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시안은

홀로 떠난 20일간의 중국여행 #3

by 물미역

시안(XI' AN).

옛날에 장안이라고 불리던 도시. 진시황과 유방이 관중 지방을 근거로 천하를 얻었던 곳, 그 후 당나라가 번성기를 구가했던 중국 고대사의 핵심적인 지역. 그랬기에 서울이나 수도를 가리키는 대명사인 '장안'도 이 장안에서 따왔고, '장안의 화제가 되다'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나무위키 참조).

하지만 비 오는 날, 이방인의 입장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본 시안의 첫인상은 책을 통해서나 상상 속으로 그려보곤 하던 장안과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감히 한국, 특히나 부산에서는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기가 질리도록 폭이 넓은 보도와 그에 걸맞은 차로 뒤엉킨 차도,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 표정만큼이나 무뚝뚝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외출복을 걸치고선 촌티를 안 내려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듯이 어색해 보이는 고층빌딩들. 전체적으로 본 첫인상은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한 얼굴에 빗물이 떨어지고 있는 표정이고, 더 많은 비를 맞고 난 후의 얼굴이 쉽게 예상될듯한 그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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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지하철 북대가 역에서 종루 역에 이르는 인도인데 그 폭이 엄청나다. 종루에서 남쪽으로 보면 시안 성벽의 남문인 영녕문이 보인다.



시안의 랜드마크로 누구나 1순위로 꼽는 종루와 고루를 가려면 내가 묵는 호텔에서는 지하철 1구간 정도의 거리라 비가 오지만 거리 구경도 할 겸 걷기로 합니다. 마침 준비해 간 우산이 있어서 비는 피할 수 있지만 사진을 찍기는 많이 불편합니다.

폭이 최소한 왕복 6차선 정도 되는 보도는 넓을 뿐만 아니라 예상외로 깨끗합니다. 그건 아마도 현대적 도시로의 탈바꿈이 이뤄진 지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새삼 땅이 넓은 나라에 온 게 실감이 나고 쭉 뻗은 길을 걷다 보니 가슴도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종루는 1,384년에 건립된 높이 38m의 목조건물로 매 시간마다 종을 울려 시간을 알려주던 일종의 시계탑 역할을 하던 곳이랍니다. 막상 가까이 와서 보니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은 대로의 가운데 위치하여 교통과 여행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금융기관들까지 밀집하여 명실공히 시안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루는 겉모양은 3층이지만 내부는 2층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기둥 하나로만 만들어진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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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의 야경. 밤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종루 주위의 광장이나 음식점 등으로 몰려들어 번잡하다.



종루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통과해야 되고 거기서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보안검사를 받습니다. 특별한 절차는 아니지만 소지하고 있는 휴대품은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과시켜야 되고 물은 따로 들고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중국에서 지하철이나 기차를 탈 때와 박물관 등을 입장할 때는 반드시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개별적으로 구매하면 각각 35원씩 하는 두 장의 입장권 대신에 고루까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50원에 끊어서 시안에서의 첫 번째 일정을 역사적(?)으로 시작합니다.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에 종루에는 "Jingyun Bell"이라는 이름의 청동으로 만든 종이 있었는데 그 소리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렸다고 전해지고, 종을 주조한 기술을 볼 때 당나라 시대의 높은 야금술 수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전한 종루에는 명대에 만들어진 철로 주조된 무게가 2,500kg인 Jinglong Bell 이 설치되었는데 그 종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Jingyun Bell"은 현재 시안의 Beilin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위키피디아). 현재 울리는 종소리는 녹음된 종소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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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원래의 종이 아니라 명나라 때 주조된 종과 종루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



종루 위에 올라 보니 동서남북 반듯한 대로들이 시야가 닿는 곳까지 뻗어 있어 시안 성벽 내에선 어느 누구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북쪽으로는 걸어서 약 20분 가까이 소요됐던 내가 출발한 호텔 주변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오후에 가게 될 시안 성벽의 남문이 보입니다. 두 방향 모두 가로에 심어진 가로수들이 시야를 가로막지 않는다면, 또 망원경만큼 성능 좋은 시력을 가졌다면 어디까지 보였을지 모를 그렇게 굽이진 곳 하나 없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습니다. 종루와 고루 일대에는 맥도널드, 스타벅스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및 고급 음식점과 백화점들이 밀집해 있어서 시안에서 제일가는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안에 처음 오는 사람은 호기심 아니면 방문 기념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 반면 현지인들은 만남이나 친교의 목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낮이건 밤이건 종루와 바로 인접한 고루 주위의 광장으로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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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방향 약 450m 지점에 고루가 있습니다.



