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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16. 2022

소양강댐, 술잔에 쓰고 지워버린 이름

사내아이 둘과 계집아이 셋이 승용차 한 대로 춘천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에 나온 그들은, 일주일도 안돼서 또 만났습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 마치고 시간 되는 친구만 모이니 다섯 명. 


동아리 친구였던 그들이 다 모이면 사내 다섯에 여자 넷,  총 아홉 명이었지요. 여자들은 사내들보다 먼저 사회에 나와 자리를 잡았고, 군대에 다녀와 2, 3년 늦게 졸업한 남자들까지 사회에 나오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임. 퇴근 후 시간만 되면 만났습니다. 


저녁을 먹고, 누군가 춘천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때 안 가면 평생 못 갈 것 같은 맘에 밤길을 달려 춘천 소양강댐에 갔습니다. 


"우리 항상 이렇게,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누군가 물음에 나머지 4명 친구들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시엔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평생,  서로를 볼 수 있을 줄 알았겠죠. 하지만, 결혼하는 친구가 생기고부터 모임 인원은 점점 줄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이젠, 두 번의 큰 명절과 새해 첫날,  카톡으로 인사하는 정도가 돼버렸죠. 


성현과 정섭은 그래도 꾸준히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춘가도를 달리며 옛일을 추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정말 자주 만났다. 동아리방에서 모이듯 그렇게 모였지!"

"그래. 그게 다 네 자취방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완전 우리 아지트였잖아!"

"주인아저씨께 맨날 혼났지, 시끄럽다고." 


둘은 소양강댐 정상까지 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중간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정상에서 선착장 쪽으로 더 들어가면 큰 주차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정섭은 거침없이 차를 몰았습니다. 전날, 장례식장에서 밤새고, 새벽에 출발한 탓에 이곳 주차장은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지요. 



정섭과 성현이 춘천에 온 까닭은 그 당시 친구 중 한 명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였습니다. 이제 그 당시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경조사뿐이라니요!


"우리, 댐에 가보자!"


둘은 이곳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낮 술 마시던 추억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습니다. 


"우린 그때 무슨 고민을 갖고 여기 왔었지? 술잔에 막걸리 가득 따르고, 그 위에 손가락으로 각자 고민을 적었어. 그리고 입에 털어 넣으며 고민을 지우려던 기억은 나는데, 너무 오래돼서 잊었다." 

"그때 우리 고민은 사랑 아니었나? 이뤄지지 못할 각자의 첫사랑? 아마 맞을 거야.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랑이야기" 

"아! 맞다. 나는 내 잔에 그녀 이름을 적었었지! 기억난다."


이제는 가슴속 깊이 들여다봐야, 간신히 한편에 보일 듯 말 듯 남아 있는 첫사랑의 흔적. 아마도 그들은 술잔과 함께 잘 잊었나 봅니다. 아니, 잘 감췼나 봅니다.


길을 걷던 정섭이 걸음을 잠시 멈춥니다. 그리고 강물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쉽니다. 이젠 옛날처럼 사랑 따위가 고민이 아니고 사는 게, 현실이 고민이지요. 하루하루 삶과 바로 내일이 걱정입니다.


"성현아! 그 옛날, 사랑이 삶에서 가장 큰 고민 일 때가 그립다."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둘은 마주 보면 실없이 웃어 버렸습니다. 정말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민이었던 그 당시가 그립군요.


댐 정상길


개방된 댐 정상길을 걸어봅니다. 길 끝에는 팔각정이 있다고 하네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겨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성현이 정섭에게 묻습니다.


"정섭아! 너는 술잔에 누굴 적었냐?"  


성현의 물음에 정섭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 궁금하냐?"


정섭은 웃으며 끝내 답을 안 했습니다. 아니 못했을지도요. 술잔에 적었던 이름은, 성현에게는 첫사랑, 정섭에게는 짝사랑인, 같은 이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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