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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14. 2022

정동진, 남자는 해결을 여자는 공감을 원한다!

공감이 필요해!


정동진


안개도 제법 끼고, 비 마저 촉촉이 내리는 영동고속도로. 앞 차와 승우가 몰고 있는 차,  두 대 만이 쓸쓸하게 대관령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앞 차는 안개 때문인지 천천히 갑니다. 승우도 일부러 추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날엔 그냥 조금 늦더라도 앞차 불빛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한 걸 알기 때문이지요.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라 도로가 한산합니다. 가끔 천천히 달리는 그 둘의 차를 추월하며, 무섭게 달려가는 자동차만이 정적을 깰 뿐입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준비하여 떠나온 길입니다. 언제부턴가 승우 가족은 일요일 아침에 길을 떠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남들과 좀 다른 시간에 움직이면 차량정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항상 그의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체로, 일요일 아침에 출발하면 여유롭게 고속도로를 달려 편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고속도로의 한산함을 느끼며 점심때가 조금 지나 정동진에 도착했습니다. 


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정동진은 상업화에 밀려 이젠 옛날보다 못하다고 말이죠. 맞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는 정동진을 좋아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기찻길과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모습은 너무 낭만적입니다. 바닷가에 서서 가끔 들어오는 기차를 보며 손 한번 흔들어 주고, 파도에 발도 적셔보고, 기차가 들어오면 다시 손 흔들어 인사하고, 그렇게 모래사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행복하지요.


횡성휴게소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들도 아까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앞차들이 비상들을 깜빡이며 속도를 줄입니다. 


생각에 빠졌던 그도 긴장하며 비상등을 켭니다. 사고가 났었나 봅니다. 견인차 3~4대와 사고 차량이 보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다친 것 같지 않습니다. 조심해야 하는데 아마 빗길에 미끄러진 것 같습니다. 아까보다 속도를 더 줄여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빠집니다. 


역사에 서면, 이번에 들어오는 기차 타고 멀리 떠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생각이겠죠?


정동진에서 2시간 정도 놀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집니다. 날도 어두워지고요. 승우네는 서둘러 차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부부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요즘 힘들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전업주부로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꾸 신경질이 난다고 심경 고백을 합니다. 


아들도 자기 여자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고, 남편은 회사 옮기는 일로 정신없어하고, 자신만 아무 일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는 자기 아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습니다. 


강천터널-여주 부근 차량 증가, 정체



표지판에 차량 정체를 알리는 글이 올라옵니다. 지금 시간이 새벽 1시가 다 돼가는데 설마, 아직 까지 정체라니 믿을 수 없습니다. 


‘저거 고장 인가 봐! 이 시간에 설마....’ 그러나 그의 예상을 깨고 차들이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 정체라니? 갓길엔 차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운전자들이 한 숨 자고 갈려나 봅니다. 


그의 아내는 저녁에 먹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정동진 근처 횟집에서 가볍게 한 잔 했지요. 그는 맹물을 소주 잔에 따라 기분만 맞춰주고요. 


앞 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여주 부근에서 조금 정체되니 그 뒤론 흐름이 좋아졌습니다. 집에 가면 새벽 2시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생각해서 조금 더 천천히 달립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내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바닷가라서, 그들 부부가 좋아하는 정동진 바다여서,  이런 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역시, 길 떠나오길 잘했다고. 당장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 고민을 알고 공감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게를 두지만,  여자는 공감해주는데 더 무게를 둬! 당신이 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감만 해줘도 충분해!" 


승우는 아내 말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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