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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17. 2022

용주사, 효심을 일깨우는 절

"지훈아! 너 내일 용주사 간다며? 단톡방에 올린 거 봤어!  나랑 같이 가자!"

"그래?  그러지 뭐!  나도 혼자 가기 심심했는데, 잘됐네. 그럼 절에서 만날까?"

"아니.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나 태우고 가라!"

"뭐래? 귀찮아. 그냥 너 차 가져와!"

"나, 얼마 전에 차 사고 났거든. 좋은 말 할 때 와라!"


대학 동창인 희진이와 지훈이는 졸업을 하고도 꾸준히 연락해온 절친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톡으로 안부 묻고, 일상적인 얘기만 나누지만, 둘은 깊은 속 얘기까지 거리낌 없이 하는 사이죠. 친한 만큼, 말은 '땍땍' 거리지만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훈이 그녀를 태우고 융건릉을 지나, 정조가 효심으로 지은 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길은 곧 좁아지며, 도로 옆 가로수에서 낙엽이 비처럼 떨어집니다.


'아! 벌써 가을이 지고 있구나!'


차창에 부딪혀 떨어진 낙엽들이, 자동차 바퀴가 구를 때마다, 요동치며 하늘 위로 한껏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되풀이합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둘은 용주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순간 지훈은 자신의 무심함이 느껴졌어요. 학교 오갈 때 얼마나 봐왔던 곳인였던가요?


둘이 다니던 학교가 바로 곁에 있어서,  버스 타고 다니며 보던 이곳을, 졸업한 지 10여 년이 지난 이제야 오게 되다니, 왜 그때는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참, 근데, 넌 왜 사고가 났냐?"

"일찍도 물어본다. 정말!"


지훈의 물음에 희진은 한숨을 내쉬며 얘기를 했습니다.


엄마를 모신 납골당에 가던 중, 잠깐 졸음운전을 했다고, 너무 피곤해서 그랬다고, 근데 왜 굳이 갔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엄마가 지켜주셨는지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말이죠. 지훈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용주사


용주사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사천왕문,  이곳은 일주문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사천왕문이 일주문을 대신하여, 세상과 부처의 세계를 가름할 따름입니다. 둘은 차에서 내려 사천왕문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건립되어 고려시대에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는 갈양사 터였다고 합니다.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 화산으로 옮긴 다음 해인 정조 14년, 능을 수호하고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금의 용주사가 건립되었답니다.


조선불교 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처음에는 불법을 탄압하고자 하였으나, 우연히 장흥 보림사의 보경이라는 승려를 만나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모의 은혜를 열 가지로 설명하지요, 그 첫째가 아기를 배어서 수호해 주신 은혜, 둘째는 해산에 임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셋째는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또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시는 은혜가 네 번째요,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시는 은혜는 다섯 번째지요. 젖을 먹여서 기르시는 것이 그 여섯 번째이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어 주시는 것은 일곱 번째 은혜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먼 길을 떠났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를 말하고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히 짓는 것이 아홉 번째 은혜,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가 열 번째입니다."


이에 감동받은 정조는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했으며, 보경으로 하여금 용주사를 창건토록 하였고, ‘은중경’ 판목을 새겨 용주사에 소장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삼문


매표소를 통과하면, 양옆으로 도열한 입석들과 홍살문, 그리고 삼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보통의 사찰과는 전혀 다릅니다.  절에 홍살문이 지어진 이유는 정조대왕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건립하여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나 때문에 원래 명보다 일찍 돌아가셨잖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


희진이는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렸을 때, 자기가 사는 집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수술 중 돌아가시고 말았죠. 그녀 가족들은 수술을 왜 해서, 더 일찍 어머니를 보내드렸냐며, 오히려 그녀에게 험한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 가족이 원망스럽지만,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죠. 다 자기가 망친 거라고 자책만 할 뿐.


희진은 용주사에 오면 항상, 부모은중경탑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그곳에서 편안하시라고, 정성을 다해 비는 것이겠죠.


"엄마도 네 맘을 아실 거야!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책하는 널,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텐데, 맘이 얼마나 아프시겠니!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해라!"

"나, 그래도 될까?"

"그럼. 그 상황이라면 나도 그랬을 거야."


울음을 삼키며 탑을 바라보고 있는 희진을 바라보다 지훈은 '대부모은중경'의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부처의 말씀이지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길을 가시다가, 한 무더기의 마른 뼈를 보시고 온몸을 땅에 던져 절하였다. 그러자 아난과 대중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한 무더기의 마른 뼈는 혹시 나의 전생의 할아버지이거나 부모일 것이기에 절을 하였다.”


부처가 또 아난에게 이르길, “만약 뼈가 희고 무거우면 남자의 뼈이고, 검고 가벼우면 여자의 뼈이다. 남자는 살아생전 절에 가서 법문도 듣고, 경도 읽고, 삼보전에 예배도 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했을 것이니 그 뼈가 희고 무거울 것이고, 여자는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데 한번 아이를 낳을 때마다 서말 서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했으므로 그 뼈가 검고 가벼울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갖고 열 달 동안은 일어나고 앉는 것이 무거운 짐을 진 것과 같이 불편하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돼 꼭 병든 자와 같다. 또 달이 차서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은 말할 수 없으며, 잘못해서 죽게 될까 두려워하며, 짐승을 잡은 듯 피가 바닥에 넘치도록 흐른다.


이런 고통 속에 자식을 낳은 뒤에도 쓴 것을 삼키시고, 단 것은 뱉어 아이를 먹이시고 품 안에 안고 기른다. 아이로 인해 더러워진 것을 빨아도 싫어하거나 수고로 여기지 않고, 마른자리에 자식을 눕히고 당신은 젖은 자리에 눕는다. 자식이 병이 나면 함께 병이 나고, 자식이 나으면 함께 병이 낫는다. 이와 같이 키워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지훈은 희진에게 부처님 말씀을, 우리들 부모가 이렇다는 것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맘이 이럴진대,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이 고통 속에서 산다면, 죽어서도 결코, 맘이 편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 지훈아! 네 말이 맞다. 내가 나를 자책하고, 스스로 망가지는 걸, 엄마도 바라진 않으실 거야!"

"그럼, 당연하지!"


눈물을 훔치며, 희진은 엄마를 위해 치성을 드렸습니다. 부디 후생에 다시 만나자고, 좀 더 오래 같이 살자고 부처님께 빌었습니다.  지훈도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집으로 가겠다고,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얘기했습니다.


대웅보전


효심으로 지은 절, 용주사. 이곳에 오면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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