종루와 고루 두 건축물은 비스듬히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자매 누각이라고도 한답니다

종루와 고루 모두 시계가 없는 시대에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지만 종루는 성문이 열리는 새벽부터 낮 동안, 반면 고루는 성문이 닫기는 시간부터 한밤중까지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표를 끊을 때 11시에 북치는 공연을 한다기에 시간에 맞춰 고루에 도착해 보니, 당연하지만 종루에 종이 있는 것처럼 고루에는 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에 모두 24개의 북이 있으며, 북의 표면에는 24절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북들은 1996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북을 만지거나 두드리지 말라는 주의 표시가 있는 것 같았는데 무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그런 사람들 많이 많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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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외관과 북들



루의 전각 안에는 북 박물관이 있어 다양한 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 1층 공연장으로 가 보니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이라는 게 15분 정도로 시간이 짧을 뿐 아니라 별로 눈길을 끄는 것도 없고, 연주자들에게서 어떤 진정성이나 열의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주 형식적이고 싱겁기 그지없는 실망스러운 퍼포먼스였습니다. 하지만 관람객 중에는 공연을 보면서 캠코더 앞에다 개인 분무기로 자그마한 연무를 만들어가며 촬영하는 조금은 별나보이는 중국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종루나 고루 모두 시안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 이상의 별 특징은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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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종루가 보입니다



고루의 옆에는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서 회족(이슬람)이 모여 사는 회족거리가 있습니다. 각종 중국 전통 음식들을 굽고 요리하는 향과 연기로 뒤덮여 있는 일종의 먹자 거리인데, 비가 내리는 낮시간인데도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워낙 강하고, 진열되어 있거나 조리 중인 음식들의 모양 또한 흉물스러운 것이 많아 별로 구미를 자극하지 못합니다. 돼지고기를 금하는 회족들의 거리라 그런지 양꼬치를 팔고, 또 먹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마침 점심 때도 됐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양꼬치를 한 번 먹어나 봐야겠다는 생각에 몇 군데의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망설이다, 그냥 지나치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입구 쪽에 붙어 있는 주로 면 종류로 보이는 음식 사진들 가운데서 빨간색 국물의 좀 매워 보이는 면과 양꼬치 한 대를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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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거리 내 청진대사 옆의 어느 골목길



그런데 이게 무슨 맛입니까.

기름지고 느끼한 국물, 그리고 이런 맛을 잡기 위해 대부분의 중국 음식에 들어가는 '샹차이'라 부르는 고수의 향, 질깃한 면발에 천경채가 섞여있는 국수는, 면을 많이 먹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는 중국에서 원 없이 국수 먹으리라는 나의 기대를 무참히 깨어버리는 그런 맛입니다. 얼큰해 보여서 메뉴 사진을 보고 주문했는데 아무래도 내 주문과는 다르게 나온 듯한 붉은기가 전혀 없는 국수를 먹기 위해, 식탁에 놓여 있던 매워 보이는 양념을 추가로 더 넣어보니 이는 매운맛보다는 산초의 얼얼한 맛이 더 강하게 납니다. 이런 고수의 향을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하니 그들의 식성, 독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먹어보는 양꼬치는 고기의 비린 맛을 잡기 위해 겉에다 뿌려주는 갈색의 가루 '쯔란'의 향과 맛이 강한 데다가 질겨서 도저히 씹어 넘길 수가 없습니다. 한 열 덩어리 정도가 꼬치에 끼워져 나온 것 같았는데 두어 개 정도 외에는 모두 씹다가 뱉어서 주위의 눈치를 살펴가며 몰래 식탁 밑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야 했습니다. 자꾸 먹어보면 적응이 되어 자주 찾게 되는 마법의 맛이라고 하고, 이 두 가지 맛을 극복하지 못하면 중국음식 먹기 힘들다는데 나는 적응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럴 만큼 중국에 오래 머물지도 않을 거고, 또 고통을 극복하면서까지 그 맛에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분명 그들도 처음 먹어본다고 하면서 그렇게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해대던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진정성이 심히 의심스러워집니다.

그 후 중국을 떠날 때까지 더 이상 양꼬치를 사 먹은 적도 없고, 국수광이라고 자처하는 면 마니아가 20일 간 중국에 있으며 국수를 먹은 적이 두세 차례밖에 없습니다. 언어소통과 더불어 이번 여행에서 엄청 고생을 한 중국음식에 대한 수난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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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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