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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Jan 01. 2023

쇼코의 미소

떠도는 이들의 가슴 따스한 이야기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첫날, 성당을 다녀와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읽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하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비롯해 베트남 전쟁의 짙은 그림자를 엮어낸 '신짜오, 신짜오', 프랑스의 수도원에서 만난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한지와 영주' 등 7편의 작품을 수록한 단편집이다. 이 책의 소재를 한 어구로 요약한다면 '사람과 사람'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맑고 투명한 사람들이 때로는 서로를 오해하고, 안타까워하며, 화해하는 과정은 담백한 서체로 서술해간다.

그런데 최은영 작가의 작품은 묘한 동질감을 준다. 1984년생, 고려대 국문과 출신인 작가의 작품에는 천주교라는 키워드도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묘하게 쓸쓸한 비주류의 분위기가 감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선배들은 '위대한 사회적 변화를 주도했던 투쟁의 역사'를 전설처럼 이야기하면서 후배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음담패설과 성적 차별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혁명과 정의를 이야기하며 거들먹거리던 선배들은 졸업의 시기가 되자 아무런 고민 없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크고 번쩍이는 회사로 면접을 다녔고, 결과에 따라 울고 웃었다. 희극이었고, 또한 비극이었다. 그제야 나는 상당수의 선배들이 그저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그럴듯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옛 투쟁의 역사를 끌어들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80년대의 인천의 한 '성당'도 그랬다. '정의'자가 들어가는 단체에 소속된 한 젊은 신부는 강론 때마다 '정의'와 '혁명'을 부르짖곤 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행동은 그가 경멸하는 독재자에 가까웠다. 그는 나이 든 신자들이나 어린 학생들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된 질책과 욕설을 아끼지 않았고, 반론은 허용되지 않았다. 선량한 교리 선생님들은 운동권 학생으로 교체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술이나 먹고 기타나 치는 한량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교리 수업에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아, 사무실로 찾아가자... 술에 취한 듯 퀭한 눈으로 앉아 있던 그가 말했다. "반성하고 있어...",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학년에 30~40명에 달했던 초등학생 교리 수업의 참여자는 3명까지 줄었다. (그중 한 명은 신부님이 됐다더라...)

그럼에도 우리는 반항하지 않았다. 선배들을 뒤집어엎지 못했다.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그리고 그 선배들이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 건 맞잖아. 이 생각으로 그냥 쓸쓸하게 수용했다. 천주교도 그랬다. 당시에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정도로 올라가면, 집안에 순교자 서넛은 나오는 집안도 많았다. 신부들의 가문에서는 그 비중이 컸다. 바로 그분들이 흘린 '피'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신부들의 가부장적인 행동도 눈감아 준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그나마 제대로 기억해 주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요즘 MZ 세대들에게 '민주화' 시절 이야기를 하며 거들먹거리면 화석 취급을 받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80년대 신부 식으로 마음대로 행동하면 주교님에게 투서가 날아가는 매서운 시대다.

그래서 최은영 작가는 흥미롭다. 그의 작품에서는 70~80년대 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의 '결'들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을 따스하게 품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오래도록 좋은 작품을 내어주면 좋겠다.

#독서노트 #최은영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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