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기업들의 합종연횡 전략 들여다 보기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자율주행이 어느새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1월, 아마존은 스카우트라는 이름의 배달로봇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동영상 속에서와 같이 유유자적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집집마다 택배를 배달해 준다.
출처: 아마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상용화 되어 있다는 것. 스카이프 창업자가 2014년에 설립한 회사인 스타쉽테크놀로지스는 작년 말 영국 밀턴 케인즈에서 자율주행 상품 배송을 시작했으며, 현재 세계 각국의 60여개 도시에서 시범 운영중이다.
“스마트폰으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설정하고 택시를 부르면 운전석이 비어있는 택시가 나를 데리러 온다. 차에 탑승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Start Ride’라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부족한 잠을 자거나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한다.”
출처: 웨이모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모가 작년 말 출시한 상용 자율주행 택시 소개 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웨이모는 작년 말 미국 피닉스 지역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웨이모 원(Waymo One)을 출시했고, 얼리 라이더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400명이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이용했다.
물론 실제 서비스에서는 여전히 안전을 위해 숙련된 운전자가 승객과 함께 동승하며, 운행 지역도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등 아직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가 일상으로 자리잡기 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자율주행이 미래가 아닌 현실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쯤 되면 자율주행 기술의 도입으로 우리의 삶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점과 우리가 꿈꿔왔던 기술들이 상당 부분 구현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자율주행 기업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율주행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 기업이나, 이를 적용하려는 기업들이 과연 어떻게 이 시장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뛰어든 진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테크 진영,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진영이다. 구글, 바이두 등의 테크 자이언트 기업과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구글의 자율주행팀이 분리되어 설립한 스타트업 웨이모가 그 대표 주자이며, 인텔의 자회사인 컴퓨터 비전 업체 모빌아이, 방대한 지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도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오토메이커(Auto maker) 진영, 자동차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진영이다. 폭스바겐, GM, 포드 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자동차 업체들이 오랜 기간 갈고 닦아온 자동차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시키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여 자사의 자율주행팀으로 성장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GM의 크루즈, 포드 자동차의 아르고가 그 예이다.
세 번째는 이동 네트워크 진영으로, 승차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며 글로벌 이동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우버, 리프트, 디디추싱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율주행 택시가 상용화될 경우 중요한 것은 차량과 고객과의 매칭이다. 가능한 한 많은 자율주행 택시가 노는 시간 없이 고객과 매칭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우버 등이 보유하고 있는 매칭 시스템이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두터운 고객층과 이동 데이터 또한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출처: 웨이모
각 진영들은 각자의 핵심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웨이모는 자율주행 기술은 있지만 차량 제조 기술이 없어 작년 6월 웨이모 원을 출시하기 위해 62,000대의 피아트 크라이슬러 미니밴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GM과 포드는 뛰어난 자동차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버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동 네트워크는 자율주행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커다란 가치를 지닐 수 있지만 당장의 자율주행 기술과 차량 제조 능력이 부족한 상태다.
자율주행 기술, 차량 제조 기술, 이동 네트워크라는 이 삼 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자율주행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이에 현재 자율주행 시장은 진영간의 연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 오토메이커 진영과 이동 네트워크 진영의 만남
작년 12월, 세계 최대 오토메이커 폭스바겐과 중국 최대 승차공유 업체 디디추싱이 합작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발표됐다. 자동차 제조사와 승차 공유 업체의 만남으로 디디추싱은 중국의 승용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폭스바겐의 브랜드 가치를 활용하게 됨과 동시에, 1인 탑승이 많고 저속 운행이 잦은 승차 공유 산업에 적합한 차량 설계까지도 논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폭스바겐은 4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디디추싱 이용자들의 이동 데이터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며, 승차 공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출처: 폭스바겐
“차량 소유의 완전한 대체”를 비전으로 제시하는 승차 공유업체들과 자동차 회사들과의 만남은 언뜻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승차 공유 시장이 활성화되면 자동차를 직접 보유하기 보다는 빌려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자동차 회사들은 차량 제조 및 판매 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많은 자동차 회사들은 제조업체에서 통합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로의 태생적 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GM은 14,000명 가량의 인력을 정리 해고하고 북미 지역 생산공장 5곳을 폐쇄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GM은 구조조정 조치로 비용을 감축하여 전기차 생산과 자율주행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BMW는 자동차 회사 중 최초로 중국에서 승차호출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라이벌 관계인 다임러는 승차공유를 비롯한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5개 벤처를 설립하기 위해 BMW와 11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차 공유 업체들과의 파트너십 체결은 이동 서비스 제공 측면에서의 노하우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자, 자칫하면 이들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OEM 업체로 인식될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인 것이다.
- 테크 진영과 오토메이커 진영의 만남
출처: 크루즈 오토메이션 페이스북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력을 갖춘 자율주행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GM과 크루즈의 만남이다. GM은 2016년 10억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자율주행 스타트업 크루즈를 인수했다. 당시 크루즈는 특정한 유형의 자동차를 고속도로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율주행차로 변환할 수 있는 부품 키트를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이들의 자율주행 기술에 GM이 흥미를 느낀 것이다. 이후 크루즈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2억 2천만 달러, 혼다로부터 7억 5천만 달러를 투자 받으며 작년 146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출처: 그랩
현대자동차는 동남아시아의 승차공유 업체인 그랩에 두 차례에 걸쳐 2억 7,5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최근 ‘인도의 우버’로 불리는 승차공유업체 올라에도 3억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투자를 통해 ‘올라’와 함께 플릿(fleet) 솔루션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으며, 이는 차량 제조업체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자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일,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최대 인터넷 기업 얀덱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함께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나선 사실이 보도되었다. ‘러시아판 구글’로 묘사되는 얀덱스는 자율주행기술을 보유한 테크 기업일 뿐 아니라 차량 공유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이동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러시아 일부 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시범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와 얀덱스의 만남은 차량 제조기술, 자율주행기술, 이동 네트워크라는 자율주행의 세 축이 모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Navigant Research는 20개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사들의 순위를 매긴 자율주행리더보드 순위(2019 Automated Driving Leaderboard)를 발표했다. 리더그룹, 경쟁자 그룹, 도전자 그룹, 추격자 그룹으로 분류된 해당 랭킹에서 리더그룹으로는 세 곳이 선정되었으며, 1위의 영예는 웨이모에게, 2위와 3위는 각각 GM과 포드에 돌아갔다. 현대차는 경쟁자 그룹에 속했다. 리더 그룹은 선두 주자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할 것이고, 이외의 그룹에 속한 기업들은 리더 그룹이 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을 것이다.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율주행 상용화 시점으로 꼽은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자율주행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연합과 경쟁이 앞으로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올 자율주행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게 될 기업이 어디가 될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하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율주행을 선도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치 축으로 꼽히는 차량 제조기술, 자율주행기술, 이동 네트워크 노하우 중 이동 네트워크 부문에 대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연일 높아지고 있는 모빌리티 시장 참여자 간의 불협화음이 빠르게 일단락 되고, 주요한 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