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의 성벽에 올라 보니...

홀로 떠난 20일간의 중국여행 #4

by 물미역

인터넷의 발달로 좋아진 것들 가운데 자유 배낭여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해외에서 지도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보다 더 한 것은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베트남, 일본 그리고 미얀마에서 구글의 지도 서비스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단순한 호텔 찾기 뿐만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교통수단 및 소요시간 그리고 노선버스의 번호까지 정확히 알려주고, 실시간 위치 서비스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조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선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네이버도 속도가 엄청 느립니다.

대신 중국에는 바이두라고 하는 지도 서비스가 있는데 사용해보니 구글의 성능을 능가할 정도로 우수합니다. 물론 이 얘기는 중국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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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와 고루



중국에선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를 이용하여 앱을 다운로드할 수 없다고 하길래 한국에서 바이두 앱을 깔고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시안공항에서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중에 바이두를 켜보니 작동이 잘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약 20분이 지나니 실시간 위치가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찾기 서비스는 아주 상세하게 잘 서비스됩니다만, 외국인이라 바이두에 회원가입이 안되기 때문에 한번 탐색했던 위치나 경로는 저장이 되질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경로를 필요할 때마다 다시 설정하여 탐색해야 하는데, 문제는 지도상의 표기가 전부 중국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명이나 지명을 찾기란 정말 힘듭니다. 만약 바이두 지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중국에서의 여행, 특히 길 찾기 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실시간 위치가 파악이 안 되니 경로탐색은 자유자재로 할 수 있지만 목적지의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서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합니다. 그 무뚝뚝하고, 대부분이 불친절한 중국사람들을 상대로. 정말 중국사람들 만큼 길을 묻는데 성의 없이 응대해 주는 외국인들은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20일 동안 중국에서 생활하며 그들에게 길을 묻고, 어설픈 길안내를 받으면서 느낀 소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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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The Wooden Memorial Archway, The worship Hall, The Minaret(The Introspection Tower)



시안이 실크로드의 관문 도시인 관계로 시내에는 여러 개의 모스크가 있는데,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사는 여기 회족거리에 청진대사(Xi'an Great Mosque)라는 모스크가 있다길래 비를 맞으며 찾아갑니다. 내 폰에서 바이두 지도의 실시간 위치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쉽게 찾았을 텐데, 양고기 굽는 향과 연기가 진동을 하는 빗물 고인 골목길들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돔이 있는 그런 모스크가 아니고 전통적인 중국과 이슬람 건축기술이 혼합되어 건축되었지만 일반적인 불교 사원과 같은 외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물론 안내 책자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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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정자는 네 번째 정원에 있는 The Phoenix Pavilion, 그리고 청진대사 바깥쪽 회족거리 골목



당나라 시대인 서기 742년에 건설된 모스크는 총 13,000 평방미터의 부지에 건물 면적만 6,000 평방미터에 이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직사각형의 구조로 4 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정원에는 대형 목조 입구가 세워져 있고, 서향의 모스크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각각의 정원에 여러 구조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맨 안쪽에는 1,000명이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대형 예배당이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 탓인지 관람객들도 별로 없고, 대예배당에도 나이 든 신도들 몇 명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을 뿐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도 거의 없습니다. 사원 안에는 우상숭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의 영향 탓인지 어떠한 신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북적이던 종루와 고루, 그리고 여기를 찾아오는 동안에 붐비던 회족거리와는 달리 적막감이 넘치다 못해, 소외되고 잊혀진 곳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선지 종교가 달라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점에서 가장 중국답지 않은 장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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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병마용 다음으로 시안에서 꼭 보고 싶었던 명대의 성벽을 보러 갈 차례입니다. 초한지와 삼국지를 읽으며 상상했던 그 시대, 장안의 성벽 흔적이 보존되어 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아쉽지만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 때 완전히 새롭게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약간 감흥이 덜 할 것 같습니다. 거리상으로는 여기서 지하철 한 구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비도 계속 내리고 또 시안의 지하철도 경험하고 싶어 지하철 역으로 향합니다.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지하철 역사는 깨끗하고, 당연히 규모도 크고 오고 가는,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승차권 자동 발급기나 에스컬레이트, 그리고 전동차 등 모든 게 최신식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걸 잘 보고 나도 2원짜리 지폐를 넣고 차표를 무리 없이 끊습니다. 중국에는 대중교통 요금이 정말로 저렴합니다. 2원이면 우리 돈으로 약 350원 정도 됩니다. 처음이라 조금은 어리둥절하지만 시스템은 거의 한국과 같습니다. 1회권이라 신용카드만 한 크기의 티켓은 출구 투입구에 넣으면 자동으로 삼켜버립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그들의 의식 수준은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역 입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담배를 밟아 끄는 젊은이도 있고, 전동차내에는 웬 쩍벌남, 쩍벌녀들이 그리도 많은지 대부분의 좌석들은 6명이 앉을 수 있을 자리를 5명이, 5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4명이 차지하고 있는 식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누가 뭐라 하지도, 인상을 쓰며 눈을 흘기지도 않고, 또 그렇게 앉아있는 사람들은 아주 당연한 듯합니다. 20일간 중국에서 수없이 많이 본, 그리고 볼 때마다 속으로 욕을 했던 볼썽사나웠던 광경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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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빗줄기의 굵기만 시시각각으로 변할 뿐 온종일 쉼 없이 내립니다. 여기 시안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그 표현은, 물론 그 크기와 규모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항상 엄청난, 굉장한 등의 수식어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성벽을 보기 위해 지하철 종루 역에서 1구간 거리의 영녕문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니 엄청 넓은 남문광장이 비를 맞아 번들거리는 보도 위로 희미하게 그 자태를 반영시키는 영녕문을 중심으로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워낙 넓은 탓인지 아니면 비 때문인지 좀 전 방문했던 종루와 고루와는 달리 붐비지 않아 좋습니다. 하지만 전철역 입구부터 성벽까지는 우산을 받쳐 들고 한참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안은 주, 진, 한, 수, 당나라까지 B.C. 11세기부터 A.D. 10세기 까지 거의 1,100년을 중국의 수도로 이어져오던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만, 중 고교시절 때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국사 시간에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던 고대 중국의 영원한 수도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삼국지와 수호지를 읽으면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진시황제와 병마용갱으로 인해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 도시의 성벽 위를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폭이 15m라는 성벽 위는 벽돌을 깔아 수레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도 견고해 보입니다. 수레가 아니라 현대의 육중한 탱크가 교행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총길이가 약 14km라는 성벽은 내가 서 있는 곳에서도 그 끝이 가늠이 되지 않아 계속 직진해서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전체 한 바퀴를 둘러보려면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비도 오고 해서 무리하지 않기로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모든 부분들이 꽉 짜여진 틀 속에서 성곽과 성벽도 그 위로 수레바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규칙적 배열되어 있는 벽돌만큼 질서있고 경직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둘 다 처음 대하지만 그런 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 보입니다. 성을 쌓고 있는 벽돌들에게서는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상으로부터 이처럼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들에게에서는 너무도 큰 틈들이 보입니다. 앞으로 그 사이사이를 메꿔나가야 할 첫 번째 재료는 시민의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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