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요리학교 CIA에 가다.
요리 학교들 중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Hands on 수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CIA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1300시간을 실제 주방에서 보낸다고 되어 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수업 전 학생들이 쓸 재료 한 카트를 식재료 창고에서 받아와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지도 셰프님에게 피드백을 들었다. 내가 학교를 알아볼 당시 CIA만큼 실전 경험을 중시하는 학교는 없었다. CIA는 재료를 아끼지 않았는데, 생선 수업(Fish Class)에서는 학생 한 명이 연어 한 마리를 통으로 손질했고 (다양한 생선을 손질했는데 늘 1인 1 생선이었다.) 고기 수업(Meat Class)에서도 내가 갈비 한 짝을 손질했다.
굴, 캐비어를 다루는 수업에서는 미국 전역에서 나는 다양한 굴과 캐비어 종류를 직접 눈으로 보고 먹어볼 수 있었다. 와인 수업에서는 매 수업마다 6가지 이상의 다양한 와인을 직접 테이스팅 하고 공부했다. (맛을 보고 뱉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시지만 목구멍으로 넘기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도 교수님이 하는 것을 옆에서 마냥 지켜보거나 책으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내 요리학교 생활은 그리 신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만드는 시간들,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다양한 수업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많은 수업을 들어왔지만 수업 시간이 기대되고 설렌 적은 없었다. CIA에서 수업을 들어갈 때의 내 발걸음은 뭐랄까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같은 느낌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들었던 수업들 중 가장 재미있었고 나는 요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흡수해 버리겠다는 마음이었기에 눈이 절로 초롱초롱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각 수업마다 많은 양의 공부와 숙제가 있었기에 기숙사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 바빴다. CIA에서는 매일매일이 요리의 실전과 공부로 가득 찼다. 하루하루가 요리의 모든 것이었다.
학생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기초부터 수업한다는 점도 큰 어필이 되었다. 제일 처음으로 들은 수업이 Fundamental (한국어로 직역하면 '기본적인') 수업이었는데 다양한 사이즈와 모양으로 식재료를 자르는 칼질부터 가르쳤다. 그 수업의 시작은 항상 칼질이었다. 매번 수업이 시작되면 감자, 당근, 양파, 셀러리를 요구하는 사이즈에 맞게 칼질하여 셰프님께 보여드리고 평가와 점수를 받았다. 단지 요리를 좋아라만 했던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 딱 필요했던 수업이었다. 그리고 매 수업마다 셰프님들이 강조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주변 정리'였다. 나의 첫 번째 셰프님은 '네가 일한 자리에서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라'라고 하셨다. 이런 기본적인 자세들을 주방에서 일을 하며 배워서인지 학교를 졸업하고 실제 업장에서 일을 할 때 '아 역시 CIA출신이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한번 몸에 배어버린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 배울 때 제대로 된 기초와 습관을 익히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CIA에는 실제 외부 손님들이 와서 식사를 하는, 그야말로 영업 중인 레스토랑이 네 개 정도 있었다. 그곳들을 돌아가며 일을 하는 것도 수업 과정의 일부였다. 수업은 주방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홀에서 서비스를 하는 서버로서 알아야 하는 것들도 배웠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홀에서 잘못된 서비스를 하면 전체 경험을 망칠 수 있고, 홀에서의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음식이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서로의 일을 알고 이해할 때 셰프는 서버를 이해하고 서버는 주방 안의 셰프들을 존중할 수 있기에 레스토랑 안팎의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해 보게 한 것 같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졸업생들은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원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경험을 쌓아 자신의 레스토랑을 가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실제 가게를 차린다는 가정하에 메뉴를 짜고 어떻게 마케팅을 할 것이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수업도 있고, 메뉴의 가격을 정할 때는 어림짐작이 아닌 실제 비용을 정확히 따져 정해야 함을 배우기도 했다.
기억이 흐릿해진 지금 다시 생각해도 CIA 요리학교에서의 생활과 수업은 훗날 내가 사회에 나아가 실제 업장에서 근무하고 지금 내 가게를 운영하기까지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몇 장 없는 학교 생활 당시의 사진들을 보며 생각해 본다. 나에게 많은 배움을 주었던 지도 셰프님들, 같이 수업을 들었던 다양한 국적의 동기들, 돌연 요리하겠다고 떠난 나를 지지해 주고 뒷바라지해 준 부모님, 그리고 요리를 해보겠다고 당차게 떠난 20대 중반의 용감한 나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