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함께 한 가족여행, 증도에서 #1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중국에 있다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큰놈이랑,
설에도 할 일이 있다고 내려오길 한사코 거부하다가 갑자기 심경변화를 일으킨 서울에 있는 작은놈.
어깨 큰 녀석들이 왔다 갔다 하니 좁지 않은 집인데도 뭔가 꽉 끼고, 번잡한 느낌입니다.
사람 사는 집 같다는 말입니다.
폴도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모이면 항상 하던 대로 여행을 계획하는데, 큰놈이 '마지막 여행이 재작년 제주'였는데 좋았더랍니다.
작은놈도 맞장구를 쳐댑니다. 그럼 O.K.!
와이프랑은 얼마 전에 먼 데를 다녀왔기 때문에 또다시 먼 곳은 가기 힘들고,
제주도는 지난 12월에 갔다 왔고, 그래! 그렇다면 평소에는 예약 조차도 힘들었던 증도 엘도라도로 가자.
와이프랑 항상 마음만 먹다가 길이 멀기도 하고, 예약도 힘들고 해서 포기하곤 했던 섬. 증도 말입니다.
증도대교 입구에서. 비수기라 그런지 차량 왕래도 뜸하고 한산합니다.
부산, 아니 우리 집 주차장에서 증도까지 네비를 찍어보니 4시간 반에서 약 5시간 소요됩니다.
물론 휴게소에 들르고, 점심 먹는 시간이 포함되지 않은 온전히 주행시간만 그렇습니다.
요즘 나이가 들면서 장거리 운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터라 만만하지 않은 거리입니다.
세 시 전에만 들어가면 되리라 마음먹고, 휴게소 음식이 먹고 싶다는 모두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고,
맛집에 들러 점심도 맛있게 먹을 요량으로 조금 이른 시간인 7시 30분에 증도로 출발합니다.
어서 이 놈들이 운전을 능숙하게 해서 뒷자리에 느긋하게 기대어 졸면서 여행 다니는 날이 와야 할 텐데,
큰놈이 나잇값 못하고 재롱떠는 모습을 보아하니 가까운 미래에는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큰놈이 증도대교 입구에서 공중부양 퍼포먼스를 합니다.
옛날, 애들이 어렸을 때, 거의 매주말 어딘가에는 꼭 찾아다니고 하던 그런 시절, 어느 날.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큰놈이 왈 '섬진강에 가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조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거길 가고 싶었던 이유는 지금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강 하구의 넓은 강폭과 모래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애들이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닌데, 나이 들어 생각이 깊어지는 시기에나, 계절이 변하는 즈음에 우연히 길을 가다 아니면 차를 몰고 가다 '말로'가 부르는 섬진강을 듣고선 와락 달려가고 싶어 지는 곳이 섬진강이어야 하는데,
어쨌든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섬진강 일원을 여행했던 적이 있는 그곳의 휴게소에 들릅니다.
애들 엄마랑 애들 모두 기내식을 좋아하고, 휴게소 음식을 한 번씩 그리워합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고 자제하는 나와 달리 애들은 거침없이 시키고는 다 못 먹고 내게 떠넘깁니다.
어쩝니까. 먹어야지. 점심 맛있게 먹긴 틀린 것 같습니다.
삼대천왕에서 소개되었다는 함평의 육회 비빔밥 전문 화랑식당
증도의 엘도라도 리조트에 바비큐 시설이 있어서 그걸 대여하기로 하고,
고기는 함평의 천지 한우가 유명하다 하길래 점심도 해결할 겸 함평에 들립니다.
옛날 약 15년 전쯤 함평 나비축제가 막 시작되었을 때 한번 들른 적이 있는 동네입니다. 물론 그 축제가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제로 발전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맛있게 먹으려고 함평축협 천지 한우 플라자에 가서 2+ 등급을 찾았는데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맛있는 부위별로 1+ 등급의 고기들을 충분히 사서 인근에 있는 맛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삼대천왕에 소개되었다던 화랑식당에서 점심으로 육회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와이프는 익힌 소고기 비빔밥을 먹었는데, 나는 큰놈이 먹은 낙지 비빔밥이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독특하게 비빔밥에 넣어먹으면 고소하다고 돼지비계를 줍니다. 하지만 비위 약한 사람에게는 비추입니다.
종업원들과 서빙하는 아줌만가, 주인인가 잘 모르겠지만 친절하지도 않고,
좋지 않은 기억력을 인정한다면 주문을 받아 적으면 될텐데, 제대로 기억을 못 하여 우리가 주문한 대로 음식들이 다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백종원이가 가야지 친절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유명세를 탄 맛집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증도는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1박 2일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섬입니다.
사실 증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의의 풍광이 별로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부산에 오자마자 뜬금없이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던 작은놈이 오는 내내 잠에 취해 있는 것도 제지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증도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과연 증도대교를 넘는 순간 섬은 제 속살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바로 뻘입니다.
물론 섬이 보여줄 속살이 뻘밭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여태껏 여러 번을 지나다니곤 했었지만, 그렇게만 다녔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뻘의 속살을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단순할수록 거기엔 더 많은 것이 담겨 있고 그렇기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건 뻘을 안고 있는 바다를 보며 오랫동안 품어왔던 궁금증의 한 자락입니다. 흐린 날의 뻘은 맑은 날 보다 오히려 더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길이 나 있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보물섬 카페도 나타나고, 좀 더 가다 보니 증도의 명물인 짱뚱어다리가 나옵니다.
짱뚱어다리는 갯벌 위에 떠 있는 470m의 목교로 갯벌 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여기 갯벌에 짱둥어가 많이 사는 모양인데 다리를 건너는 내내 아무리 살펴봐도 게 말고는 짱뚱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짱뚱어가 동면한다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합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일몰에 맞추어 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날씨는 낙조가 아름다울 것 같지 않습니다. 아쉽습니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답니다. 증도가.
지금은 물이 빠지는 시간대 같은데 물이 들어왔을 때 건너는 다리도 멋있을 것 같습니다.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다리 위에는 우리들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일부러 포즈를 잡지 않아도,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누가 찍어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카메라나 폰을 가지고도 힐링이 가능한 다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