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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산톡톡 Feb 25. 2023

쓰는 직업

20년간 쓰고 또 써야만 했던 신문기자 이야기

2023년을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에 착수도 못했건만, 어느덧 2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회사에 나와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 머리맡에서 곽아람 작가(혹은 기자님)의 '쓰는 직업'을 읽었다.


이 책은 현재 20년차 문화부 기자의 크고 작은 경험담과, 일과 삶에 대한 생각을 엮어낸 에세이집이다. 사회부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에서 먹고 자던 시절부터 신문사의 첫 여성 출판팀장이 되어 노벨문학상 특집을 위해 밤새도록 독서한 경험까지, 다양하고 현장 넘치는 직장생활과 애환이 담겼다. 나와 같은 문화예술 문외한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오르한 파묵, 키라 나이틀리, 크리스토 자바체프 등 유명 예술가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또한 작가는 나이 어린 여기자로서, 꽤나 많은 이들의 맹목적인 미움을 받는 보수매체의 언론인으로서, 그냥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만 했던 모멸의 순간도 담담한 어조로 써 내려간다.


곽아람 작가는 책머리에서 이 책의 의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공감이 가는 문구다.


이 책은 일이 싫어 울고, 힘들어서 비명 지르고, 버거워 도망가면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보람과 성장의 기쁨에 중독돼 20년을 버틴 나의 이야기다.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결국은 쓰는 일로 귀결되는 나의 일. 기자記者, 즉 ‘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직업과 눈물과 웃음을 섞어가며 지지고 볶은 이야기. 그러므로 결국,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다.

정말 죄송스럽지만, 곽아람 작가(혹은 기자님)를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쓰는 직업'이라는 제목 때문이다. 나도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썼고, 사실 지금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홍보 직무를 맡으며 신문기자 출신 선배님의 혹독한 가르침을 받으며 쓰고 고치고 또 썼다. 종류도 참 많았다. 보도자료, 사진자료, 기획자료, 실적발표, 인사발표 자료, 부고자료, 특집자료, 기고문, 성명서, 설명자료, 프레스킷(Press-Kit), 기고문에서 내부 보고문서와 스피치까지. 급하면 민감한 주제로도 그야말로 1시간 만에 A4 1~2장은 거침없이 뚝딱 써내야 그나마 한 명 몫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에는 카톡으로 후다닥 쳐서 자료를 만들어 보낸다. (물론 요령이 있기는 하다.)


외신에 제공해야 하거나, 높은 분의 요구가 있을 때는 영어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년 전만 해도 구글 번역기가 시원찮은 시절이라, 영자신문에서 비슷한 표현을 조금씩만 고쳐서 붙여 넣곤 하곤 했다. 지금은 절대로 못하는 막노동인데,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곤 했다.


그래도 기자님들을 만나면 내 상황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은 매일매일 뭔가를 써야만 한다. 인쇄매체는 강판에 올리면 고치기도 어렵다. 방송은 전파를 타면 속수무책이다. 인터넷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 수정하기도 민감해진다.


내가 쓰는 자료는 언론사나 경영진, 혹은 직원들만 만족시키면 됐다. 하지만 기자님들은 가깝게는 데스크를, 크게는 시민들을 상대한다. 그래서 훈련과정이 혹독한 것은 물론 위계질서도 엄격하다. 뭔가를 설명하다 보면, 때로는 논리와 근거로 기자님들을 '설득'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제대로 된 분들을 만나면 등에 땀이 쭉쭉 흐르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에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기자님들을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이제 수주전략팀이라는 명칭의 새로운 부서로 이동했지만, 결은 다르지만 문서와 씨름해야 하는 것은 여전하다. 좀 더 좁고 깊이 내려가는 '기술적인' 내용을 다루며, 파워포인트(PPT)와 엑셀의 비중이 커졌으며, 독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개조식 문장과  다양한 디자인 양식에도 친숙해져야 한다.


뭔가를 쓰는 것은 참 어렵다. 모르면 용감하게 쓰고 나서 부끄러움이 앞서고, 잘 알면 선뜻 쓰겠다고 나서기 힘들다. 그래도 일이니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쓰는 행위를 하면서 '월급'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책 말미에 "20년 근속의 비결은 구내식당!"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보면서 웃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회사는 평일에 삼시 세끼를 준다. 고마운 일이다.


일간지 기자님이 쓴 글답게 내용이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고, 문장도 술술 읽힌다. 지금은 홍보담당이 아니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법. 언젠나 마주칠 기회가 있다면, '사인' 한번 받아보고 싶다.


#독서노트 #쓰는직업 #곽아람 #마음산책 #기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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