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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으로 돌아오다.

이제는 '준비'보다는 '용기'

by 행복한 요리사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취를 하였으니 한국으로 돌아왔을 당시 10년이 넘게 홀로 살았던 셈이다. 그렇게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으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좋으면서도 조금 어색했다. 부모님에게 얹혀살면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스스로를 현실로 내몰아야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나의 목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선택한 '요리'로 한국에서 내 밥벌이를 하는 것! 7년 가까이 요리를 하고 한국에 왔음에도 당장 뭘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조리과 졸업하시는 많은 분들이 택하는 큰 호텔의 조리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당장 내 가게를 하기는 뭔가 석연치 않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도 꿈은 있었다. 나는 제대로 된 요리를 내는 브런치 레스토랑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일환의 하나로 직접 만든 빵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기초 제빵책 한 권을 사서 부모님 댁에 있던 몇 달 동안 그 책에 있던 모든 빵을 손반죽으로 만들어보고 연습했다. 과정과 결과물 사진을 찍어 한 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 포트폴리오를 들고 향한 곳은 제주도였다. 구인 공고는 없었지만 포트폴리오,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들고 A빵집에 갔다. 베이커리 현장 경험이 없었기에 포트폴리오가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지만 티오(빈자리)가 없어서 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손 놓고 시간만 보낼 수는 없어서 B빵집을 찾아갔다. 빵이 너무 맛있었고 A빵집은 근무하시는 분이 4명 정도 있었지만 B빵집은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는 곳이라 내가 열심히만 하면 오히려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은 많았지만 잘하려고 노력도 했고 욕심도 내다보니 한두 달이 지났을 때는 그 빵집의 반죽은 내가 도맡아 만들 수 있었다. 두 빵집 중 구인 공고를 낸 곳은 하나도 없었다. 해외에서도 사람을 구하는 곳에 찾아가 이력서를 내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이 어딘지가 더 중요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 얼굴을 비추었다. 빈자리가 없어서 기회를 잡지 못한 때도 물론 있지만 직접 해맑은 미소를 띠며 이력서를 내미는 나의 용기와 절실함에 사람을 고용할까 말까 고민하던 셰프들과 사장님이 선뜻 자리를 만들어 줄 때도 있었다. 여전히 나는 기회는 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빵집에서 근무했다. 최저시급도 받지 못했지만 그때도 그 이전에도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손님이 거의 없던 곳이어서 할 일을 다 해둔 후에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틈틈이 요리책과 창업 관련책을 많이 읽었고 관심 있는 매장에 가서 먹어보기도 했다. 메뉴 개발을 하며 훗날 내 가게에 어떤 콘셉트로 어떤 음식을 올릴지 구상도 했다. 하지만 내 가게를 하겠다는 용기는 선뜻 나지 않았고 '아직 좀 더 배워야 하지 않나? 망하면 어쩌지?'같은 두려움이 더 컸다.

당시 CIA를 함께 다닌 오빠가 제주도에서 생면 파스타 가게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빠와 술 한잔을 나누다가 오빠가 말했다.

"너는 왜 가게 안 해?" "음.. 아직 부족한 것 같아.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그럼 도대체 언제 준비가 되는데?" "음....."

"내가 볼 때 너는 준비됐어. 그만큼 공부하고 일하고 경험 쌓았으면 됐지 뭘 더 어떻게 준비해.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거랑 자기 가게를 하며 배우는 건 천지차이야."

나는 그 대화를 나눈 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쩌면 이제 나한테 필요한 건 '준비'가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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