별도로 사용하지 않고 수기로 환자 상태 확인을 위해 진행하는 검사, 예상되는 질병마다 진행해야 하는 이학적 검사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